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기레기’의 운명
삼성의 실세 임원에게 광고를 구걸하고 인사청탁을 한 언론사 간부들의 휴대폰 문자가 세간의 화제다. ‘하해와 같은 배려를 앙망’하는 비굴한 호소도 놀랍지만, ‘좋은 기사로 보답하겠다’는 충성의 맹세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시사인』에 실린 특종보도를 접하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이 있다. ‘인터넷은 난리 나겠지만 언론은 아무도 안 쓰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포털과 SNS를 뜨겁게 달궜던 이 문자들은 어떤 방송과 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딱 한 군데, JTBC 뉴스룸을 제외하고.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수백개씩 달린 인터넷 댓글을 보니 대부분 반응이 비슷하다. “그럼 그렇지. 기레기들에게 뭘 기대하겠어?”
언제부터 ‘기레기’라는 용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됐을까?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이 말에 담긴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하다. 경멸 그리고 분노.
‘기레기 저널리즘’이라는 적폐
이른바 기레기들의 행태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권력자에게 고개 숙이고, 광고주에게 무릎 꿇으며, 사주에게 충성한다. 그러다 권력이 만만해 보이면 서릿발 같은 비판의 펜을 휘두른다. 자신들의 치부에는 철저히 눈을 감는다. 얄팍한 엘리트 의식으로 늘 독자를 가르치고 훈계하려 한다. 기사 제목은 최대한 선정적으로 뽑는다. 가끔씩 필요한 경우에는 팩트 왜곡마저 서슴지 않는다. 왜곡과 오보가 밝혀져도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기레기 저널리즘이다.
예전에는 이런 짓들이 그럭저럭 통했다. 기사가 좀 이상해 보여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던 시절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요즘처럼 거의 모든 뉴스가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세상에서는 이런 행태들이 금방 까발려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세월호참사와 촛불, 탄핵이라는 엄중한 상황을 몸으로 겪으면서 언론을 보는 눈높이는 과거와 비할 수 없이 높아졌다. 뉴스를 읽는 독자 개인은 왜곡보도에 세뇌당하기 쉽다. 반면 인터넷의 집단지성은 마치 알파고처럼 뉴스 아래 숨겨진 의도를 간파해내고 몇수 앞을 내다본다. 잘못되거나 왜곡된 내용은 순식간에 팩트 체크로 반박당한다. 어쭙잖은 훈계는 전문가들의 가차 없는 논리로 깔아 뭉개진다. 그런데 기자들만 아직 모른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경멸은 깔보고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뉴스를 읽는 독자들은 이제 기자들 머리끝에 앉아 있다. 그러니 수준 낮은 기사를 깔보고 업신여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뿐이랴. 반복되는 기레기 저널리즘에 분노한 독자들은 해당 언론사를 심판하려 할 것이다. 이른바 ‘한경오’로 대표되는 진보언론에 대한 날선 비판을 상기하자. 억울해도 할 수 없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시작됐고 돌이킬 수 없는 거센 물결이 되고 있다.
자성과 소통, 언론개혁의 특수성
여기서 새 정부 들어 화두로 떠오른 언론개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개혁은 언론을 장악하려는 권력과 싸워 독립성을 쟁취하는 것, 보수언론 위주의 왜곡된 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그러나 달라진 세상의 언론개혁에는 중요한 과제 하나가 더해질 것이다. 바로 언론인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내던지고 시민과 소통하는 과제 말이다.
언론개혁이 검찰개혁이나 재벌개혁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검찰개혁, 재벌개혁은 정부와 정치권이 새로운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요체다.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촛불민심, 그리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하는 강력한 외부의 힘만이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다. 검사에게 검찰개혁을 맡길 수 없고 재벌에게 재벌개혁을 맡길 수 없다. 맡겨놔서도 안 된다.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의 행태를 바꾸는 작업을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을까? 시스템과 제도의 개선만으로 가능한가? 난망하다. 언론인들 스스로가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혁하려면 소통해야 하고 소통하려면 먼저 반성해야 한다. 반성은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는 행위다. 과연 우리 언론인들은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권력, 광고주, 사주를 위해, 이 나라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펜을 놀렸던 과거를 뉘우치고 있는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부패권력과 재벌의 야합을 감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할 자세가 돼 있는가?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KBS, MBC 언론인들의 낙하산 사장 퇴진 싸움이 중요한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따라서 부패한 정권을 위해 부역한 경영진을 심판하는 일은 촛불을 들었던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이 임기 중에 탄핵당한 마당에 그 대통령을 위해 온갖 패악을 저지른 인물들이 어찌 임기를 지킬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KBS, MBC 언론인들이 이번 기회에 낙하산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타협한다면 공영방송은 또 한번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언론개혁은 굳이 정부가 서두를 필요가 없는 과제일지 모른다. 반성과 소통의 노력이 없는 언론은 시민들이 알아서 심판하는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언론들이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다. 초 단위로 쏟아지는 수천개의 기사들이 5인치 스마트폰 화면에서 간택을 받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일지언정 ‘조중동’과 ‘한경오’가 각자의 지분을 적당히 나눠 갖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당분간은 광고주의 ‘하해와 같은 배려’를 애처롭게 앙망하면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 조금씩 쓰러져갈 것이다. 몇년 안 남았다. 그게 반성하지 않는 기레기의 운명이다.
박성제 / MBC 해직기자. 뉴스타파 시사토크 「뉴스포차」 진행
2017.8.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