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세월호를 기억하는 영화들
평범한 관객인 내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공공의 장에서 펼쳐놓으려니 낯이 뜨겁다. 그러나 어떤 영화는 보통 사람의 눈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담을 수 있고 보통 사람의 말로도 충분히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가닿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좀더 많은 눈에 담겨 좀더 많은 입에서 귀로 흐를 때 더욱 또렷하게 다가오는 기억에 대한 두편의 영화다. 모두 4월에 본 것들이다.
‘악질경찰’ 조필호(이선균)의 지시로 값나가는 물건을 빼돌리기 위해 경찰 압수창고를 털던 기철(정가람)은 회사의 비리가 담긴 장부를 없애기 위해 그곳에 온 대기업 ‘태성’의 일당과 맞닥뜨린다. 갑작스러운 폭발사고로 기철은 목숨을 잃지만, 죽기 전에 찍은 영상을 그와 사귀던 미나(전소니)에게 전송한다. 조필호에게는 창고 폭발과 기철의 사망사건으로부터 본인의 무고함을 증명해줄 증인이, 태성그룹에는 제거 대상이 된 미나는 나쁜 어른과 더 나쁜 어른들이 만든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정범 감독의 전작인 「아저씨」에 아저씨(원빈)를 향해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던 소미(김새론)가 있었다면, 「악질경찰」에는 어른을 불신하고 어른들이 구축한 세계를 향해 끝없이 날을 세우는 미나가 있다. 극중에서 덜 나쁜 어른이자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조필호마저도 미나에게는 진심을 나누거나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닌, 친구의 임신중절수술동의서에 보호자 싸인을 할 수 있는 법적 성인으로 기능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극중 조필호의 대사인 “누구나 겪어본 사춘기 때 질풍노도, 그런 거”로 간단히 정리될 수 없는 무거운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2010년의 「아저씨」와 2019년의 「악질경찰」 사이에 있는 것, 바로 세월호참사다.
미나는 남의 돈을 훔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친구의 시신을 수습해준 민간 잠수사의 치료를 돕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방황하지만 아무도 없는 학교를 남몰래 찾아 몇개의 빈 교실이 보이는 복도를 걸으며 마음속으로 수많은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잘못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미나는 새롭게 휘말린 사건 속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어른들의 태도를 다시 목격하게 된다. 함께 사건에 휘말린 후배 소희가 쓰러졌을 때 또다시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여전히 그에게 세상은 발 딛는 곳마다 사각지대다.
이정범 감독은 그날을 외면하고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악질경찰」의 상업적 성패는 자명해 보이지만 상업영화로서 처음 세월호참사를 성찰했다는 의의가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월호참사를 조금 더 영화의 중심으로 가져와 다루는 「생일」(연출 이종언)은 특별한 서사 없이 유가족이 살아가는 ‘그날 이후’를 보여준다. 어쩌면 아직 벗어나지 못한 그날을 계속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은 정일(설경구)과 순남(전도연)이 애써 버텨내고 있는 일상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워 보인다. 결혼생활은 파탄 위기에 몰려 있고 경제적 위협도 그들을 점차 압박해온다. 마치 슬픔에만 작동하는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처럼,1 직장에서 일을 하고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일상 어디에도 온기나 생명력이 없다.
정일과 순남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사라진 아이들을 보러 간 납골당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소풍 온 듯 즐겁게 웃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침울해지는 다른 유가족들, 그들 역시 정일과 순남처럼 평온한 일상과 끝 모를 절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순남의 옆집에 사는 우찬엄마는 순남이 정신을 놓을 정도로 울 때마다 이제는 놀라지 않고 익숙하게 약을 챙겨주고 순남의 어린 딸 예솔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인다. 동네 곳곳에 살고 있는 수호의 친구들은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서로를 피해 다닌다.
이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 수호의 생일을 기념한다. 저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수호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슬프지만 때로는 반갑다. 기억 저편에 있던 수호가 여러 사람의 육성을 통해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다. 수호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수호가 완성된다.2 영화를 보는 나 역시 어느 한 자리에 초대받아 앉아 있는 것 같고 남아 있는 작은 기억이라도 꺼내어 보태고만 싶다. 다시 올 이런 순간을 위해 더 오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자못 왁자지껄한 생일파티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세월을 견디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두가지 도구는 결국 웃음과 울음뿐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해외 공장에서 근무하던 정일이 아들 수호를 앗아간 세월호참사를 겪은 것은 사내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의 책임을 지고 수감돼 있던 도중이었다. 참사 당시 수호와 가족 곁에 있지 못했던 정일이 집으로 돌아와 아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을 때, 관객들도 벌써 5년이라는 물리적 간격이 생겨버린 그날로 다시 조금씩 다가가는 듯한 경험을 할 것이다.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나 동시에 확실하게 우리를 그날로 끌고 가는 이 영화의 진중한 힘은 많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몸을 맡길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곽문영 / 시인
2019.4.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