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참새의 맛
어제는 문학평론가 송종원씨와 출판편집 노동자 김선영, 박지영, 이선엽 씨와 함께 을지로 다동 ‘도리방’에서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했다. 한 문학상 시상식 축하연에서 한차례 마신 후에 여운이 남아 옮겨간 자리였다. 구운 참새와 꼬치구이를 앞에 두고 주전자에 든 따뜻한 정종을 비우며 우리는 직장생활의 애환을 안주 삼다가, 동산과 부동산으로 조성되는 삶의 난해함을 토로하고, 학창시절 추억의 노래 한 소절을 떼로 부르기도 하였다. 소취했다.
12월에는 자연스레 밤이 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평일 숙취의 곤혹을 피하지 않게 된다. 연말에는 누구나 후회가 있는 인간이고자 하고 그 때문에 대체로 긍정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송년 모임을 위해 ‘재건축(재미있고 건강하게 축복하며 살자)’이나 ‘너나잘해(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해)’ 같은 건배사를 미리 준비하는 이는 건전한 후회를 일삼는 자이다. 도리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 가운데 건배사 같은 걸 하는 이는 없었다. 다들 짠, 하면 짠, 했다. 외풍 때문에 술은 금세 식고 방바닥은 지질지글 끓어서 방석 밑으로 손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자니 참 겨울이구나 싶었다.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졌다면 언제까지고 자리에 앉아 있었으리라.
밤은 깊고 가게 안으로 더는 드는 사람이 없고 서둘러 귀가하는 손님들 사이에서 화제는 생활의 울분을 거슬러 올라가 언젠가 만났던 직장상사의 무례함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쌓인 앙금으로, 사람을 거북하게 하는 어떤 이의 재주로 그리고 때때로 찾아드는 죽고 싶은 감정으로까지 나아갔다. 그 또한 기쁨의 대화였으나, 마침 그날 아침 ‘연말 우울’을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연말 참 제대로 타네, 모두 한통속이 된 기분이었다.
한 것도 없이 한해를 보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연말에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새삼 우울감에 빠졌다는 친구에게 말해주었더랬다. 한 게 없으면 한 게 없는 대로 의미가 있다, 쓸 데 있는 한해가 있다면 쓸데없는 한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을. 연말 제철의 말은 그런 말들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귀를 순하게 하는 말들. 사무실 동료 영영은 그런 말들을 ‘선비의 말’이라고 부른다. 바른 말이긴 하나 어쩐지 빈구석이 있는 말. 연말 선비의 말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런 말은 퍽 색다르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글 콤비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린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는 자신의 그림을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라고 자칭하며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어요”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안자이 미즈마루』, 씨네21북스 2015). 연말 우울의 주인공이 된 이에게 전하기에 ‘열심히 살지 않는 말’은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 좋은 게 좋은 제철의 말은 보편적이나 상투적이기도 하다.
이런 술자리 광경은 어떤가. 술을 마시면 더 잘 웃고 순박해지는 송종원씨가 뜬금없이 아내를 향한 애정을 술술 풀어놓았다. 편집자 김선영씨가 팔불출, 그러자 송종원씨가 아니, 구불출이라고 대꾸했다. 한바탕 웃었다. 송종원씨의 손에 눈길이 갔다. 크고 두툼한 손. 다른 이의 글을 세심히 읽고 쓰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구들의 온기 같은 것이기도 했다. 송종원씨와 오래 알고 지냈으나 깊은 정을 나누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손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이 정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밤의 손은 그런 심사를 자아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깊은 손을 가진 사람이 쓰는 글은 깊은가. 알 수 없다. 그러나 깊은 손을 가진 사람의 술잔은 얕아 금세 잔이 비었다. 촌에서 나고 자라 누우면 바로 잠이 든다는 송종원씨가 구운 참새의 머리를 오독오독 씹으며 고소하다, 말하니 참말로 입안에 고소한 맛이 퍼지는 듯하였다. 그때, 편집자 김선영씨가 동료들의 별명을 친근하게 호명하는 소리가 새삼 상쾌히 들렸다. 동료를 살뜰히 챙겨 부르는 사람의 직업이 편집자라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연말이면 이런저런 시상식장에서 출판편집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작가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인증사진을 찍으며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폴짝폴짝 좋아하는 이들의 살뜰한 기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직업의식만으로는 설명할 길 없는 마음의 경로를 탐색하다보면 반성하게 된다. 작가랍시고 깝죽거리지 맙시다. 편집자 여러분들 올 한해도 덕분에 근근이 책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러나저러나 한겨울 술 먹은 이야기를 이렇게 실명까지 밝혀 적는 게 또한 작가랍시고 까부는 일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저러나 송종원씨는 그 새벽 아내에게 통닭을 잘 배달했을까. 김선영, 박지영, 이선엽 씨는 여전히 수화기에 대고 “‘창문’ 할 때 ‘창’, ‘비둘기’ 할 때 ‘비’”라고 안내할까. 궁금하다.
오늘은 12월 12일이다. 12월 12일에 오고 12월 12일에 간 오즈 야스지로오는 맛이 좋은 식당 목록이 적힌 ‘식도락 수첩’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아마도 겨울밤에 먹기 좋은 참새구이 식당 이름도 거기 적혀 있으리라. 오즈 야스지로오의 「꽁치의 맛」에서 딸을 시집보내고 홀로 남은 아버지는 술에 취해 이렇게 읊조린다. “아, 외톨이가 되었군.”
문학평론가 아버지와 편집자 딸이 겨울밤 도리방에 마주 앉아 있는 풍경도 어쩐지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류우 치슈우 같은 종원과 하라 세쯔꼬 같은 선영. 둘을 다다미 쇼트로 쓰는 일이 12월이 다 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될 것 같다. 시는 겨울에 써야 제철,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겨울밤 ‘군참새’에 입을 대지 않았으나 참새의 맛이 고소하니 좋았다.
김현 / 시인
2017.12.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