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남북 당국자회담, 한반도 적폐청산의 시작?
2018년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남북관계가 해동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해에 걸맞은 새로운 출발이다. 2016년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이 2017년에 ‘촛불정부’의 탄생을 낳아 국내 적폐청산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그동안 켜켜이 쌓인 한반도 적폐마저도 청산이 시작될 조짐이다. 시작은 북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다. 그를 위해 남북 당국자들이 1월 9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이 만남이 더 많은, 더 깊은 만남으로 이어질 것인가? 평창의 평화가 한반도의 평화로 클 수 있을까? 시작은 작으나 그 끝은 장대할 것인가?
이번 남북당국회담은 2015년 12월 남북차관급회담 이후 25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오랜 시간 끊겼던 만남이 재개됐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줄 정도로 의미가 크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정부 출범 때부터 위태롭던 남북관계는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타격을 입었고, 2010년 5·24조치로 거의 단절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개성공단도 박근혜정부 들어 2016년 전면 중단됐다. 이로써 한동안 활발했던 민간교류도, 경제협력도, 당국자회담도 모두 끊겼다. 지난 9년간 쌓인 적폐 중 최악은 남북관계를 완전하게 끊어놓은 것이었다. 이번 남북회담은 이렇게 끊긴 남북관계를 다시 잇는 첫 가닥의 첫 매듭이다. 그 자체로 중요한 시작이다.
한반도 평화, 새 여정의 시작
하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9년여 동안 남북관계는 단순히 ‘끊겼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험악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대화가 끊긴 공간에 험한 말폭탄을 쏟아부었다. 그 험한 말들을 군사적 대비로 뒷받침했다. 선제타격을 공개적으로 운위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준비하는 상황까지 치달았었다. 우리 모두는 바로 얼마 전까지 ‘한반도 전쟁위기설’에 떨지 않았던가. 이번 1월 9일의 남북고위급회담은 위기를 넘어 전쟁으로 치닫던 ‘주먹질’을 대화로 전환시켰다. 이 전환이 한반도 평화로 이어진다면 위대한 전환이 될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기도 하고 도처에 위험이 숨어 있으니 낙관할 수도 없다. 그래도 그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여정은 또다른 시작을 불러일으킨다. 북과 미국의 만남과 대화가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관계가 개선돼야 미국발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잠재울 수 있다. 북미 평화가 남북 평화와 짝을 이뤄야 한반도 평화가 그려진다. 북미 평화 없이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북미관계 개선을 촉진할 수 있다. 오바마정부의 ‘전략적 인내’나 트럼프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이름의 대북정책은 북에 압박을 가하고 정권을 전면적으로 뒤흔들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위기설에 기름을 부었지만, 남북관계의 파탄이 기름을 부을 구멍을 만들어준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남북회담의 복원과 남북관계의 개선이 이 구멍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대화를 촉진할 수 있을지, 남북 평화가 북미 평화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다.
이 과제는 북미관계 못지않게 어려운 과제와 맞물려 있다. 지난 9년의 적폐가 북의 핵미사일 능력 확대를 결과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핵 문제’의 일차적 책임당사자는 북 당국이지만 지난 9년의 한반도 위기상황은 그 문제의 구조적 원인이다. 한·미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추진하고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니 북도 맞대응을 했고, 북이 핵미사일 능력을 제고하니 한국과 미국도 군사적으로 대응했다. 분단체제가 긴장된 결과 ‘북핵 문제’가 심화됐고, ‘북핵 문제’가 깊어지니 분단체제도 위기가 높아졌다. 1월 9일의 첫 만남으로 한반도 위기의 악순환이 끝나지야 않겠지만 남북은 이 악순환을 끊어야 살 수 있다. 9년 적폐의 하나인 ‘사드 문제’도 그 길 위에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먼 길, 설레는 걸음
남북관계 개선, 북미 평화, 한반도 비핵화,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어느 하나 이루지 않고서는 한반도가 살 길은 없다. 어느 하나에서 시작해야 한다면 남북관계 개선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는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 한반도 위기의 책임을 전적으로 한국에 떠넘기지 않았다. 북의 책임도 인정했다. 평화를 위해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촛불시민’이 원하던 바이자 ‘촛불정부’가 추진하던 바이다. 한반도 평화는 공동의 책임이고 공동의 과제이다.
과제는 크고 갈 길은 멀다. 그럴수록 첫걸음을 착실하게 디뎌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잘 치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북의 대표단과 선수단 및 참가자들을 잘 맞아야 할 것이다. 북도 살얼음을 걷듯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경쟁하고, 응원단과 공연단은 선수를 응원하고 관중의 흥을 돋워주어야 할 것이다. 이 당연한 것들이 잘되어야 한다. 그래야 또다른 만남과 더 많은 교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산가족도 만나야 하고, 전국체전에 북의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모란봉악단이 남에서 공연하고, 방탄소년단이 북에서 공연하고, 남과 북 연예인들이 합동공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간교류가 늘어나고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 더 어려운 문제들도 논의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시민’은 시위만 평화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당국회담도 촛불의 힘으로 일구는 것이다. 북의 손님들을 평화적으로 맞이하여 남북관계도 평화적으로 모시는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가꾸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촛불혁명’은 완성에 다가갈 것이다. 성문헌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며 ‘이면헌법’을 옹호하던 자들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2018년은 어렵지만 가슴 설레는 그 길의 첫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첫걸음에 불과하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2018.1.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