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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나아갈 길

이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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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겨울, 주말마다 거리를 밝혔던 촛불들은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을 탄핵했고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이 극적인 변화를 많은 사람들이 촛불혁명으로 규정했고, 새 정부도 촛불혁명의 계승을 공언했다. 그런데 2년이라는 시간은 이러한 시대감각을 조금씩 마모시켜왔다. 혁명이라는 성격규정에 걸맞은 변화가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가에 의문이 던져지고 있으며,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을 어색하게 느끼는 이들도 늘어났다.

 

촛불혁명을 계승하여 한반도 대전환으로

 

혁명에 대한 상상은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열망을 포함하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혁명적 사건에 대한 환호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실망 혹은 환멸로 변하곤 했다. 촛불혁명도 같은 운명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급진적으로 새로운 사회모델을 실현하고자 했던 과거의 혁명들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헌법적 절차에 따라 평화적 방식으로 권력을 교체한 사건이 혁명이라는 감각과 접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면에 한국현대사의 다른 어떤 사건보다 과거와 단절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동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혁명은 주어진 사회모델에 따라 삶의 조건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식의 변혁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에 기초해 구체적 사회개혁을 하나하나 실현시키는 장기적 작업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촛불혁명을 평가할 때는 이러한 방향으로 진전이 이루어지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촛불혁명을 대전환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러한 진전을 가로막는가를 식별하고 이를 하나하나 극복해가야 한다. 관습적 혹은 낭만적 혁명론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거나 혁명이라는 명명에 담겼던 대전환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왜소화하는 것 모두 촛불혁명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지난 2년간 의미심장한 변화들이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남북이 평화적·점진적·단계적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통합해가는, 즉 한반도식 통일 과정이 시작되었다. 불과 일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던 상황과 비교하면 극적인 전환이 아닐 수 없는데,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변화이다. 탄핵심판을 앞두고 기무사가 계엄령을 검토했던 일을 고려할 때 만약 촛불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극단적인 군사적·정치적 대립은 쿠데타 기도에 더 확실한 빌미와 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다. 다행히 촛불혁명이 우리 사회의 발전경로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이를 배경으로 진행된 남북관계의 변화는 다시 촛불혁명을 진전시키는 동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 흐름을 퇴행시키지 않고 한반도식 통일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만드는 것이 촛불혁명 계승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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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내에서도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각종 차별과 억압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강고해 보였던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의식과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활동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소위 ‘갑질’에 대한 지속적 폭로와 사회적 공분의 표출은 생활공간에서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촛불혁명을 거치지 않았다면 나타나기 힘들었을 이러한 변화들이 가장 은폐된 우리 사회 내부의 차별과 억압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다. 아직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변화의 의지와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촛불혁명은 계속 전진하는 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개혁이 촛불정부의 자격이다

 

그렇지만 마땅히 진전이 이루어졌어야 할 영역에서 변화의 의지가 약화되고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모습들에 대한 우려가 깊다. 특히 촛불혁명을 계승한다고 공언한 정부여당의 책임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경제사회 분야에서 정책담론 및 인사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얽매이며 촛불혁명 과정에서 제기되고 합의된 성장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과제가 오리무중에 빠졌다. 정부여당으로서 단기적 경제실적을 무시한 채 국정을 운영할 수 없고 경제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재벌의 협력을 바라는 식의 경기부양책에 연연하거나 제대로 실행해보지도 못한 소득주도성장론을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하는 비판들에 끌려다녀서는 제 길을 찾기 어렵다. 한국사회와 경제가 촛불 이전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데, 특히 단순한 양적 성장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에 기초해 경제사회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세우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촛불혁명의 성과를 제도화하지 못한 것이 현재 촛불혁명의 진전을 어렵게 하는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모든 정당이 대선 과정에서 개헌을 공약했음에도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야당의 무책임한 태도 못지않게 정부여당의 촛불혁명 계승 의지가 약했던 탓도 크다. 개헌과 선거법 개정은 정부여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결심 없이는 애초에 성공하기 어려운 문제였으나 정부여당은 의지를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지역구를 대폭 축소하고 민의가 선거결과에 더 정확하게 반영되는 선거법 도입에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면 개헌 논의의 동력도 더 커지고 협치를 위한 정치적 신뢰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지지율에 취해 자신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고, 이는 야당들이 정쟁을 확대하는 빌미가 되었다. 지금 다시 선거법 개정이 의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정당 간·정당 내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사실상 개악되는 전례가 반복될 우려가 크다. 이제라도 정부여당이 먼저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이렇게 보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러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가 정부여당이 촛불혁명의 계승자가 될 자격이 있을지 결정하는 시금석이 된다. 그런데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기 마련이다. 분단체제의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수구세력들이 촛불혁명을 폄하하려는 움직임은 더 활발해질 것이며, 촛불혁명을 계승한다고 하는 이들 내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상 촛불혁명의 진전을 교란시키는 행태가 확산될 수 있다. 촛불혁명이 중요한 고비에 접어든 셈이다. 시민들이 촛불혁명 2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앞날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자신이 할 일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8년 겨울호 ‘책머리에’의 일부입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2018.11.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