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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셀프 개선만으로 가능할까

강정민

강정민

최근 재벌들의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현대차, SK, LG, 롯데 등 15개 그룹이 소유구조의 변동을 가져오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는 재벌개혁의 주무부처격인 공정위가 각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노력을 기다려보겠다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지만, 그 형식에 관계없이 주요 그룹 스스로가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상당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지배구조 개선안, 무엇이 담겨 있나

 

지배구조 개선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CJ, 대림, 현대백화점 등 6개 그룹이 순환출자 해소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등은 순환출자가 그룹의 지배권 확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고, 롯데는 2015년 형제간 경영권 분쟁 당시 75만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알려져 논란이 됐던 곳인데, 이를 모두 해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전히 삼성 등 일부 재벌에 순환출자가 남아 있으나 계속 유지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로써 지난 30년간 대주주의 지배력 확장 수단이었던 순환출자는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일감 몰아주기 사례로 지적받던 현대글로비스(현대차), 지흥(LG), 유니컨버스(한진), 에이플러스디(대림), 티시스(태광) 등에서 총수일가 지분을 모두 처분하기로 하였다. 이는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 의지가 확고함에 따라 더이상의 논란을 피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총수일가가 그룹의 유망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개인회사를 차리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얻은 막대한 이득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총수일가가 부당하게 얻은 이득을 회사에 다시 돌려놓는 방안까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롯데, 효성, 현대산업개발은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발표했고, LG, 롯데, CJ, LS, 하림 등은 지주회사 체제의 정비를 약속했다. 지주회사 전환은 복잡한 출자구조를 단순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그 자체가 곧 지배구조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지주회사 전환이 급증한 이유는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려는 규제 움직임과 올해 말 일몰되는 과세이연 정책에 따른 영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이 체제 밖 계열사를 편입하고(LG상사, 가온전선, 예스코 등), 공동손자회사를 단독손자회사로 전환(CJ대한통운)하는 등 지주회사 체제 정비작업을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넷째, 비록 소유구조 개편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SK, 한화, CJ 등이 주주총회 전자투표제 도입과 주요 계열사의 주주총회 분산개최 등 주주권익 강화를 약속한 것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

 

반면, 재벌의 셀프 개혁에 따른 한계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금까지 발표된 지배구조 개선안의 내용 대부분은 그동안 시장에서 꾸준히 문제제기된 것을 뒤늦게 정상화하거나 향후 강화될 규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조치는 최소한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실제 지배구조의 획기적 개선이라 할 만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삼성은 지배구조상 해결해야 할 과제가 가장 산적해 있지만 주주환원 정책과 사외이사 선임제도 개선 정도만을 발표한 상태다. 삼성의 지배구조상 위험은 곧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문제로, ‘이건희→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핵심 출자고리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삼성전자의 지분 8.19%(약 26조원)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 있다. 이런 취약한 지배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했던 삼성의 소유구조 개편 작업은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뇌물죄 사건에 연루되면서 잠정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보험업 규제 정상화 기조에 따라 삼성은 결국 소유·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불행한 사태가 재연되지 않도록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시장의 검증을 받길 바란다.

 

현대차는 생소한 ‘지배회사’ 체제로 전환을 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핵심계열사 외의 복잡한 출자구조는 전혀 손대지 못한 상태이며, 롯데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었으나 최근 총수일가의 형사재판, 특히 신동빈 회장의 법정구속으로 일정 부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배구조 개선안을 낸 다른 그룹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더 중요한 것은 57개의 대기업집단(총수 없는 그룹을 제외하면 49개) 대부분이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하지 않은 점이다. 아직 개선안 마련을 못한 것인지 아니면 계획조차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개선안을 발표하지 않은 그룹의 지배구조상 문제가 결코 더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만 시장의 관심을 덜 받는 정도의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셀프 개혁’만으론 안 된다

 

공정위는 재벌과의 ‘소통’(포지티브 캠페인) 지속을 강조하며 경영관행까지 개선해 나가도록 변화를 촉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재벌개혁의 이상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사실 재벌이 외부 압력 없이 스스로 지배구조와 관행을 개선할 유인은 크지 않다.

 

공정위가 제시한 재벌 지배구조 셀프 개혁의 시한이 작년 말까지 연장되었다가 성과가 미흡하자 올해 주주총회 종료시까지로 다시 연장되었다. 이 때문에 재벌 스스로 개선안을 마련할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재벌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는 우려도 일부 제기된 상황이다. 문재인정부는 재벌들의 셀프 개혁에 이미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는 정부 주도로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의 방향을 제시하고 주기적 점검을 통해 실질적인 재벌개혁의 성과를 낼 때다.

 

강정민 / 경제개혁연대 연구원

2018.4.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