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한반도 대전환, 본격적 추진 단계로 진입하다
북미정상회담과 지방선거가 하루 차이로 진행되도록 일정이 정해진 것은 우연이지만, 이 우연은 한반도에서 대립과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작업과 한국 내의 개혁이 병행되어야 하는 한반도 대전환의 본질적 성격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두 정치 행사를 거치면서 한반도 대전환은 이제 준비 단계에서 본격적인 추진 단계로 진입했다.
분단체제 극복과 한국사회 개혁의 선순환
과거에도 이러한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북미의 제네바합의로 북미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졌고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그렇지만 이 합의에 회의적이었던 공화당이 같은 해 11월 진행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제네바합의의 이행에 제동을 걸었다. 게다가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김영삼정부가 북한붕괴론에 기대를 거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하면서 기회의 창은 완전히 닫혔다.
1998년 김대중정부의 출범으로 기회의 창이 다시 열렸다. 그러나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부시가 당선되고 네오콘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배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되었다. 북미대립이 고조되었고 북한은 체제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의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은 북미 사이의 적대적 상호작용을 극복하지 못했다.
즉 과거 분단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의 창은 미국의 한반도정책과 한국 내의 움직임이 서로 엇갈리면서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한반도 분단체제 내의 적대적 관계는 오히려 더 고조되었고, 이명박정부 출범부터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냉전 시기보다도 더 수구적인 발상이 대북정책은 물론이고 국내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역주행과 분단체제가 파국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촛불혁명을 촉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북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사회개혁을 병행하여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국면이 2000년과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북미관계 전환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또 미국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진전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사회 내에서 분단체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컸으며,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라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지금 한국의 문재인정부는 촛불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정부라는 점에서 김대중정부보다 훨씬 강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으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임기 초반으로 자신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반도 대전환이 본격적인 추진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반도 대전환의 발목 잡기
정세의 변화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까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작동하며 시작되었다. 이같은 탑-다운식 과정은 적대적 관계의 관성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동시에 이 방식만으로 오랜 불신과 적대적 의식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현실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당장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반응, 특히 미국 내 반응에서도 이러한 조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합의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시작된 평화프로세스를 부정하는 식의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두가지 주장이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발목 잡기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소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역진 불가능한 비핵화)가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반도 비핵화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반응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초한 면이 있다. CVID 중 “역진 불가능”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행이 불가능한 발상이다. 이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지적 능력을 박탈하거나 북한을 노예적 상황으로 전락시킬 때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이 요구를 패전국에나 강요할 수 있는 논리라고 반박해온 것이다. 판문점선언이나 이번 북미공동성명에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완전한 비핵화 자체가 상당한 정도로 역진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역진의 가능성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물리적 제약이 아니라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그 필요성을 없애는 것을 통해 막아야 한다.
둘째, 이번 합의가 미국의 일방적 양보라는 주장이다. 판문점선언에 대해서도 한국 내에서 유사한 반응이 나온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시사한 것이 이러한 논란을 촉발했다(이는 북미의 합의가 모두 공동성명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취해온 조치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 역진 불가능성을 비교하면 북한이 취한 조치가 언제든지 명령서 하나로 재개될 수 있는 군사훈련보다 더 진전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북한과 미국이 취할 조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지금도 일방적 양보를 운운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어느 일방의 굴복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선비핵화론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이 군사충돌의 가능성만 높인다는 것을 작년까지의 한반도 상황이 잘 보여주었다.
한반도 평화에 투표한 지방선거
북미공동성명은 당장 획기적인 전환이 있기를 바라는 기대와는 달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가 꽤 장기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와 같이 평화프로세스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주장들이 단기간 내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내에서도 이러한 주장들을 수입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활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여기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더 분명해진다. 사실 지방선거가 남북 및 북미 관계 변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묻혔다는 평가가 많다. 공약이 없는 선거였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평가 자체가 한반도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반영한다. 일단 유권자들은 60%를 넘는 투표율로 지방선거에 대한 높은 참여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평화보다 더 중요한 의제가 있을 수 없다. 유권자들은 평화에 투표한 것이지 누구의 비판처럼 “정치쇼”에 놀아난 것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이런 식으로 폄하한 것이 유권자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고 지방선거에 참여의지를 높였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한 평가일 것이다. 수구는 물론이고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까지 분단체제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반도 대전환을 바라는 사람들은 이런 관습적 평론을 객관적 평가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의 점진적·단계적 통합과 한국사회 개혁 사이의 선순환 구도를 정착시키고 이를 통해 한반도 대전환을 실현시킬 중차대한 과제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방선거를 거치며 정치적으로 민주개혁세력이 주도권을 갖게 되었고 사회개혁을 위한 새로운 동력이 만들어졌다. 다만 이번의 압도적 승리는 압도적 책임을 의미하는데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특히 이번에 선택받은 이들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사실 유권자들이 한반도 평화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선거결과에 큰, 그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쟁점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유권자들은 현재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어떻게 보면 승리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패배자를 결정한 것이다. 정부여당도 선거가 마무리된 지금 다시 한번 자신의 승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한반도 대전환에 대한 의지를 가다듬어갈 때만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한반도 대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2018.6.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