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분단체제에서 정상적 정권교체가 가능할까: 선거법 개정이 절실한 이유
제목 앞에서 의아해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1997년과 2007년 대선에서 이미 우리는 ‘정상적인’ 정권교체,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분단체제하에서 정상적인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일 수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무려 네번의 도전 끝에, 매우 근소한 차이로, 그나마도 이인제 후보의 출마로 보수진영이 크게 분열된 덕에, 그것도 모자라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김종필이 대변하는 세력을 등에 업고서야, ‘IMF 구제금융’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책임져야 할 집권세력을 힘겹게 이겼다. 이런 정권교체는 대의민주주의의 전통이 오래된 서구 국가의 교과서적인 정권교체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김대중 후보에 의한 정권교체나 뒤이은 노무현 후보의 극적인 정권수호는 1980년대 말 이래 남의 군사정권 붕괴와 세계 냉전체제의 종식, 북의 국제적 고립과 제1차 북핵위기, ‘고난의 행군’이라는 북의 체제 위기에 연이은 남의 경제 위기 등에서 드러나듯이, 공고했던 분단체제가 동요하기 시작한 덕이 컸다.
참여정부 말기 집권당의 지리멸렬은 누구나 생생하게 기억할 터인데, 그 덕택에 상대당의 이명박 후보는 200만표 차 이상의 낙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두번에 걸친 정권교체는 어쨌든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이라고 평가했다. 과연 그러했던가?
수구세력 해체의 절박함
분단체제의 기득권층, 수구냉전주의자들은 다시는 ‘민주정부 10년’ 같은 정권교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대중, 노무현의 집권 허용은 다시없을 실책이었다. 이명박정부 초기 참여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대대적 뒷조사와 탄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마저 불러왔다. 반민주세력들은 굳이 머리를 맞대지 않고도 손발이 척척 맞아 이른바 ‘역주행’이 일관되고 신속하게 행해졌으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천안함사건은 여기에 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이명박정권의 지원을 받으며 탄생한 박근혜정권은 아예 수구세력의 영구집권을 정착시키려 했다. 박근혜 자신에게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합법 여부를 가리지 않은 이명박정권의 대선 개입은 (자신의 부정과 비리를 덮자는 목적과 더불어) 수구보수연합의 영구집권을 노린 것이었으며, 박근혜를 옹위하고 국정을 운영한 인사들 또한 사실상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의 문재인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잃으면 보수의 탈을 쓴 수구세력에게 다시 권력이 넘어가게 되며, 합리적 보수나 중도 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은 희박해질 것이다. 재집권한 수구집단은 ‘정상적 정권교체’를 원천봉쇄할 체제 구축을 더 전면적이고 더 악독한 방식으로 시도할 것이다. 그게 분단체제를 사는 우리의 현실이다.
합리적 보수 내지 중도세력을 수구정당의 헤게모니로부터 해방해 수구세력을 근원적으로 약화시켜야 한다. 진보정당이 자기 몫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 또한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촛불혁명을 통해 터져 나온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을 정확히 대변하는 길이다. 여기에 선거법 개정의 절박함이 있으며, 선거제도 개혁을 고리로 여야 4당이 개혁입법의 추진을 위해 탄탄하게 연대한다면 그 의미는 막중하다.
황교안-나경원의 자유한국당이 벌이는 막말대잔치는 억지스런 코미디라고 조롱하며 넘길 수준을 넘어섰다. 그들은 노골적인 퇴행의 길을 택했으며,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문재인정부의 실책만 기다리고 있다. 집권당이 볼 때 제1야당이 이 꼴이라면 선거법 개정 없이도 내년 총선에서 지지 않는다는 얄팍한 계산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설령 민주당이 과반수를 넘긴 제1당이 되더라도 자유한국당이 거대야당으로 살아남아 보수 성향의 다른 야당과 손을 잡으면 입법부는 결국 지금처럼 개혁 작업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개혁 지체가 부른 수구세력 부활의 위험
2019년 봄 우리는 또 하나의 전환기에 서 있다. 도도한 변화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는가 하면, 한반도 평화 구축을 비롯한 절박한 과제 해결의 진척이 더디거나 심지어 뒷걸음질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하여 법의 심판에 넘겼지만, 검찰 개혁은 더뎌지면서 난항을 겪는 중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수구진영의 마구잡이 공격에 흔들리기 일쑤이며, 최소한의 재벌개혁도 좌절되는 듯하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어정쩡한 입장 탓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사회를 위한 공론화조차 흐지부지되면서 국민연금 개혁 등은 미뤄지고만 있다.
이뿐이랴. 교육개혁의 일환인 대학입시 개혁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1년 유예에 사회적 공론화라는 법석을 떨고서도 결국 현상유지의 길을 택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 기관이자 국정농단세력의 놀이터였던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 관련자 처벌을 사실상 외면했다. 결국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자유한국당은 전통적으로 지켜온 30%대의 탄탄한 지지를 회복할 참이다.
이 정치적 난국의 와중에 집권 여당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과 선거법 개정을 신속처리안건에 올리기로 합의한 것은 다행스럽다. 아직 각 당 내부에서도 이견과 반발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국민의 대표로서 정치개혁의 큰 고비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개혁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야
덧붙여, 지식인들과 진보개혁 세력의 뼈저린 자성이 절박하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도사린 고질적 병폐들의 깊은 뿌리를 직시할수록 선거법 개정을 통한 수구세력의 결정적인 약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교육 분야를 예로 들자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범민주진영이 바라는 교육개혁 과제가 망라되어 있지만, 어떤 수순을 밟아 되돌릴 수 없는 탄탄한 개혁의 물꼬를 틀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나 실질적 방안이 부족하다. 달리 말해,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 관료층에 비할 때 진보개혁 진영의 실력과 의지가 한참 모자란 것이다. 앞서 2007년 대선의 정권교체를 정상으로 본 일부 학자들의 엉뚱한 진단을 언급했지만,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 뿌리내린 이론과 담론, 그것에 근거한 현실적 정책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그 첫 단추를 꿰려면 수구세력의 정치적 해체 없이 정권교체를 포함한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은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인식이 우선이다. 물론 수구층이 국회에서 거의 사라져도 수구언론, 태극기부대, 극우 개신교 등 극단적 세력의 준동은 당분간 여전하겠지만, 그들은 자신을 확실히 뒷받침할 권력집단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과거에 학부모들은 사랑하는 자식이 볼모가 되는 통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집단행동 위협 때마다 정부와 지역 국회의원을 압박하여 한유총에게 양보하는 방식으로 급한 불을 꺼왔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정치하는 엄마들’을 비롯한 학부모들은 몰라보게 변했다. 덕분에 불법적인 개학연기 투쟁은 수포로 돌아갔고, 한유총은 일단 백기를 들었다. 집권당은 자신의 공도 큰 이 정치적 일화에서 반드시 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 영문학
2019.3.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