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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하여

김도현

김도현

2019년 7월 1일은 한국 장애인복지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1988년 11월 장애인등록제의 전면적 시행과 더불어 시작된 장애등급제가 31년 만에 단계적 폐지의 수순에 돌입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제 장애인들이 받는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에서 의학적 기준에 의한 1급부터 6급까지의 등급이 사라진다. 대신 일정 기간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일상생활 영역에서 필요한 지원(활동지원, 보조기기, 응급안전서비스, 장애인거주시설[장애인수용시설])은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이하 종합조사표)에 따라 제공되며, 2020년에는 이동 영역, 2022년에는 소득과 고용 영역에서도 새로운 서비스/급여 기준이 마련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던 바로 그 첫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위해 지하철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1,842일 동안 농성을 벌였던 이들은 또다시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에 돌입해야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서울 집무실이 있는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말이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장애인들이 외치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변화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산에 맞춘 서비스가 아니라 필요에 맞춘 서비스

 

장애등급제 폐지는 기본적으로 장애인의 필요와 사회적·환경적 특성에 따른 개인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전제로서 요구된 것이다. 등급제 폐지가 하나의 그릇(형식)이라면, 이 그릇에 담겨야 할 음식(내용)은 개인의 필요에 따른 서비스와 급여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마련한 종합조사표는 기존의 의료적 관점에 기반을 둔, 기능 제한 중심의 서비스 판정 틀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종합조사표에 의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오히려 기존보다 줄어드는 장애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9일까지 온라인 모의평가를 실시한 결과, 평가에 응한 2,345명의 장애인 중 37%에 해당하는 867명(탈락자 176명 포함)은 활동지원 시간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능후 장관은 6월 25일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방안’ 브리핑에서 “서비스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겠다”면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 이는 보건복지부 또한 활동지원 시간이 감소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일부 장애인은 서비스 시간이 늘어나지만 일부 장애인은 줄어들게 되는 것은 정부가 장애인의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예산에 맞추어 서비스가 분배되도록 종합조사표의 점수를 임의적으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도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장애인 1인당 ‘월 평균’ 127시간에 맞추어 편성 중에 있다. 장애인수용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스웨덴의 경우에는 2015년을 기준으로 1인당 ‘주 평균’ 127시간(여성 125시간, 남성 129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네배가 넘는 서비스 양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스웨덴의 장애인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것일까?

 

장애인시설을 둘러싼 문제들

 

정부가 마련한 장애등급제 폐지 정책의 또다른 근본적 문제점은 일상생활 영역의 지원서비스 중 하나로 장애인시설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의 폐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패러다임이자 체계이다. 정부 역시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를 복지 개혁의 중심축으로 설정하면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전국 8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시범사업(선도사업)도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 영역의 지원서비스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거주시설’이 아니라 탈시설을 위한 ‘전환주거’(자립생활주택, 지원주택)가 되어야 마땅하다.

 

더불어 현재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의 8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당연히 중증의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그 필요도에 따라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서비스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체계의 핵심 중 하나인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는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요구해온 일일 8시간에 훨씬 못 미치는 최대 5.5시간으로 한정되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자 중 기본형(88시간)은 활동지원서비스에서 월 40시간이, 확장형(120시간)은 월 72시간이 차감된다는 사실이다. 기초노령연금과 유사하게 ‘줬다 뺏는’ 서비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장애인운동을 관리하겠다는 관료적 태도부터 바뀌어야

 

장애등급제 폐지 운동을 벌여온 주축들이 다시금 농성에 들어간 이유에는 박능후 장관의 ‘망언’도 있었다. 2017년 8월 25일, 그는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하여 장애등급제 희생자인 故 김주영, 박지우·박지훈 남매, 송국현 등의 영정 앞에서 머리 숙여 조의를 표했고,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을 약속했다. 이를 계기로 1,842일간의 광화문 농성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민관협의체에는 농성을 진행한 주체들이 주요 협의 파트너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의체 활동이 종료되어가는 시점에 보건복지부는 법인단체들만을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고, 박장관은 6월 25일의 브리핑에서 “소위 말하는 비법정단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시위를 한다거나 과도한 의견 표출을 하는데, 그러한 의견 표출에 정부가 너무 경도되지 말고 균형 있게 기존의 법정단체를 중심으로 대표성 있는 단체들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해 달라는 요청이 공통적으로 있었다”고 발언했다. 자신들이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장애인단체들을 내세워 장애인운동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하나의 역사적 방향이자 흐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료적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 흐름이 진전되는 가운데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장애등급제라는 유령의 희생자를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힘겨루기나 자존심 싸움이 아니다. 적어도 이제는 더이상, 또다른 송국현을 만들어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김도현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

2019.7.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