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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우리는 아직 더 많은 차별을 발견해야 한다: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190807_표지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권문제 중 ‘차별’이 핵심 이슈로 부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차별과 관련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건수와 법원 소송 건수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차별행위 건수 자체가 증가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는 기존에 잠재해 있던 문제가 새롭게 차별로 인식되거나, 그동안 숨죽이며 지내야 했던 차별 피해 당사자들이 점차 권리투쟁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 앞으로 차별문제는 더 많이 인식되면서 더 광범위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지난해에는 시중은행들이 남녀 채용 지원자의 점수를 노골적으로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충격적인 일이다. 아마 다른 기업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더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노골적인 차별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이를 적발해 엄벌에 처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사례는 철저하게 밝혀내어 처벌하면 되는 문제지, 차별인가 아닌가가 헷갈리는 사안이라고 보긴 어렵다.

 

차별에 관한 대중 교양서라면, 이러한 채용비리 사건보다는 좀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쟁점을 빠짐없이 다뤄야 하는 교과서나 전문서적이 아니라면, 독자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부분이나 현실에서 자주 혼동되거나 논쟁이 되는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는 특별한 의도 없이 자기도 모르게 자행하는 차별문제에 착목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선량한 의도를 가진 평범한 사람도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선량한 차별’ 문제에 집중한 것은 매우 적실한 전략이었다. 현재 수준에서도 그렇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앞으로 차별문제는 더 많이 인식될 것이고, 그중에서 특히 ‘선량한 차별’은 더더욱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저자는 어떤 문제가 차별이 될 수 있고, 왜 차별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악의적인 차별주의자가 아니라,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차별에 동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차별주의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아니, 나 자신도 차별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조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차별주의자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척결 의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찰을 촉구하면서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왜 우리가 그런 고통스러운 자기성찰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혼신의 힘을 다해 설득한다. 이래도 우리 사회에는 차별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바로 당신이 차별과 전혀 상관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 반복하여 묻고 또 묻는다. 인권과 차별을 전공하는 저자 자신도 선량한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자기 고백과 함께, 이 질문은 더욱 진지하게 건네지고 있다.

 

이 책은 많은 쟁점을 다루지만, 단순히 사례를 나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토크니즘, 다수자의 일반적 특권, 편견과 고정관념, 고정관념 압박, 구조적 차별, 우월성이론, 편견규범이론, 능력주의, 간접차별, 정의론, 공정세계가설, 차이의 정치 등 차별에 관련된 여러 이론을 소개하고, 적합한 사례를 제시하여 이해를 돕는다. 솜씨 좋은 저자의 문장을 쫓아가다보면 이 책이 200개가 넘는 선행연구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책의 분량도 불과 200면 남짓이다. 이 분량에 이렇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내용이 담기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만큼 꼭 필요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했다. 허투루 쓰인 문장이 없어, 밑줄 치지 않을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전문연구자가 대중교양서를 집필하는 목적은 일반 독자가 접하기 어렵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전문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역시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이 책은 왜 전문연구자가 대중교양서를 집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범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이론과 사례가 대부분 미국 등 해외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의 게으름 때문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차별문제에 관한 한 국내의 연구나 조사는 척박한 수준이다. 참고하고 인용할 만한 문헌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책이 한국의 현실에 기반한 사례들과 실험·조사 결과에 근거할 수 있었다면, 좀더 생생하게 ‘우리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이 한국에서 차별문제에 관한 연구를 촉발해내리라 기대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 책을 통해 차별문제에 관해 관심이 생겼다면 추가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차별없는 세상과 법』(이준일, 홍문사 2012)은 차별금지법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차별문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다룬 주제들이 전체 차별문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이란 무엇인가』(데버러 헬먼, 서해문집 2016)는 차별이 나쁜 이유를 철학적으로 규명한 보기 드문 책이다. 읽기에 만만하지는 않지만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외에도 최근 ‘혐오’와 ‘혐오표현’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혐오/표현은 차별문제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좋은 짝을 이룰 것이다. 개별영역에서 차별 문제를 다룬 책은 꽤 많다. 특히 최근 성차별과 성평등에 관한 좋은 책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출간되었다. 페미니즘 이론은 성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차별문제 일반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이론이다.

 

글을 맺기 전에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을 하나 꼽아본다.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38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차별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했으면 좋겠다. 그 과정을 통해 아직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는 차별의 현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날 것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충돌과 갈등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한단계 더 나아가는 진통일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그 여정에 함께 오르자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제안한다.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2019.8.7.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