창비주간논평
‘남북한 마이 웨이’
8월 위기설 속에 새로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신정부 출범 3개월이 마치 3년이 흐른 듯하다. 정부는 한미정상회담과 ‘베를린 구상’ 발표 이후 첫 후속조처로 북한에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 제안했다. 우리의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7월에만 두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대북제재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김정은이 이런 상황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곧바로 이를 비난하는 ‘정부성명’ 발표와 함께 총참모부와 전략군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괌 포위사격’까지 위협하고 있다. 어떤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 웨이’(my way) 전략이다. 입구든 출구든 쉬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고, 깊은 고민이 배어 있다.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은 신중함과 균형감을 가지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대북정책이니 당연히 북한을 고려했을 것이다. 여기에 미국은 물론 중국도 살피고 국민 여론도 생각했을 것이다. 걱정거리가 많고 살펴야 할 것이 많다보니 어떠한 결정을 하든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북한과 미국, 국내정치 중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다.
변화된 상황에 걸맞은 발상의 전환을
이번 정부가 시작하면서 가졌던 북한에 대한 인식은 현실보다 기대감이 앞선 듯하다. 북한이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정권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우리의 대화 제안에 대한 고민으로 도발을 자제할 것이라는 희망과 최면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10년 전과 지금은 북한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안보라인은 변화의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당연시되던 ICBM 발사에 대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좌절과 절망감으로 바뀌면서 계획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예상 가능했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전략을 수립한 때문일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제시한 대북정책을 보면 변화에 적응할 새로움이 부족하다. 어쩌면 과거에 그려왔던, 9년간 캐비닛 속에 보관되어온 먼지 쌓인 대북정책들을 꺼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동결입구론’은 1994년 제네바합의 때의 유물이고, ‘비핵화-평화체제 교환’ 역시 이미 2005년 ‘9.19공동성명’에 나온 지난 이야기이다. 단순히 햇볕정책의 추억이라면 지금의 북한을 유인하기도,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변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평가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에도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돌아가지도 않는 운전석에 앉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운전수를 움직일 수 있는 지도를 손에 쥐는 것이 중요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정교한 한국형 로드맵 ‘신 페리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핵능력을 과거(이미 만들어놓은 핵탄두), 현재(핵시설, 핵분열물질의 양적 증가), 미래(핵실험과 미사일시험발사 등 고도화 질적 향상)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미래 핵의 유예, 현재 핵의 동결·불능화, 과거 핵의 완전 폐기 및 단계별 검증과 연결시켜 북한의 과거(제재), 현재(불가침, 평화체제), 미래(체제보장) 안보우려를 제거하는 다원적(6자 비핵화-4자 평화포럼-남북/북미 양자), 포괄적(안보-경제) 로드맵 작성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한미정상회담과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북핵 문제가 반드시 평화로운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한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힘의 우위에 기반을 둔 강력한 압박과 제재가 선행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해 사드의 추가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트럼프의 ‘최대압박과 관여’라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모순된 비핵화전략에 동조하며 한미동맹 강화에 전력하고 있는 형세이다. 먼저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의한 계산된 행동일 수도 있다. 정부가 현 상황에서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하더라도 당장은 제재와 압박에만 기울어진 것이 사실이다.
대담한 접근을 추진할 때다
무엇보다 말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문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해보셨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거나 폐기할 때까지 제재와 압박을 해야지, 지금은 대화할 국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제재안이 통과되어 기쁘다, 미국을 축하한다’는 식의 말은 남북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수천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트럼프의 비상식적인 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어야 했다. 말 한마디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인적 라인으로는 대화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대북정책의 기획력도 부족하지만 최소한 대북특사를 보내고 핫라인을 복원하려는 의지와 추진력조차 없어 보인다.
사실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치 않다. 말처럼 제재가 대화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여건이 조성되어야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과거 전략적 인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의 용인이나 중국, 국제사회의 협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으로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이 정도 높은 지지율에도 국내정치적 상황에 주저하고 계산한다면 앞으로도 기회는 없을 것이다. 대북정책을 오로지 남북관계로만 볼 수는 없지만 지금은 다른 어떠한 것보다 남북관계를 우선시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기회이다.
현 상황에서 대북정책은 국내정치나 국제사회에 대한 고려보다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을 통한 보다 대담한 모험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의 대북정책 역시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을 ‘마이 웨이’가 필요하다. 북한이 우리의 제의를 안 받고 대화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실천하면 된다. 군사분계선에서의 확성기 스위치도 그냥 내리면 된다. 한미연합훈련 문제도 우리가 미국에 먼저 던지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 길은 지금껏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촛불로 증명했고 그 자신감과 힘을 이미 새로운 정부에 주었다. 그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주어진 복잡한 환경을 고려하되 결정은 단순하게 내려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김동엽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7.8.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