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영원히 악기인 몸, 그로써 음악인 사랑: 허수경 시인을 보내며
소식을 듣고, 그가 마지막으로 묶은 시집을 꺼내 펼쳤을 때 「연필 한 자루」라는 시가 나왔다. 제목 때문이었을까, 앞서 시집을 따라 읽는 동안은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였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칼에 목을 내밀며 검은 중심을 숲에서 나오게 하고 싶었다
짧아진다는 거, 목숨의 한 순간을 내미는 거
정치도 박애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고
다만 당신을 향해 나를 건다는 거
다른 시편 어느 구절을 가져와도 그의 전부가 들어 있을 테지만, 직후에 처음 마주한 문장이 더 무겁게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끄덕인다. 검은 중심을 숲에서 나오게 하는 게 아니라면 시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정치도 박애도 깨달음도 아니고 다만 당신을 향해 자신을 거는 것이 오직 시의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가로젓는다. 얼마나 많은 순간을 칼에 목을 내밀듯 목숨을 내밀며 지나왔기에 이렇게 서둘러 짧아졌을까.
“사랑을 배반하던 순간, 섬득섬득 위장으로 들어가던 찬물”과 “늦여름의 만남, 그 상처의 얼굴을 닮아가면서 익는 오렌지를” 차례차례 그리던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점점 짧아지면서 떠나온 어머니를 생각했으나
영영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는 단독자, 연필 한 자루였다
헤어질 사람들이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물에서
영원한 목욕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한 자루였다.
당신이여, 그것뿐이었다.
위의 첫 문장에서 망각은, 물론 떠나온 자의 회한이자 흉터의 단단한 입술이 끝내 다물고 있는 아픔이겠지만, 그렇기에 또한 이 망각에는 마치 돌 속에 칼을 집어넣어 끊어낸 정맥 같은 데가 있다. (이 시는 “그렸다/꿈꾸던 돌의 얼굴을 그렸다”로 시작된다.) 한동안 그 앞에 멈춘 채 붉게 쏟아지는 시간을 두 손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죽음(망각)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그 돌이 살아 있었음을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매번 이런 식이다. 너그럽게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나가고” “겹겹한 산에/물 흐른다”고 썼으면서도, 끝내는 “그 안에 한 사람, 적막처럼 앉아/붉은 텔레비전을 본다”(「몽골리안 텐트」)고 말하며, 고요히 펼쳐놓은 고독의 이미지 속에 전부를 소용돌이치게 만든다. 그러니 그의 문장에서 열의를 지운 체념만을, 도모가 없는 회고만을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슬픔을 끓는 솥처럼 휘저어 끝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그에게 시란 항상 역설적으로만, 슬픔의 근원을 묻고 그 대답으로 삶을 불러오는 일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의 첫 노래가 왜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였는지 알게 된다. 하릴없이 취해 혼자 찾는 대낮 공원이나 오랜 영혼의 문양에 전등을 들이대던 바빌론의 무덤 혹은 나중까지 배회했던 전쟁과 기아와 재난의 도시 어디서건, 그는 ‘절망 속의 갈망’이 ‘희망 속의 전망’보다 낮지만 세고 쓰리지만 깊다는 것을 줄곧 보여주었다. 단독자로서, 다른 무엇도 아닌 인류 자체의 감각과 마주하게 만듦으로써 말이다.
옮기지 못한 문장에 쓰인 대로 “마침내 필통도 그를 매장할 때쯤/이 세계 전체가 관이 되는 연필”(「연필 한 자루」)은, 이제 시인의 운명처럼 읽힌다. 그의 그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별이 ‘음악’으로 흐르는 세계 속에 놓여 있다.
돌이켜보면 그에게 음악은 단 하나, 마음은 없고 몸만 남은 사랑이었다. ‘헤어질 사람들의 영원한 목욕처럼’ 끝나지 않는 슬픔으로 투명한 사랑. 오래전 산문에서 그는 “악기만 남고 주법은 소실되어버린 공후”에 대해 쓴 적 있다. “썩어 없어질 몸은 남고 썩지 않는다는 마음은 썩어버린 악기”처럼, 문서의 바깥에서 썩어버릴 “마음의 역사”를 위해 “언제나 몸이 아플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라지려는, 그래서 있음과 없음을 주고받으며 표표히 떠다니는 ‘음악’은 그가 아픈 몸을 헤집어 꺼내려 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물”을 두 손을 모아 온몸에 끼얹는 일처럼, 그 마음의 시작과 끝이 영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랑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옮긴다.
당신이여, 그것뿐이었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멀리 떠나버린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저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는 일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만큼 아프다. 왜 그럴까. 그들은 그저 떠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개 이곳의 삶이 자신의 사랑을 지옥으로 바꾸기 전에 스스로를 그리움의 편으로 돌려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리움 속일지라도 사랑이 그대로 타오르고 있다면, 그들은 ‘저곳에서의 고독’을 통해 ‘이곳에서의 사랑’을 온전히 지켜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이나 ‘그리움’ 따위의 말로 그들이 치른 시간을 쉽사리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순간들은 살아내는 것 외에는 어떤 말로도 온전히 옮겨지지 않으니까. 그들은 끝내 시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사는 곳은 ‘늙은 산들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뮌스터 외곽이었다. 뒤뜰에는 고국의 화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나를 이끌어 화초들 이름을 하나하나 말해주었지만, 나는 높은 하늘과 소담한 뜰과 조곤한 그의 언행을 눈에 담느라 정작 화초들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늦은 볕이 기우는 뜰에 의자를 펴고 와인을 마시다가 어두워지면 촛불을 켜고 다시 새 와인을 땄다. 역사와 정치를 말하던 그의 남편 ‘르네’가 일찍 잠자리에 들고도 우리는 한참을 사물이 견디는 시간과 우리 이전의 숙주인 어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숨을 빌려 나지막이 물었다. 돌아오고 싶지 않느냐고. 그가 돌아온다면, 공항에 나간 나는 또 포옹은 못하고 직접 캐리어를 끌겠다는 그와 촌스럽게 실랑이를 벌였을 것이다. 한쪽 팔에 걸고 있는 장우산은 길고 그의 키는 작아서 자주 바닥에 끌렸던 산책길을 떠올려 접는 우산 하나를 선물로 준비했을 것이다. 대답 대신 그는 이국의 어둠에 눈을 맞춘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유목민의 낡은 천막을 두드리던 비가 간간이 떨어졌다.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길모퉁이 중국식당’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읊조리며 혼자 밥을 먹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곳의 고독으로 이곳의 사랑을 지키는 얼굴.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는 그곳에 남아서 또 한번 우리를 떠났다. 언젠가 나는 그와의 약속대로 ‘늙은 산들의 마을’을 다시 찾을 것이다. 다만 다음 날 아침, 이제 누구도 내게 돌아가는 기차에서 먹으라며 스페인산 시금치와 네덜란드산 당근과 독일산 햄을 썰어 넣은 김밥을 싸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여기 남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하는 말이 되겠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시가 있는 한, 그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꼭 슬프지만은 않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그의 몸은 충분히 아팠으니 더는 그로부터 거름을 퍼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시인에게 술을 건넬 뿐이다.
신용목 / 시인
2018.10.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