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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되지 않는 자발성: 홍콩 200만 ‘검은 대행진’의 의미

장정아

장정아

“누구도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인민은 당신(행정수반)의 자식이 아니다.” “생리주기보다도 짧은 20일이 법안 의견수렴 기간이라니 말이 되나?” “항쟁은 출신을 묻지 않는다. 본토 이주민도 동참한다.”

 

세계를 놀라게 하고 홍콩인들 스스로도 놀란 최근 홍콩 시위와 집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누구에 의해서도 대표되지 않겠다는 구호는 지도자 직선을 요구했던 2014년 우산혁명 때 처음 등장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다른가? 홍콩 시민과 학생들이 길거리로 연일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단지 특정 정책에 대한 반발, 정부와 시민의 대립, 또는 중국과 홍콩의 대립으로만 본다면 우산혁명 때와 비교해보기 어렵고 이번 사건 후 홍콩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포착하기 어렵다.

 

우산혁명 때는 분명한 지도부가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누구도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 점령구 집회의 중앙무대를 거부하고 단체들의 지휘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오직 나 자신으로서 참가하겠다는 자발성의 ‘혁명적’ 성격은 찬사를 보낼 만해 보였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모든 조직을 거부하고 심지어 점령구에서의 토론과 모임도 거부하면서 출구전략조차 토론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 시위대 내부 입장 차이에 대한 공격이 심해졌고,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도심을 79일 동안 점거했던 군중은 무력하게 해산되고 말았다. 도심은 빠르게 일상을 되찾았다.

 

우산혁명 이후 짙은 무력감 속에서 토론은 이어지기 어려웠다. 정부는 몇년이 지난 후에도 우산혁명 주요 참여자들을 기소했고, 그들은 최근 속속 수감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수정이 촉발한 반대 시위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103만명을 모았고 일부 지역을 잠시 점거했으며, 마침내 16일에는 200만명이 나왔다. 누구도 이끌지 않았고, 지금도 곳곳에서 경찰 방어선과 대치하는 이들 상당수는 익명의 청년들이다. 이번 시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여기에는 홍콩인들이 오랫동안 자랑스러워했던 법치의 보장을 더이상 받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특히 일국양제 속 홍콩의 공간이 점점 사라져, 중국에 종속될 뿐 아니라 아예 홍콩이라는 공간이 형체조차 없어지리라는 우려가 크다. 갑자기 실종된 후 중국본토에서 조사받았던 서점 관계자들 중 한명은 정부가 법안을 강행하려 하자 아예 대만으로 이민 가버렸다. 시민들이 뽑은 의회 의원들의 자격이 정부에 의해 박탈되고, 페이스북에서 독립을 주장한 글이 근거가 되어 정당 활동이 중지당했으며, 교수도 의원도 청년도 잡혀갔다. 두려움은 지난 몇년간 사람들을 길거리에 잘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상 ‘홍콩을 지킬 마지막 기회’라 여겨진 이번 반대시위가 기폭제가 되자, 그 두려움은 놀라운 자발성과 새로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우산혁명 참여자들이 몇년 후에도 기소되고 수감되는 걸 보면서 이제 시위대들은 신분 노출을 피할 방법을 서로 공유한다. 마스크와 고글은 최루탄도 막지만 신분 노출도 막아준다. 시위 현장에서 ‘셀카’나 사람들 얼굴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걸 삼가고, 교통카드 대신 현금을 쓴다. 1회용 심카드로 바꿔 끼고 중국 앱들을 휴대폰에서 지운다. 페이스북 대신 텔레그램을 쓰며, 거기서 수시로 공유되는 정보에 따라 각자 선택해서 움직인다. 경찰이 찾아낼 수 있는 ‘주동자’는 더이상 없다. 익명의 네티즌들은 필요한 물자목록을 중요도 순서에 따라 분류하여 공유하고, 다양한 ‘교전수칙’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모든 행동은 참가자 자신이 선택해서 하면 된다.

 

그리고 전에 없던 다양한 이름의 주체가 등장했다. 행정수반이 “100만명이 반대해도 강행하는 이유는 제멋대로인 자식을 엄마로서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자 분노한 시민들은 ‘홍콩 엄마’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어 “인민은 당신의 자식이 아니다. 당신은 한 지역의 수장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외쳤다. “아이야, 두려워 말아라. 아빠가 여기 있다”며 아빠부대가 등장했고, 법안 지지 글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사장에게 직원은 “사장님, 당신은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지만 당신의 입장은 나를 대표하지 않습니다”라는 글로 대응했다.

 

이번 사안에 관심이 적을 것 같은 장년층을 겨냥하여, “수정법안이 통과되면 홍콩 돈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는 포스터를 곳곳에 뿌리며 관심을 촉구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광둥어에서도 다소 비하적 의미가 담긴 ‘아줌마’라는 호칭을 스스로 내건 집단은 말한다. “우리 아줌마들은 가족을 돌보느라 이번 시위에 못 나갈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히 반대한다. 전업주부건 맞벌이건 싱글맘이건 본토 이주민이건 종족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아줌마의 이름으로 호소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고 하여 한국에도 유명해진 ‘홍콩 엄마’ 집회에서 엄마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지금 일어나 우리 자식들이 폭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을까봐, 그래서 중국 톈안먼사건 희생자 엄마들처럼 자식이 죽고 난 후 30년이 지나서도 계속 그 말을 해야 할까봐, 늦기 전에 지금 일어나 말하겠다.” 자식을 지키겠다며 나온 엄마들은 홍콩의 청년들을 통해 30년 전 중국 땅에서 죽어간 이들을 함께 끌어안는다. 이렇게 소환되는 톈안먼사건은 단지 오래전 먼 곳에서 있었던 불행한 비극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며 이어진다.

 

운명에 더이상 순응하지 않고 나의 도시 홍콩을 스스로 구하겠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하나가 아니다. 여러 이름이 등장하고, 이름없는 시민이 등장하고, 누구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는다. 이 사건을 그저 중국과 홍콩의 대결구도로만 본다면, 또는 한국에서 배운 거라고 자찬하는 데 그친다면, 곳곳에서 새롭게 솟아나는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그 가능성은 홍콩만의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

 

장정아 /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인류학 

2019.6.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