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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남북관계 진전과 조선학교

김태식

김태식

지난 7월 20일, 세교포럼(세교연구소 주관)에서 개최한 다큐영화 「하늘색 심포니」(2016) 공동체 상영 및 간담회에 토론자로 초청받아 다녀왔다. 재일동포 박영이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일본 이바라기조선학교 학생들이 이북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남북관계 진전 속에서 정식개봉을 앞둔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데, 거꾸로 말한다면 남북관계의 진전 없이 이 영화가 상영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 영화를 실마리로 재일조선인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들은 왜 이북을 지지하는가

 

조선학교 학생들은 이북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왜 남한에는 안 갈까? 가장 쉬운 설명은 ‘이북은 조선학교를 도와줬지만, 남쪽은 기민정책을 취했다’이다. 1957년에 이북에서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왔고, 이는 많은 재일동포들이 이북을 지지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반면에 이남에서는 재일동포에 대한 관심이 덜하고 지원도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동포들이 ‘고향은 이남이라도 조국은 이북’이라 생각했고 조선학교 학생들도 수학여행으로 이북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너무 ‘쉬운’ 설명이다. 해방 전부터 일본 내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산주의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조련(재일본조선인연맹.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전신)의 주요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이북과의 관계가 깊어졌다. 그리고 조련이 해방 후에 일본 각지에 생긴 국어강습소를 재정비하면서 조선학교가 생겼고 이북을 지지하는 교육이 실시되었다. 다만 많은 재일동포들이 이를 따랐던 이유로서는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이나 남북 두 정부의 수립과정, 조련이 지니고 있던 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북이 재일동포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것 등의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쉬운’ 설명으로 이남이 ‘기민정책’을 폈다고 하지만, 반공주의 시각에서 보면 이남에서도 재일동포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재일동포들의 모국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애를 썼으며, 남과 북의 정통성 싸움에서 이들을 포섭하려 하기도 했다. 다만 재일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시각은 충분하지 못했다. 또한 제주4・3도 재일동포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재일동포들은 경상도 다음으로 제주도 출신이 많은데, 4・3의 여파를 피해서 일본에 온 사람이나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이야기를 들은 많은 재일동포들이 이남 정부에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늘색 심포니」에서도 제주도가 고향인 한 학생이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남측 구역을 바라보며 고향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총련과 관계를 맺은 동포들에게는 제주도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본이 해방 후에도 재일동포들을 계속 차별하고 탄압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모든 국가 간의 관계가 그렇듯이, 총련 동포들과 이북 사이에도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에서 힘들게 사는 재일동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손을 뻗은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북이었다. 그래서 이북은 총련 동포들에게 자존심과 직결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따라서 많은 재일동포들이 이북에 ‘귀국’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조선학교의 오늘

 

그러나 오늘날 총련 동포들의 공동체의 중심인 조선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북일관계가 악화되는 속에서 조선학교는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빠졌다. 이제까지 받아왔던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보조금도 끊겼고, 심지어 오오사까시(市)가 중앙정부에 앞서 2016년도부터 실시한 유아들의 교육비용 무상화 정책에서마저도 조선학교 유치원은 배제되고 말았다. 이는 조선학교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한층 압박하고 있으며, 학생 수 감소로 인한 조선학교의 통폐합도 잇따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조선학교를 탄압하는 측은 총련 동포들과 이북의 관계를 문제로 삼으며, 이에 위협을 느끼는 조선학교는 역설적으로 민족교육의 권리를 더욱 앞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류’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키타초오센(北朝鮮)’은 악마와 같은 ‘미친’ 존재이며, 이와 관련된 학교나 단체,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아무도 문제시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래서 조선학교의 역사는 이북과 떼려야 뗄 수가 없음에도 조선학교 스스로도 이북과의 관계를 대외적으로 말하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조선학교의 정치성이 왜소화되어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과 재일동포

 

그러한 조선학교에 큰 희망이 된 것이 바로 남북관계의 전진이며 지난 4월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이다. 조선학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남북회담을 환영하였고 앞으로의 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남북관계가 좋아져야 고향 방문길도 열리며, 일본 땅에서까지 분단현실을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칠석 때에 자기 소원을 색종이에 적는 문화가 있다. 볼일이 있어 집 근처에 있는 토오꾜오조선제9초등학교에 가니 색종이에 “우리나라가 통일돼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보다도 통일이 절실한 것이 재일동포들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의 진전 속에서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지는 남측 시민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늘색 심포니」는 다큐영화 「우리 학교」(김명준 연출, 2007), 「60만번의 트라이」(박사유·박돈사 연출, 2014), 「울보 권투부」(이일하 연출, 2015)의 연장선 위에 있는 영화이다. 또한 KIN지구촌동포연대나 몽당연필 같은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조선학교에 많은 도움을 주고 동포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다만 이런 다큐영화나 민간교류가 큰 몫을 하고 있지만, 남북관계가 긴장되면 서로가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엄연하다.

 

앞으로는 남과 북의 정부가 하나 되어 민족교육기금을 만들어 조선학교뿐 아니라 민족학급이나 한국학교, 일본학교에 다니는 동포들을 포함한 민족교육 전반을 지원하는 흐름이 제도화되기를 바란다. 그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선학교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걸어온 역사를 존중하고, 재일동포들의 다양성과 주체성,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자기가 속한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동기라 하더라도, 재일동포 및 조선학교를 ‘통일의 상대방’이나 ‘대안교육의 이상형’으로만 바라보고 타자화한다면, 그것은 재일동포의 정치성을 또 한번 왜소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두르지 말고, 우선은 관심을 높이고 함께 걸어가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김태식 / 일본 큐우슈우(九州)대학 특별연구자, 이바라기조선학교 졸업

2018.7.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