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선거제도 개혁, 2월이 마지노선이다
국회 정문 앞 농성장에서 이 글을 쓴다. 57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이곳에서 1월 28일부터 선거제도 개혁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72시간 긴급행동에 돌입했다. 작년 12월 15일에 여야 5당 원내대표가 모여 약속한 대로 1월 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 처리해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1월 내 합의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후퇴한 태도와 자유한국당의 몽니 때문이다.
여당의 무사안일주의와 선거제도 개혁 난항
선거제도 개혁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오히려 예측이 가능했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이었다. 이미 2015년에 중앙선관위가 권고한 이 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이를 권역별로 실행해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선거제도 개혁논의가 본 궤도에 오르자, 태도가 바뀌었다. 당론까지 폐기해가며 준연동, 복합연동, 보정연동이라는 생소한 세가지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준연동은 정당득표율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의석만 보장하는 방식이다. 복합연동과 보정연동은 지역구 투표결과를 비례대표의석 배분에도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헝가리를 제외하고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제안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조금이라도 자기 밥그릇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다. 다른 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현 시점의 지지율을 믿고 있는 듯한데, 한달 뒤를 예측하기 어려운 한국정치 현실을 고려한다면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다. 2016년 총선 직전까지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했지만 실제로는 과반에도 못 미쳤던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한국의 정치는 짧은 기간에도 역동적으로 변해왔다. 따라서 지금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현행 선거제도가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일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는 진보·보수 한 목소리
선거제도 개혁은 특정 세력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정말 다양한 주체가 선거제도 개혁을 원하고 있다.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정치, 상식이 통하는 정치,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외면당하지 않는 정치를 바란다면 그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가운데 20~30대 비율이 1%도 안 되는 상황이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에 그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도 선거제도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환경단체들이 모인 한국환경회의는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등 복지국가운동을 하는 단체들도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28일에는 동물보호단체들이 동물을 위해서라도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진보진영뿐 아니라 보수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작년 12월 18일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보수 성향의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이 공동토론회를 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했다. 진보·보수 시민사회단체가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오는 2월, 한국정치 개혁 여부가 판가름 난다
문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구를 획정해야 하는 법정시한은 3월 15일이다. 그 이후에는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고 정치세력 간 이합집산이 시작되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국회법상으로도 2월이 사실상의 마지노선이다. 모든 원내교섭단체 간에 합의가 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상정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최대 330일이 지나야 국회 본회의 표결이 가능하다. 올해 2월에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해야 내년 1월에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고, 그래야 새로운 선거제도로 4월 15일 총선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올해 2월을 지나쳐버리면 모든 원내교섭단체 간 합의가 있어야 선거제도 개혁이 가능해지는데, 자유한국당의 태도로 볼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올해 2월이 한국정치 개혁 여부가 판가름 나는 결정적인 시기다. 공은 이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이 개혁의지가 있다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합의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상정해야 한다. 선거권 연령을 만18세로 하향하는 안건도 그때 함께 넘겨야 한다. 이 또한 이미 한국을 제외한 모든 OECD국가가 시행 중이고 각계의 요구도 높지만,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민주당과 야3당이 합의해서 사법개혁 등 다른 개혁법안들까지 패스트트랙으로 일괄해서 넘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대 국회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날 것이 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끝내 미적거린다면 대통령이라도 나서야 한다. 촛불로 들어선 정권에서 정치개혁도 하지 못하고, 중요한 개혁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할뿐더러 민의에 반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설득해서라도 여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현실화하는 길로 들어서게 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2019.1.3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