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김정은의 최근 방중이 지닌 함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부터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사후에 그의 방중이 이루어졌어야 할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사전에 예상치 못한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김정은이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고 지난 3월의 1차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초청을 시 진핑이 수락한 상황이라 이제는 시 진핑이 북한을 방문할 차례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측과 달리 김정은이 다시 중국을 방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미관계 교착, 빠르게 진전된 북중관계
지난 세차례의 방중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상황, 그리고 1차 북미정상회담 전후에 진행됐는데 이번 방중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나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전망되기는 하지만 관련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북미정상회담 관련 일정이 확정된 것 아닌가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의 방중을 북미관계의 종속변수로 간주하는 인식이다. 새해 들어 상황이 급진전됐을 수는 있지만 이것이 김정은 방중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김정은 방중이 적어도 12월 중순에는 정해졌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북미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서울답방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결정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미관계 진전보다는 지난 12월 7일 북한 외상 리용호의 시 진핑 접견과 1월 1일 김정은 신년사에서 이번 방중의 의미를 해석하는 실마리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당시 리용호의 방중은, 그보다 앞선 9월 아세안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미 중국 외교부장 왕 이(王毅)를 만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적으로 시 진핑을 만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12월 1일 시 진핑과 트럼프의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논의됐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시 진핑이 북한의 외상을 접견하고 북중관계 진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힌 것은 확실히 북중 협력이 빠르게 발전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당시는 북미관계가 이미 교착상태에 진입한 시점이었다.
북중 사이의 전략적 소통은 이미 시작됐다
신년사에서는 두 부분이 중국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우선 대외관계를 설명하면서 “세차례에 걸치는 우리의 중화인민공화국방문과 꾸바공화국대표단의 우리 나라 방문은 사회주의나라들사이의 전략적인 의사소통과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를 강화하는데서 특기할 사변으로 되었습니다”라며 매우 간략하지만 가장 먼저 조중관계(북중관계) 진전을 주요 성과로 언급했다. 둘째, “정전협정당사자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은 직접 중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중국의 역할을 좀더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위의 내용보다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다.
작년에 중국은 빠르게 진전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반대할 수 없지만 직접적으로 참여할 공간이 부재한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것이 3자 종전선언이라는 제안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이기도 했다. 중국은 그 이후 공식적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대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호전되는 쪽에 힘을 실어주겠지만 여전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자신의 입장을 반영할 공간이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북한이 다자협상을 제안한 것은 중국으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북중관계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전략적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중관계 진전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미칠 영향
이러한 변화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협상의 당사자가 많아질수록 협상이 어려워진다는 점 때문에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첫째, 북중관계의 발전은 북한의 비핵화 공약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2017년까지 북중관계는 계속 악화되어왔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북한이 공개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고 핵·미사일 실험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현재 북중관계의 진전도 북이 비핵화를 약속한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고 중국은 북중관계에서 이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현재 교착상황에서 북한이 “새로운 길” 운운한 것을 두고 병진노선을 부활시키고 새로운 도발에 나서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보다는 북중관계 개선 등의 방식으로 국면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2019년에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공간은 계속 넓어질 것이다.
둘째, 북중관계 강화가 북한이 적극적으로 비핵화에 나서도록 하는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북중관계가 문제라기보다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이 더 주요한 문제다.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 한발씩 양보해야 할 시점인데 특히 북한은 자신의 양보가 체제안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북한의 안전감을 증가시키고 중국이 나름의 중재적 역할을 한다면 교착상태 타개에 더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도 있다. 즉 북한이 한발짝 더 나가고 미국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도록 하는 데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도 기여할 수 있다. 여전히 미국 내에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미국도 북한이 현재 프로세스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는 데 있어 중국이 기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2018년 북미관계가 빠르게 진전되어 본격적인 비핵화 및 평화 프로세스에 돌입했다면 중국의 역할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본인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히고 있다. 실제로 비핵화라는 것이 단기간에 완수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재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새로운 진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중국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남북미 삼자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던 작년과 달리, 이제 한국정부도 새로운 다자논의 틀 형성 및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 강화 등 다른 행위자들이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2019.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