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트럼프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
지난 일요일(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회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토요일 오전 G20 정상회담 참석차 머물던 일본에서 SNS로 김정은 위원장을 DMZ로 초대한 지 30여시간 만이었다. 일요일 오전의 한미 정상회담도 G20 회의도 이 파격적이고 전격적인 만남에 묻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하고 현직 미국 대통령 최초로 북측 지역으로 건너갔다. 이후 두 사람은 남측 자유의 집에서 50여분간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실무협상 재개에 합의했다. 백악관은 트럼프가 군사분계선을 넘는 ‘역사적 순간’의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북한 언론은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선포했다.
이번 트럼프 방한은 2017년 11월 이후 두번째이다. 전임자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방한은 2014년 4월 하순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을 내세웠고, 세월호사건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었다. 오바마정부는 박근혜정부의 친중 행보를 경계하며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할 것은 물론, 한미일 삼각협력을 위해 한일에 과거사 갈등 극복을 요구했다. 2013년 말 바이든(J. Biden) 부통령 방한과 2014년 오바마의 방한, 그리고 제도적으로는 한미일 외무부 차관의 삼각협의체를 통한 미국의 압박은 결국 2015년 말 한일 위안부합의로 이어졌다. 문재인정부가 위안부합의를 파기하고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판결하면서 현재 한일관계는 다시 과거사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우려와 달리 적어도 공개적이고 노골적인, 화웨이나 한미일 협력 관련 압박은 없었다. ‘이단’인 트럼프의 ‘리얼리티 쇼 본능’ 덕분이었다. 2017년 방한 당시 트럼프는 날씨 때문에 DMZ에 가지 못했다. 이번 방한에서는 ‘SNS 라이브 쇼’를 기획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을 것이며, TPP는 취임 직후 탈퇴한 터였다. G20 정상회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례화됐다. 상대적 쇠퇴를 다자주의로 관리해보려는 미국 패권의 ‘정통’적 대응이다. 트럼프의 ‘이단’은 자유무역이나 기후변화 관련 협력이 G20 공동성명에 채택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번 G20 회담의 최대 관심은 미중 담판이었다. 트럼프는 시 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화웨이 관련 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한편 추가 관세 부과는 유예하고 협상을 이어가는 휴전을 선택했다. 그로 인한 최대 수혜자로 트럼프는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중서부의 농민을 들었다.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으로 보자면 2020년 11월 3일 대선 승리가 대중국 압박에 우선하고, 미국의 능력으로 보자면 전면적인 대중국 무역전쟁을 치를 준비가 아직은 되어 있지 않다.
체계적인 대중국 경쟁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가 오바마 시대 미국 패권의 표현인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소환하고 있지만, 이 표현은 그 상위 보고서인 국가안보전략에서는 완전히 삭제됐다. 이번 일본 G20 회의를 전후해서, 트럼프는 미일동맹이 미국의 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인도의 관세인상을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하는 한편, 기자회견에서는 미중관계가 (전략보고서들의 규정인 전략적 경쟁자가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여야 한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인 일본과 인도를 비판하는 가운데 일본은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했고, 인도는 미중과 삼자 정상회담을 갖는 한편 중러와도 삼자 정상회담을 갖는 균형외교를 연출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개방성, 포용성, 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명한 판단이다. “개방성, 포용성, 투명성”은 중국의 일대일로와 한국의 신북방/남방정책 간 “조화로운 협력”의 원칙으로도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인공, 한반도의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며 북미 정상의 “판문점 상봉이 남과 북 국민 모두에게 희망이 되고 평화를 향한 인류 역사의 이정표가 되길” 기원했다. 트럼프 사용의 올바른 예이다.
이혜정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2019.7.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