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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추경을 넘어 한국형 ‘그린 뉴딜’로

이유진

이유진

미세먼지 ‘나쁨’으로 예보되던 어린이날, 꿈에서 환경부 장관을 만났다. 요 몇주간 미국의 그린 뉴딜 자료와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추경안을 함께 보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보다. 추경은 급히 편성되는 예산이라 여러 제약이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 관련 추경 항목 중 수소차·전기차 보급(2105억원)은 비용은 많이 드는 데 반해 저감 효과는 미미하다. 마스크·공기청정기 보급(689억원)도 필요하지만 사후약방문이다. ‘미세먼지 추경’이라고 이름이 붙어서 기대감이 높을 텐데 실제로 저감 효과를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꿈속의 장관에게 말문을 열었다. 석탄발전 규제나 경유세 인상을 제외하고, 예산으로 미세먼지를 줄일 때는 저감 효과가 높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곳에 우선순위를 두자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공약으로 떠오른 ‘그린 뉴딜’은 대규모 정부 예산을 투입해 10년 내로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Net Zero) 만드는 것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한다. 미세먼지 대책을 그린 뉴딜형으로 추진하면 배출량 저감, 일자리 창출,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세가지 목표를 같이 달성할 수 있다.

 

산업 분야의 국내 미세먼지 배출 기여도는 38%에 달한다. 이번 추경예산안에는 소규모 사업장과 광산 등의 미세먼지 배출방지 시설 설치 항목으로 1080억원이 책정되어 있는데, 에너지전환과 효율개선 사업과 결합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배출량 자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경기도에서 사업장의 연료를 벙커C유에서 LNG로 전환했는데,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배출이 81% 줄어들었다. 사업장에서 버려지는 폐열을 활용하고 노후 설비의 효율을 개선하면 에너지 소비와 함께 미세먼지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저렴한 전기요금 때문에 사업장이 자발적인 효율화에 소극적인 것이다. 효율사업에 투자했을 때 자금 회수 기간이 2~3년밖에 안 되는 사업장들이 수두룩하다. 산업부가 준비 중인 효율화 정책과 결합해 에너지 이용 합리화 총액과 지원액 상한을 늘리는 강력한 미세먼지 대책이 필요하다.

 

선박과 건설기계의 미세먼지 배출 기여도는 16%이다. 부산, 인천, 울산, 평택과 같이 항만이 있는 도시는 우선 선박 대기오염을 잡아야 한다. 부산의 경우 미세먼지(PM10) 배출량의 15.5%,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의 37.8%를 선박이 차지한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대형 컨테이너 선박 한대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은 트럭 50만대, 혹은 경유차 5천만대와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 선박 연료를 LNG로 바꿔야 하는데, 이 분야가 조선산업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조선업체가 LNG 연료추진선 10주를 수주했는데, 우리도 선박을 LNG와 전기로 전환해보면 어떨까. 해양수산부도 노후 선박을 LNG선으로 전환하면 선박대체보조금을 지급하고, 취득세·항만시설 이용료 감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추진 중이다.

 

경유차의 미세먼지 배출 기여도는 전국으로는 11%, 수도권에서는 22%이다. 경유차는 도심 생활공간에서 미세먼지를 배출하기 때문에 시민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버스, 어린이 통학차량부터 압축천연가스(CNG)와 전기버스로 바꾸자. 운행시간이 유달리 긴 청소차량, 택배차량, 배달 이륜차의 연료 전환도 필요하다. 서울시가 프랜차이즈·배달 업체와 협력해 노후 이륜차를 전기이륜차로 교체하기로 한 정책은 모범이 될 수 있다. 이륜차는 승용차보다 6배 이상의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관용차량 8만 9802대 중 경유차가 5만 9327대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전체 자동차 중 경유차 비율이 42.8%인데 비해 관용차량은 66%나 되는 것이다. 정부 미세먼지 대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장·차관이 타는 자동차부터 전기차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경유차 중에서도 화물차는 초미세먼지 배출량 중 거의 70%를 차지하기에 친환경 화물차 구매를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도로중심 물류체계를 철도로 전환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농촌에서는 초미세먼지 2차 생성의 주요 전구물질인 암모니아를 잡아야 한다. 암모니아의 84%가 농촌에서 발생하는데 주로 축산분뇨에서 나온다. 지속가능한 축산분뇨 관리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바이오가스화를 통해 에너지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미세먼지에 취약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있는 유치원, 학교, 경로당은 마스크나 공기청정기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말고 열회수형 환기장치를 단 그린 리모델링을 하면 어떨까? 건물에서 공기를 환기할 때 필터를 통과하도록 설계해 실내공기를 청정하게 유지하고, 공기 중 열을 회수해 냉난방에 활용하면 에너지도 절감된다. 이렇게 건물을 지으면 미세먼지 심한 날뿐만 아니라 폭염·한파 대피소 역할도 톡톡히 할 수가 있다.

 

여러 제안들을 이렇게 쏟아내고 잠에서 깼다. 깨자마자 아, 이건 환경부 장관에게만 이야기할 내용이 아니다 싶었다. 환경부, 산업통산자원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모두가 나서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제안들 중에는 정부가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정책도 있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정책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확실한 것부터 실행할 필요가 있다.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를 밝혀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확실한 국내 배출원을 잡는 일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업들이 대기오염물질 배출 수치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정확히 파악하고, 관리 감독하는 설비와 인력에 예산을 쓸 필요도 있겠다.

 

미세먼지 배출원은 사실상 온실가스 배출원과 겹친다. 미세먼지를 줄이자는 데는 국민적 동의가 높기 때문에, 에너지전환을 통해 온실가스 문제도 함께 해결 가능하다. 최근 대기 정체 현상으로 인해 미세먼지 배출 총량은 줄었지만 고농도 일수는 늘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노력이 시민들이 체감하는 미세먼지 저감으로 이어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미세먼지 관련 정책에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고, 예산집행은 투명해야 한다. 미세먼지로 꿈까지 꾸는 세상, 시민들이 이해하고 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미세먼지 대책이 절실하다.

 

이유진 /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2019.5.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