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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법부는 불신을 사는가?: 탄핵촉구의결 비판에 대한 반론

권호현

권호현

어제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화염병 테러를 당했다. 개인의 판결에 대한 불만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 치부하기엔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가 이미 바닥에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이야기가 법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금 사법부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걷어찬 사법부 신뢰 회복의 기회

 

사법부 불신은 오래된 이야기다. 국민들은 ‘돈과 권력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사법부에 대한 마지막 한줌의 신뢰마저 내려놓지는 않았다. 그런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판사 사찰, 재판절차 개입 등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와 최근 대법원의 대처는 그 마지막 신뢰마저 놓아버리게 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잘못은 누구나 한다. 다만 잘못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잘못 자체보다는 잘못 이후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로 좌우되곤 한다. 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법농단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 사법부 자체 조사에서 확인됐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그에 대한 조치에 미온적이다. 심지어 화염병 테러가 있던 날, 대법원은 국회에 ‘사법농단 관련 판사 탄핵 촉구’ 취지의 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대표회의) 의결을 애써 폄하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전국의 판사들이 피를 토하며 쥐어짠 마지막 사법부 신뢰회복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 셈이다.

 

신뢰받지 못하는 판단자는 존재 이유가 없다. 공정성이 의심되는 판결에는 아무도 승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사들은 실체적 공정성을 넘어 외관의 공정성도 철저히 지키려 한다.

 

“친한 동생이 내가 주심판사인 사건의 담당 변호사인 거야. 정말 반가웠는데 표정 하나 바꿀 수 없었지. 걔가 올라가면서 반갑다고 문자를 했는데 답도 할 수 없었어. 그게 어떻게 이용될지 모르니까. 이 사건이 끝나고 확정되기까지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답장을 미뤄야 돼. 나만 이러는 거 아니야, 다른 판사들도 다 이렇게 노력해. 재판 자체의 공정성은 당연한 얘기고, 외관의 공정성도 중요하니까.”

 

법정에서 국민들을 직접 만나는 일선 판사들은 이런 식으로 소중한 친구들을 잃어간다. 이렇게 간신히 쌓아올린 것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 그리고 지금의 대법원이 걷어찬 한줌의 신뢰는 애초에 그들이 만들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분노와 절망에 빠진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다.

 

 

탄핵촉구의결 비판에 대한 몇가지 반론

 

전국법관대표회의규칙(이하 규칙) 제정으로 상설기구가 된 법관대표회의는 상당한 성과를 냈다. 사법개혁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던 대법원을 압박했고, 재조사로 사법농단의 증거들을 확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했다.

 

법원행정처는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양 전 대법원장은 범죄의 증거가 있었을지 모를 자기 컴퓨터의 자료를 영구삭제(디가우징)했다. 연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잇따라 기각됐다. 현재 연루자에 대한 소환·기소가 예상되지만 형사상 범죄행위로 포섭하기 어려운 ‘재판 독립 침해행위’는 처벌 대상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법관은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는 경우에만 파면될 수 있다(헌법 제65조, 제106조 제1항). 사법부가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법관에 대한 징계는 정직·감봉·견책뿐이고, 가장 중한 징계도 정직 1년에 그친다(법관징계법 제3조).

 

이렇게 정의가 지체되는 사이 일선 판사들은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판결에 불복하는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너희도 다 사법농단의 한통속이 아니냐”고 소리칠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판사도 있었다. 법관대표회의의 이번 탄핵촉구 의결은 어렵게 일선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쌓아오던, 고 한기택 판사를 따라 ‘목숨 걸고 재판해오던’ 전국 대부분의 판사들의 총의로 봐야 한다. 판사로서의 소명, 자긍심을 지켜내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이기도 하다.

 

이번 법관대표회의의 탄핵촉구의결에 대한 일부 비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부당하다.

