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평화와 상생의 촛불정신
이번 여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송원근 연출)은 일본군 ‘위안부’(성노예제) 피해자인 김복동(1926~2019)의 생애를 다룬다.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의 증언자에서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확장되는 한 인물의 여정을 차분하고 서늘하게 보여준다. 군복공장에 일하러 간다는 말에 속아 만 14세에 강제로 위안부가 된 김복동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다니다가 8년이 지난 1948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1991년 김학순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이듬해 김복동은 62세의 나이로 본격적 증언활동에 나섰다. 아시아 연대회의,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남긴 그는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분쟁지역 아동과 전쟁 피해 여성을 돕는 활동에 앞장섰다. 국내외를 순회하는 김복동의 인권평화운동은 27년간 지속되었다.
올해 초 김복동은 소원하던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하고 영면하였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과하라!”는 그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온다. 더불어 관객들의 깊은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2015년 12월 박근혜-아베 정부가 공식적 사죄를 원하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 직후의 모습이다. 당사자 없는 졸속 합의와 위로금 지급, 화해치유재단의 설립을 두고 거센 비판이 일었음에도 일본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박근혜정부 역시 이에 호응하였다. 영화의 후반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고,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김복동과 그의 활동에 연대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숨가쁘게 쫓아간다. 다큐에서는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위안부 피해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역사적 쟁점은 이후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혁명의 중요한 불씨가 되었다.
아베 정부가 퇴행적 군국논리의 부활로 역사를 거스르는 행보를 시작한 가운데 이 영화는 우리가 대면해야 할 중요한 현실로서 식민지 역사를 환기한다. 올해 7월, 아베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표명한 후, ‘백색국가’ 제외 조처를 발표하였다. 강제징용배상 판결을 경제적 문제로 바꾸는 일본정부의 대응방식은 전쟁범죄의 책임을 부정하고 은폐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고 그로 인해 조선이 근대화되었으며, 일본군 ‘위안부’도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제국주의의 논리가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동시에, 자국에도 이로울 리 없는 경제전쟁을 시작한 아베 정권의 의도는 명확하다.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적대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아베 극우정권과 기득권 집단이 기도하는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의 부상을 경계하는 극우정권의 ‘신정한론(新征韓論)’ 이면에는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일본의 영향력 감소에 대한 불안과, 중국이 부상하면서 달라진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촛불혁명의 동력을 바탕으로 평화체제로 나아가려는 한반도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무력화하려는 국내외 우익 기득권 세력이 이러한 일본의 정치논리와 연결되는 맥락도 뚜렷하다. 그런 점에서 아베 정권이 일으킨 경제전쟁은 촛불혁명이 주축이 된 한반도 평화체제의 세계적 영향력을 무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3·1운동 이후 우리 시민들이 오랜 기간 실천하고 심화해온 민주·평화혁명의 정신이 남기는 메시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하며 새 시대를 열어온 촛불의 정신은 남북화해와 한반도 통일 및 세계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실제로 한일 갈등과 무역 보복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은 그동안 단련되어온 촛불시민혁명의 저력을 실감케 한다.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소비실천과 역사교육을 통해 창의적 발상의 시민 참여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인들의 시민운동 편승을 배격하며 아베 정부가 아닌 일본 자체를 적대시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적 행동은 일본 내에 존재할 다수의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더불어 촛불정신이 현재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진정한 동력이 되려면 불평등과 적폐를 개선하려는 사회정치 개혁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경제전쟁에서 실질적 타격을 받는 다수 시민들을 위해서 민생을 압박하는 사회 제반의 불평등 현실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정부의 체계적 정책 제안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그동안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역사인식과 교육의 문제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과 평화통일이 세계평화에서도 왜 중요한 쟁점인지를 알려준다. 영화가 포착한 김복동의 삶 역시 가혹한 식민지 현실을 거쳐 오랜 기간 투쟁해온 한반도 민중이자 세계시민의 생애와 겹쳐 보인다. 그의 증언과 평화운동은 전쟁폭력의 참상을 고발하고 치유를 도모하는 세계적 차원의 여성 연대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기습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에 맞서 시민들이 거리와 광장에 선 그 시점은 각계각층의 적폐와 불법에 항거하는 촛불혁명의 시발점과 얽혀 있다. 국내외 기득권세력에 맞서는 촛불의 힘은 남북의 상생과 평화를 기도하며, 지역적·세계적 냉전세력에 대한 저항과 타격이 되었다.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거리와 광장에 선 김복동과 정의기억연대, 평화나비네트워크 및 여러 시민들이 간곡하게 호소했던 것 역시 이러한 평화적 저항운동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집단지성의 메시지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평화와 상생을 기도하는 촛불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9년 가을호 ‘책머리에’의 일부입니다.
백지연 / 문학평론가
2019.8.28.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