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너의 길을 걷되, 사람들과 함께 가라: 김중미 『존재, 감』
『존재, 감』(창비 2018)은 김중미 작가가 지난 2년간 독자와 대중 앞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1부 「작은 용기가 세상에 틈을 낸다」는 저자의 작품 속 실존 인물들의 구체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고, 2부 「문학과 세상에 대한 물음들」은 독자에게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묶은 것이다.
나는 생존해 있는 작가가 책보다 앞서는 것, 다시 말해 작가의 인생살이나 외모, 발언 따위가 작품보다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고리타분하긴 하지만, 좋게 말해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고, 조금 험하게 말하자면 인기 저자의 대중강연을 손쉽게 엮어서 펴낸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책들도 꽤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중미만큼은 언젠가 이런 책을 써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런 기대를 품었던 이유는 편집자로서 만난 몇차례 경험을 통해 작가가 자신의 삶이나 생활이 드러나는 인터뷰와 원고 청탁에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식구들의 삶이 단순한 흥밋거리로 전시되거나 가난하거나 누추한 삶이 동정의 대상으로 비치길 원치 않는 사람이었다. 평소 그래왔던 작가가, 드러내길 꺼려하고 아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꺼내놓았다.
“문득 동화나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6면)
동화나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는 것에서 작가가 찾고자 한 의미란 무엇이었을까? 인천 만석동의 경험을 다룬 『괭이부리말 아이들』(창비 2000)을 비롯해 『내 동생 아영이』(창비 2002), 『모두 깜언』(창비 2013) 등 주요 작품들이 작가 주변의 구체적인 일상과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동화나 소설에서 다루거나 모티프로 삼았던 이들에게 이야기로 진 빚을 갚고자 새삼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꺼낸 것도, 독자의 호기심이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작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우리 자신을 만든다고 말한다. 작가가 불러낸 사람들은 가난과 불평등에 시달리는 이들, 노동자·이주민·장애인, 학교폭력이나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혹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와 같이 존재하지만 말할 수 없었던 자들이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어렵게 노력하여 대학에 진학한 진영은 입학 첫날부터 대학 내의 어디에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진영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교직원에게서 “장님이 무슨 대학이냐” “귀찮게 됐다”(41면)는 장애인 혐오발언까지 듣는다. 작가는 그에게 손쉬운 위로나 격려를 하는 대신 “진영아, 넌 학교에 입학한 뒤에 매일이 투쟁의 순간이 될 거야”(46면)라고 말한다. 그래도 진영은 여러 친구의 도움으로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작가는 진영을 통해 학교에서 맞닥뜨린 소소하지만 큰 불편들에 대해 매우 소상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한 까닭이 무엇일까? 진영을 격려하고 도와준 친구들에게도 시각장애인 친구는 그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진영을 만난 덕분에 처음으로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알게 되었다. 그처럼 우리도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것이 그동안 작가가 책과 강연을 통해 이들을 줄기차게 불러낸 이유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자존감’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 때때로 자존감마저 상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자존감이 없으면 성공을 못 하고, 사회생활은 곤란을 겪으며, 제대로 된 사랑마저 하지 못할 것처럼 겁을 줍니다”(6~7면)라는 저자 서문을 읽고 한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356권의 책이 떴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 사회에서 ‘자존심’이라는 단어는 꽤나 사치스러운 말이 되었다. 인간은 더이상 그 자체로 존엄하지 않으며, 일하지 못하는 사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존재가, 심지어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도, 사회도, 공동체도 사라진 장소에서 사람들은 자존심을 포기하는 대신 자존감이란 단어를 통해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자기를 존중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슬프게도 이때 우리가 방점을 찍는 것은 ‘존재’나 ‘존중’이 아니라 ‘자기’일 뿐이다.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지금보다 ‘자기’를 중하게 여기던 시대는 다시없었을 터인데도 말이다.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뿌리가 1859년 『자조론』(Self-Help)을 펴낸 새뮤얼 스마일스에게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스마일스의 『자조론』은 성공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때로 역사의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책은 19세기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국토의 노른자위를 빼앗긴 덴마크의 그룬트비가 펼친 부흥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그의 성공에 감명받은 우찌무라 칸조오는 『덴마크 이야기』(デンマルク國の話, 1911)를 썼고, 이 책은 제자 김교신을 통해 일제치하의 조선에 전해졌다. 김교신의 제자 류달영은 분단과 전쟁 이후 한국을 동양의 덴마크로 만들자는 재건운동을 일으켰다. 이때 그가 내걸었던 ‘자조’는 이후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슬로건 ‘근면, 자조, 협동’이 되었고,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자기계발’론의 뿌리가 되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자기계발에 실패한 사람이 되며, 이들이 실패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라는 논리로 귀결된다. 긴 시간과 먼 길을 돌아 한국사회에서 자조론은 결국 자기책임론이 되었고, 이에 상처받고 시달린 사람들이 자신을 확인하고, 위로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존감이다. 그런데 이때의 자존감, 자기존재감에서 방점이 ‘자기’에만 찍힌다면 자기계발론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책이 ‘자존감’에 대해 말하면서도 제목에 ‘자기’ 대신 ‘존재, 감’을 강조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자존감’이 자기만의 긍정, 자기만의 만족을 넘어 위안과 변화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먼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진짜로 잠든 사람을 깨우는 건 쉽다. 그러나 잠든 척하는 사람을 깨우는 건 어렵다.”(125면) 잠든 척 타인의 고통과 사회의 아픈 상처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작은 용기가 견고한 듯 보이는 세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틈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때문이다. 너의 길을 걷되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전성원 /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2018.10.3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