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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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내 마음도 굴뚝같지만

마음은_표1한권의 아름다운 책을 덮고 멍하니 잠깐의 시간을 보낸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상의 사람들, 파인텍 고공농성의 목소리를 듣다』(마음은 굴뚝같지만 팀 엮음, 나무야미안해 2018).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75미터 굴뚝에 오른 지 408+375일째를 맞은 파인텍(스타플렉스 자회사)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를 응원하는 소중한 연대의 책이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충분히 연대해오지 못한 나에게도 반성과 미안함을 되새겨준 아픈 책이기도 하다.

 

‘408+375일’ 앞의 숫자 408은 2014년 5월 27일부터 2015년 7월 7일까지 차광호 조합원이 구미 스타플렉스 공장 굴뚝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 참혹한 시간이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의 고공농성 기록 309일을 깬 비참한 ‘기네스북 세계기록’. 얼마 지나지 않으면 홍기탁과 박준호가 다시 야만적인 고공농성 세계기록을 갱신하게 될 처절한 상황이다.

 

발걸음을 옮기는 굴뚝이

 

이런 스타플렉스 고공농성자들을 응원하고 연대하기 위해 자칭 ‘굴뚝이’들이 나서서 우리 사회 곳곳에 ‘굴뚝 우체통’을 설치했고 스스로 배달부가 되었다. 파인텍 고공농성을 공론화하고자 텀블벅을 통해 380여 굴뚝이들의 마음이 모여 이 책이 나왔다. “‘마음을 쓰는 것’과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178면)임을 돌이키며 용기있게 이 일에 나서준 정소은, 김다은, 김유경, 정윤영 등 ‘굴뚝배달부’들께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참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저절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181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지금 굴뚝 위에 오른 이들이 우리 사회 공동체에 민주주의라는 선물을 전하는 이들이라는 온당한 정의를 발견해준 것도 고맙다. “차광호 지회장 말이면 무조건 진지하게 경청하던 우리”가 “어느덧 김옥배 동지와 함께 차 지회장에게 스스럼없이 깐죽(?)거리게 되”고, “홍기탁, 박준호 두 동지에겐 어서 내려와 술을 사달라는 정당한(?) 요구도 잊지”(179~80면) 않는 살가우면서도 무서운 연대자들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도 참 소중하다. 공동체는 그런 민주적 관계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더 넓고 끈끈한 관계망으로 묶여가면서 한단계씩 성숙해가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몇년 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벗들과 함께 ‘굴뚝신문’이라는 해적신문을 만들던 때도 생각났다. 그때는 2015년 스타플렉스 차광호와 쌍용자동차 김정욱, 이창근이 굴뚝농성을 할 때였다. 두차례에 걸쳐 2만여부씩을 찍어 전국 각지의 굴뚝배달부들에게 전했다. 굴뚝신문의 경험을 살려 촛불항쟁 때는 ‘광장신문’이라는 가상해적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굴뚝신문 당시 얼마나 많은 노동자민중이 이 참혹한 평지를 떠나 하늘사람들이 되어야 했는가를 정리한 기획 꼭지가 실리기도 했다. 100여건의 고공농성 일지였다. 고공농성은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정리해고할 자유, 광범위한 비정규직화의 야만이 지배하는 이 불의한 시대에 맞서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저항의 거대한 촛불이자, 봉화이고, 등대다. 공권력이, 법이, 정부가, 국회가 충분히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면, 헌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노동3권이, 저항할 권리와 조건이 이 평지에서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면 그 누구도 오르지 않아도 될 절벽이기도 했다. 저 굴뚝 위의 사람들이 단지 불쌍하거나 측은해서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만연한 사회적 불의를 폭로하고 나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있는 사회적 저항의 연대능선으로 함께 엄호되어야 할 까닭이다.

