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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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절망

김현

김현

어제는 절망했습니다.

오늘은 그럭저럭 살 만했고요, 주말에는 후배들과 이촌동 ‘人生의 하이라이트’라는 선술집에서 반건조 노가리와 아귀포에 타이거맥주를 마셨습니다. 신해철의 「안녕」을 따라 부르며 춤을 췄고, 「내 마음 알겠니」를 부르는 젊은 날의 강수지를 보았습니다. 선우에게 아리랑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려는 건 꼼수가 아니냐고 따져 묻다가, 시간강사라도 해야 그나마 인생의 먹구름이 걷혀도 걷히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새삼 이제 선우에게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선우는 하루빨리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겠죠. 일찍이 부모에게 기대어 살지 않은 사람이 자수성가하여 권세를 누리는 성공 이야기를 그라고 왜 꿈꾸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기에 그는 68명 지원에 39명을 뽑는 임대주택에 입주하길 두 손 모아 기원하였습니다.

 

얼마 전, 좋은 기회를 얻어 한시간짜리 방송대본을 맡아 쓰게 되었다고 뿌듯해하던 가영이는 안주를 거침없이 먹었습니다. 평일도,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는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야간의 음식이란 당 충전을 위한 것이겠지요. <영재발굴단>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는 가영이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전날 중화요릿집에서 보았던 세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오빠라고 불렀고, 남자는 여자를 야라고 불렀고, 아이는 여자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대화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야, 내가 너처럼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앨 본 적이 없다.”

“오빠, 내가 없이 살았잖아.”

“엄마, 개가 고양이를 낳았대.”

“개가 고양이를 어떻게 낳아, 개는 개를 낳고, 고양이는 고양이를 낳지. 오빠, 우리 애가 남달라……”

 

저는 삼선간짜장을 먹으며 그들의 대화를 메모해두었습니다. 쓰려고요. 제목. 우리의 성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요즘은 시를 어디에서나 씁니다. 어디에서나 쓸 수 있어서 어디에나 있어도 되는 시가 불쑥 튀어나오고 그런 이유로 최근 저에게 예술적 전위란 나락으로 떨어져보는 겁니다. 가령, ‘너랑나랑호프’에서 육전에 갓김치를 싸 먹다가 사이좋게 굴러떨어져서 부모를 낳는 자식이 되고, 자식을 낳는 부모가 되는 것도 새롭지만, “사장님, 서비스 20분 더 주세요!”를 외치며 간주점프 버튼을 누르는 것이 나락의 최신 감성이지요.

 

이제 서른이 된, 새끼작가 신세를 벗어났으나 서브가 되고, 메인이 되어도 비정규노동자로서의 불안한 삶을 유지해갈 가영이도 어느 날, 제 자식에게서 남다른 면을, 특출한 능력을 찾아내어 없이 사는 가운데도 내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겠죠. 가영이는 언제 처음으로 자식에게서 미련을 버리게 될까요.

 

이제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다솜이는 아직 자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직과 이직과 퇴직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던 다솜이는 요즘 전산 입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일이지요. 결혼해서 아이가 없는 여성 취업자는 어디든 이미 글렀다는 분위기 아닙니까. 남편의 벌이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다솜이는 그렇게 번 제 돈을 먹고 마시는 데 척척 씁니다. 아직 철부지지요. 그런 철부지라서 다솜이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때문에 남편과 종종 다투고,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전화해 아양을 떱니다. 부부의 정이 깊어서일까요, 부부의 도리를 다하려고 하는 걸까요. 하루 걸러 한번씩 새롭게 인생을 살고자 다짐하는 철부지 다솜이에게 아직 인생은 오리무중이겠지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은 1889년 4월 16일에 나고 1977년 12월 25일에 갔습니다.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누구에게나 있는 걸까요.

 

이촌동으로 가기 전에 한 청소년인권단체에서 진행하는 ‘사람책’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소설가를 꿈꾸는 10대 청소년을 만났습니다. “저는 죽고 싶어서 띵동에 왔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죽고 싶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쓰는 삶과 쓰지 않을 때의 삶을 잘 꾸려나가기 위한 자립의 최전선은 청약뿐이라며 권유하였고, 기쁘게 죽음을 맞는 게 꿈이라고 해서, 기쁜 죽음이 슬픈 죽음보다 돈도, 시간도, 사람도 많이 든다며 죽을 준비를 잘 해보자는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소설을 써보자고요. 실로 삶이란 죽음을 준비하는 거더군요.

 

갈 데가 없어서 또래 청소년과 화장실에 들어가 구강성교를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부모에게 성소수자임이 발각된 청소년에게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라고 말해줬어야 했을까요. 사랑에 빠져 육체에 정신이 팔린 가운데 마음을 다해 서로를 에워싸는 행위가 그토록 나락으로 떨어져도 괜찮을까요.

 

그런 시름 속에서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그날 저의 가장 큰 기쁨이 자식이 죽은 슬픔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보려는 부모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희망적인가요. 공연에 초대해준 영만이 어머니는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랩을 하더군요. 생전에 영만이가 즐겨 입고, 즐겨 부르던 것이었지요. “이렇게 잘 견디며 앞으로도 꿋꿋하게 그렇게 지내겠습니다”라는 영만이 어머니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꿋꿋하게 그렇게. 좋은 제목이었습니다.

 

“집으로!” 다솜이가 외쳤습니다. ‘人生의 하이라이트’에서 헤어나자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이도 있으니 아침에는 절망을 생각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합승 택시에서는 저도, 선우도, 가영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택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습니다. 집에 오니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던 짝꿍이 나직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려줘야지.”

매일 아침 생각합니다. 저의 절망은 어디에서 밤을 새우고 오는 걸까요.

때때로 우리는 절망뿐인 인생에서 구원을 찾곤 합니다.

 

김현 / 시인

2018.1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