 

표결한 대표 판사들에게 대표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규칙은 2018년 2월 22일 제정·의결되어 2018년 3월 7일 시행됐고, 전국 각급 법원은 2018년 3월 28일까지 규칙 제2조에 따라 법관대표회의를 구성할 대표 판사 선출을 완료했다. 법관대표회의는 2018년 4월 9일 첫 정기회의 이래 2018년 11월 19일 2차 정기회의까지 총 5회의 정기/임시회의를 열었다. 앞선 회의에서는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사법농단 관련 미공개 문건 공개 요청’ ‘형사절차 포함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 필요 선언’ 등의 안건이 표결을 통해 의결됐고 대법원은 이를 상당수 수용했다. 대법원 규칙에 의해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전국의 대표 판사들에게 대표성이 없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더군다나 지난 네차례 의결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다가 왜 이번에는 대표성을 문제 삼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안건 상정 절차를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규칙 제7조 단서는 긴급한 경우 의안의 사전 통지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규칙 제13조의 위임을 받은 내규 제6조 제3항 등에 의하면, 구성원(대표 판사)은 회의 현장에서 다른 구성원 9인의 동의를 얻어 안건의 상정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의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안건을 상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법부를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국민들에게 법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자’는 안동지원 판사들의 읍소는 대표 판사 10인의 동의로 2018년 11월 19일자 정기회의에서 적법하게 안건으로 상정됐다.

 

탄핵 촉구가 권한 밖의 일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규칙 제6조 제1항은 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 및 법관독립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거나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재판절차개입행위, 인사불이익 목적 법관 사찰행위, 재판거래행위는 헌법 제103조가 규정하는 법관독립에 관한 사항임이 분명하다.

 

법원의 사실인정 없이 혐의만으로 탄핵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헌법 제65조에 따른 법관 탄핵 소추 요건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검찰 수사는 물론 사법부 자체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세워 이뤄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은 2016년 12월 3일 발의되어 12월 9일 의결되었고, 검찰의 기소는 2017년 4월 17일에 있었다. 즉 사실이나 혐의가 확정되어야만 탄핵 소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탄핵 소추 촉구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여부는 탄핵 절차에서 밝히면 된다. 또한 무죄추정의 원칙은 위법·위헌 행위를 한 공무원의 신속한 파면을 목적으로 하는 탄핵 소추 절차에 적용되지 않는다.

 

1표 차이로 의결됐으므로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기권표의 의미

가결과 부결을 가르는 찬성표가 1표에 불과하므로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탄핵촉구안의 의결 결과는 찬성/반대/기권: 53/43/9였다. 찬성과 반대의 차이는 10표다. 혹자는 기권을 반대로 해석하나, 기권의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9인의 대표 판사가 회의에서의 충분한 토론과 숙고 끝에 기권을 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찬반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의미이지 탄핵촉구안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볼 수 없다.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는 대표 판사는 반대표를 던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삼권분립 침해라는 주장에 대하여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는 헌법 제65조가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다. 법관대표회의는 국회에 사법농단 연루자에 대한 탄핵 소추를 촉구하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한 것이지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

 

 

사법부, 시 신뢰의 길로

 

대부분의 판사들이 당사자와 기록을 마주할 때 느끼는 중압감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사건 하나하나에 한 사람의 삶이 달려 있기에 수많은 판사들이 밤을 새워 목숨을 걸고 재판하는 것 아닐까. ‘내가 당사자가 되어도 저런 판사에게 재판을 받는다면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겠다’는 훌륭한 판사들을 몇번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만나지 못한, 또는 미처 보지 못한 판사들의 노고와 윤리를, 그 자긍심을 응원한다. 부디 조금만 더 힘을 내달라.

 

내 몸에 상처가 있다면 곪기 전에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해야 한다. 도려내는 것이 너무 아프다고, 그 상처와 고름마저도 내 살이라고 온몸이 썩어 들어갈 때까지 방치해서는 안 된다. 법관대표회의의 이번 결의는 새 살에 대한 희망이다.

 

권호현 / 변호사

2018.11.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