 

12년간의 투쟁, 회사를 넘어 사회로

 

스타플렉스 노동자들은 민주주의자로서의 투쟁을 12년째 힘겹게 수행하고 있다. 스타플렉스의 전신이었던 한국합섬은 국내 대표적인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로 한때 2조 3교대, 3조 4교대의 장시간노동을 강요하며 365일 멈추지 않고 공장을 돌렸다. 이 공장이 문을 닫은 건 저임금과 전쟁 같은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 때문이 아니라 무리한 경영확장과 해외진출, 내부 비리, 공급과잉 때문이었다. 무책임하고 방만한 경영 실패의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었고, 경영진들은 2006년에 자신들만의 살길을 찾아 도망쳐버렸다. 5년여간 빈 공장을 지키며 공장정상화를 이끈 건 부당한 정리해고를 맞은 노동자들이었다. 주채권은행이던 산업은행은 2010년 자산 가치 870억의 공장을 스타플렉스에 400억원이라는 헐값에 넘겼다. 인수 조건으로 고용승계, 노동조합승계, 단체협약승계를 약속했던 스타플렉스는 공장 재가동 1년 반 만에 일방적인 폐업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공장설비와 부지 매각을 통한 ‘먹튀’가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의 애초 목적이었음도 밝혀졌다. 지난 5년의 투쟁이 남긴 상처를 아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을 받아들였지만, 지금까지 남은 11명은 도저히 이런 불의를 묵과할 수 없었다. 2015년 폐업한 공장 굴뚝 위로 차광호가 올라 408일을 싸운 까닭이다. 그 불굴의 투쟁으로 다시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를 약속받고 내려와 들어간 게 스타플렉스의 자회사 파인텍이다. 하지만 구미에서 멀리 떨어진 충남 아산의 건물 한쪽을 세내어 급조한 파인텍은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었다. “패널로 지은 가건물에 사무집기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62면) 그곳은 조합원 8명을 격리하기 위한 수용소였다.

 

“허허벌판에 선 공장 기숙사에는 선풍기나 TV, 이불도 없었죠. 식사는 한 끼만 주겠다고 했고, 단체협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급은 최저임금에 천 원을 더한 7,030원. 수당과 상여금은 아예 없었습니다. 열 달 일하는 동안 손에 쥔 임금은 천만 원이 채 안 됐습니다.” “‘기숙사에 필요한 물품은 자기 돈으로 사서 쓰라’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 약속 파기로 파인텍 조합원들은 2016년 10월 파업을 단행합니다.” “우리가 파업을 하면 파업장인 공장은 그대로 둬야 하는 건데 2017년 8월 30일, 사측은 공장의 기계를 다 반출하고 공장이 있던 건물에는 다른 회사를 입주시켰습니다. 일터가 증발해버린 겁니다.”(29~32면, 「13년의 투쟁의 시간들」 부분)

 

2016년 10월 파업을 단행했지만, 이들은 이명박·박근혜로 대표되는 특권과 부정에 맞선 ‘퇴진촛불행동’을 외면할 수 없었다. 꼬박 5개월 동안 그들은 ‘박근혜 퇴진 광화문캠핑촌’에 입주해 매일 광장지킴이를 자임했다. 그곳에서 함께하며 내가 본 이들은 2017년 3월 박근혜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혹여라도 부결될 경우 그 촛불광장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남몰래 광화문 이순신장군상 뒤편에 망루를 쌓아 올라가던 시대의 민주주의자들이었다. 그렇게 가장 오랜 시간 촛불광장을 지켰던 이들이 다시 저 외진 굴뚝에 올라 오늘로 375일째, 스타플렉스로 직접고용하라는 소박하기 짝이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현재도 충북 음성에서 스타플렉스 본공장을 활발히 가동 중이고 자본 능력도 있지만, 이들이 민주주의자라는 까닭으로 정상적인 교섭조차 해태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할까

 

이런 불의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현실에 아직도 존재하는 제2의 이명박, 박근혜나 다름없는 스타플렉스 사장의 안하무인을 어떻게 응징해야 할까. 촛불정부와 국회는 이 시대의 가파르고 처참한 민얼굴인 스타플렉스 고공농성 해제를 위해 어떤 책임있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까. 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무분별한 정리해고와 온갖 갑질과 폭력, 1100만명의 이웃들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 야만의 시대에 맞서 외로운 촛불로 서 있는 저들이 하루라도 빨리 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도록 주권자들인 우리 시민들은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연대’라는 소중한 이름으로 함께 행동하며 그 길을 밝혀준 아름다운 책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 작은 답이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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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뚝편지> 주소 : 서울시 양천구 목5동 목동서로 20 서울에너지공사 후문 굴뚝농성장

■ 파인텍농성 공식 후원계좌 : 농협 352-1229-4787-43(예금주 이현실)

 

송경동 / 시인

2018.11.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