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제2차 민주화운동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현행 선거제도가 과도하게 사표를 발생시켜 국민의 대표성을 효과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향배가 선거에 의해 좌우되는 만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정파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는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왜 국민의 의사를 충실히 대표하는 선거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이나, 선거제도가 민주공화제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감수성이 정파 간에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차이 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파 간의 현안에 머물고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앞날이 밝지 못한 근본적 이유다.
제2차 민주화 없이는 ‘민주공화국’도 없다
우리 국민은 87년 6월혁명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함으로써 행정권력 선출의 민주성을 확보하는 제1차 민주화를 달성했다. 그러나 의회권력 선출에 내재한 민주적 흠결을 치유하고 보통민주주의에 기반하여 정치과정에서 부당하게 배제되는 국민이 없도록 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개혁하는 제2차 민주화에는 실패하고 있다. 전체 의석수의 6분의 1 정도만이 할당된 정당투표 비례제로는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는 지역구선거에서 유권자 과반수 이상의 표가 대표 선출에 반영되지 못하는 흠결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대 양당은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고 소수정당은 지지도보다 턱없이 낮은 의석을 배당받는 현행 상대다수대표제는 다수세력을 제도에 의해 조작해내는 정의롭지 못한 선거제도다. 실제로 지난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지역구 득표율은 각각 37%, 38.3%였지만 지역구 의석은 43.5%와 41.5%를 차지했다. 아울러 청소년, 교원, 공무원의 선거권이나 정당의 자유를 박탈하여 민주공화국을 제한민주주의로 전락시키는 반민주공화적 정치체제이다.
그나마 조작된 다수라 할지라도 제도에 의해 희생된 소수의 의견을 나름대로 반영해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민주공화제의 선거제도로서 최소요건은 갖춘 것으로 수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은 그런 필요조건을 충족하기는커녕 정반대의 효과만을 초래하고 있다. 끊임없이 정치적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소수파를 수적 우세로 억압하고 있다. 일반 유권자의 평상시 정당활동이나 선거운동을 과도하게 규제하여 정치과정을 사회경제적 기득권을 옹호하는 독과점체제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 결과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끝없이 추락하고 정치혐오가 광범위하게 만연한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치체제가 남은 것이다. 국민의 정치참여가 제도에 의해 억압되고, 국민 스스로가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를 외면하는 문화가 만연한 국가를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는 없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화가 필요하다
국민들이 시대착오적인 국정농단에 저항하여 촛불혁명으로 제2차 민주화운동의 서장을 열었으나 정작 그 핵심과제인 선거제도 개혁 등 정치개혁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혁명적 계기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이 곧 적폐청산이자 민생개혁이라는 근본명제가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민생과 경제 살리기가 최대현안으로 언급된다. 물론 국민들의 일자리와 먹거리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가 제대로 된 나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민생과 경제를 결정하는 정치과정에서 국민들이 소외되고 배제되는 조건하에서는 제아무리 좋은 민생경제정책도 빛 좋은 개살구나 공염불에 불과하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민생경제제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런 내용의 법을 만들어야 하고 그 법을 국회가 만들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도가 국민의 의사와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할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국회 정개특위는 이처럼 제2차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선거제도를 결정할 권한을 입법권과 국민대표권을 명분으로 독점하는 것은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공화국 헌법정신에 반한다. 기껏해야 또 다른 야합과 미봉책으로 정치과정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시키는 개악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대한 결정권을 당사자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이익충돌금지라는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에 반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제1원칙을 기본적으로 관철하기 위해서 선거제 등 정치개혁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목표로 하는 국민참여적 심의정치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정개특위는 지금이라도 당략적 선거제 논의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주권자인 국민을 효과적으로 대표할 수 있고 국민의 정치적 주권이 실질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선거법과 정당법을 개혁하기 위해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 국민도 민주공화제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제2차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자세를 다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개혁 등 정치개혁이 적폐청산과 민생개혁의 필요조건임을 깊이 새겨서 정치개혁을 국가개혁의 최대 현안으로 인식하고 그 성공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김종철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11.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