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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의 얼굴, 대형교회: 김진호 『권력과 교회』

권력과 교회 100한국사회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는 ‘개신교 대형교회’다. 거대한 십자가가 걸린 크고 화려한 고층건물의 대형교회들은 한국의 도시경관을 형성할 만큼 곳곳에 위치해 있다. 한국에는 세계 최대의 대형교회가 존재하고 서울은 매주 일요일마다 대형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결집시키는 도시다. 한국의 대형교회는 마치 재벌기업과 흡사하게 막대한 자원을 소유하고 있고 이 사회의 ‘교회’가 가진 ‘권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많은 대형교회들이 막강한 권력을 토대로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와 성폭력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대형교회는 비판과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대형교회 현상이 한국사회에 대해 무엇을 설명하는가?’에 대해 좀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문제는 단지 일부의 몇몇 목사들과 우매한 광신도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훨씬 더 근본적인 한국의 정치적·경제적 변동과 계급, 그리고 의식구조와 욕망의 문제와 뒤엉켜 있다. 그렇다면 대형교회 현상이 드러내는 한국사회의 얼굴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권력과 교회』(창비 2018)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교회가 권력을 획득하고 확장시켜온 역사적 과정과 방식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러나 다소 유연한 방식으로 폭로한다. 일상적인 대화의 방식을 통해 설명되는 대형교회에 관한 이야기들은 대형교회 현상에 관한 방대한 실타래를 여러 가닥으로 풀어낸다. 여러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종국에는 한국의 대형교회 현상이 하나의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핵심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욱이 저자는 ‘대형교회’라는 말을 단순히 대형화된 교회에 국한하여 사용하지 않고 신앙 양식이나 제도, 정신이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저자는 이러한 교회를 ‘짝퉁 대형교회’라고 명명했다)을 포함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개신교 대형교회와 관련해서 누구나 한번쯤 던져봤을 법한 질문에 대한 폭넓은 답변을 제시한다. 책에서 제시된 네개의 대담(각각의 대담자는 강남순 박노자 한홍구 김응교)은 한국의 대형교회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적 사안에 관한 것이다.

 

첫번째는 한국 개신교가 뿌리내리고 있는 정신적 토대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명동 한복판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저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태극기집회에 나가는 저들은 왜 한손에는 성조기를 다른 한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가?’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전도행위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과 집회에 나간 극우의 무리들 속에서 한국 개신교의 토대가 되는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같은 현상들은 한국의 개신교가 갖고 있는 반지성주의와 은사중심주의, 그리고 반공주의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은 한국 근대화가 겪은 사회변동의 결과물이다.

 

두번째는 한국 교회가 세속적인 자본주의와 결합한 독특한 양상이다. ‘한국의 대형교회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이는 한국의 개신교 신앙이 세속적 욕망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교회는 산업화의 성장과 후기산업화의 위로에 대한 필요를 적극적으로 충족시키면서 성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특정 계급이 중심이 되는 교회는 그들만의 인맥 네트워크 기능을 수행하면서 권력층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세번째는 대형교회의 억압적 권위와 조직화의 문제다. ‘대형교회 신자들은 왜 이렇게 순종적으로 보이는가?’ 대형교회에서 목사와 성도의 관계는 종속화되고 이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해 외부의 적들이 양산된다. 반공이나 반동성애 등으로 대표되는 외부를 향한 증오와 내부의 복종은 대형교회의 비민주적인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네번째는 교회가 드러내고 있는 가부장주의와 보수주의다. ‘대형교회는 왜 이렇게 많은 도덕적 결함을 보이는가?’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여성혐오와 성차별, 교회 세습, 재정의 불투명성이다. 이는 모두 공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성직자중심주의를 기반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이다.

 

이 책은 한국의 대형교회 현상을 다양한 차원에서 바라보게 한다. 대담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상당히 분석적이고 그런 점에서 ‘대형교회 현상에 관한 종합적 분석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대형교회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으로 결론 부분에서 ‘작은 교회 운동’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책은 근본적으로 대형교회 현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지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교회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독자는 마지막까지 어떤 명쾌한 해답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책에 간헐적으로 제시된 대안의 가능성들을 기반으로 독자는 다시 스스로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의 대형교회 현상은 소수의 권위적 목사와 엘리트 지도자들뿐 아니라 종교를 추구하는 다수 신자들과의 공모를 통해 유지되어왔다. 전쟁 후의 상처를 극복하고자 했던 생존의 의지와 성장 및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은 대형교회를 가능하게 한 자양분이었다. 이 때문에 대형교회 현상에 대한 성찰은 한국사회의 종교에 녹아든 일상화된 욕망을 되돌아봐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대형교회 현상에 대한 분석과 성찰은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인 한국의 근대화 과정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 될 수 있다.

 

이정연 / 서울여대 기초교육원 초빙강의교수, 사회학

2018.5.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