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낙하를 기다리다가
인공 낙하와 몽중(夢中) 낙하
오랜만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십대 시절에는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 못해도 한달에 서너번은 꾼 것 같은데, 비록 내용은 별 볼 일 없다고 해도 낙하하는 순간 심장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감각이 너무나 생생해서, 오직 그 감각만으로도 꿈은 특별했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십대 시절의 나 또한 놀이공원을 좋아했는데, 무엇보다 무서운 놀이기구 타는 것을 좋아했다. 직선의 정점에서 단숨에 떨어지는 것도, 복잡한 곡선을 그리며 화려하게 오르내리는 것도 모두 좋아했다. 바람을 가르면서도 눈을 똑바로 떴고, 누가 들어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신나하는 것처럼 잘 정돈된 소리를 질렀지만, 가슴 부근을 차갑고 단단하게 누르고 있는 안전바만큼은 절대 놓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사람처럼 부자연스럽게 놀이기구를 탔던 것 같다. 무서웠지만, 그래서 더욱 무섭지 않은 척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공 불안 테마파크에서
최근에 파주와 양주의 경계에 위치한 마장호수라는 곳에 다녀왔다. 농업용 저수지를 호수로 개조하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한 곳인데, 호수 위에 흔들다리라고 불리는 독특한 다리가 놓여 있다. 이름 그대로 건너는 내내 다리 전체가 좌우상하로 은은하게 흔들리는데, 방문객이 몰려서 하중이 많이 실릴 때면 꽤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이 다리를 십대 시절 무서운 놀이기구에 무척이나 약했던 친구와 함께 건넜다. 학교에서 단체로 놀이공원에 간 현장학습 때로 기억하는데, 친구는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강권에 못 이겨 롤러코스터를 타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내려왔고, 벤치에 쓰러지다시피 누워 돌아갈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와 놀이공원을 몇번 더 다녀왔는데, 친구는 놀이공원의 환상동화적인 분위기를 좋아했고 나는 무서운 놀이기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배경음악이 흐르는 회전목마나 접시 모양의 핸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커피잔 같은 아기자기한 놀이기구를 함께 타다가 내가 무서운 기구를 타러 가면, 친구는 차례를 기다리는 내 옆에 오랜 시간 서 있다가 기구에 탑승하는 나를 배웅했다. 놀이공원에 가지 않은 지 5년도 더 되었지만, 지금 당장 무서운 기구를 타야 할지라도 나는 즐길 자신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다리 앞에서 나는 오래전 롤러코스터 앞에서의 친구처럼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몸무게 70kg의 성인 1280명이 동시에 올라가도, 진도7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도 끄떡없다는 안내판의 문구를 여러번 읽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물론 놀이기구의 안전바에 해당하는 파이프 난간이 다리의 양 옆을 버티고 있었지만, 내 몸에 밀착되어 나를 꼭 감싸안아주던 안전바에 비하면 너무 멀었고, 너무 관조적이었다. 반면, 친구는 오래전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러 가던 나처럼 씩씩하게 다리 위를 건너갔는데, 심지어 난간 같은 건 완전히 무시한 채 바닥 사이사이, 수면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투명 유리만 골라 밟고 있었다. 내가 친구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자 친구는 걸음을 멈췄고, 나는 옆에 선 친구의 왼팔을, 왼팔의 감촉을 확인하고 나서야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십대 시절의 친구는 놀이공원의 퍼레이드 행렬 속 춤추는 공주처럼 영원한 행복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친구 주위의 아이들은 기분이 들뜰 때는 친구를 찾았지만,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친구를 미워했다. 친구의 응원을 받으면서, 혹은 친구를 미워하면서 때에 따라 필요한 생기를 얻어갔다. 나는 친구와 처음부터 친했다기보다는 친구의 행복을 때에 따라 능숙히 활용하던 아이들과 멀어지면서 친구와 가까워졌다. 당시 우리는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친구 후보였기에, 실패한 과거의 우정을 복기하며 보다 더 안전하고 완전한 우정을 주조하려 애썼다.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의 감정과 생각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조금은 삭막하지만 상당히 예의 바른 관계를 구축했는데, 그 덕분에 한번도 싸운 적 없이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친구와의 우정 실험이 성공적이었기에,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다양한 유형의 관계에 실험 결과를 대입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맺은 관계 속에서 나와 상대는 서로 마음 깊이 공유하는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아서, 나는 이 관계가 속이 텅 빈 공갈빵처럼 허무하다고, 손가락 끝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산산이 바스러질 연약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관계의 중요성을 폄하해야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고, 언제나 끝을 상상하고 최악을 상정하며 내면의 담력을 기르려고 노력했다. 결국 관계를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그러니 내게 있어 예비된 낙하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낙하의 시점을 알 수 없다는 불안, 낙하의 시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땀으로 축축해진 손으로, 역시 땀으로 끈적이는 그 따뜻하고 무른 왼팔, 살과 피와 뼈로 구성된 살아 있는 안전바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우리를 흔들흔들 운반하고 있는 불안과 직면했다. 하지만 언제나 행복해서 약간의 불행도 견디지 못하고 하늘하늘 스러질 것 같았던, 그저 예쁘고 여린 줄로만 알았던 친구는 정작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나보다 훨씬 더 높은 담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토록 강한 친구와 함께 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게 마치 우리 관계가 영원하리라는, 영원히 행복하리라는 보증처럼 느껴졌다. 친구에게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 나는 이 오랜 친구를 다시, 제대로 알아가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최윤정 / 문학평론가
2018.8.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