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불확실성 시대, 한반도가 나아갈 길
한숨이 나온다.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서다. 극우의 등장, 시장의 붕괴와 보호무역주의의 부상, 빈부격차의 확대 등 극복했다고 믿었던 문제들이 극단적인 양태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혹자는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미·중을 중심으로 한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각 분석의 세부 논점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은 지금 이 시대가 세계사적 전환에 있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본다. 그리고 상당수는 그 전환의 방향이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다고 평가한다.
불과 일년 전만 해도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든 한국사회는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트럼프가 혐오와 적대의 언어를 쏟아내며 대통령이 되고, 영국이 자국민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브렉시트를 통과시켰을 때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에서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고, 보수화된 일본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는 남북의 지도자가 만나 비핵화와 평화를 약속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에 어둠이 드리우더라도, 시민의 힘을 확인한 한국사회만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낙관했던 것일까? 아니면 한반도 문제가 사실은 세계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탓일까? 판문점선언 이후 중요한 고비마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갈등해온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의 대결구도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미래를 예측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강제징용 문제로 촉발된 한일관계 악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한-미-일로 이어지는 안보동맹의 위기로까지 확산되었으며, 사드 배치의 여파가 여전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동북아를 지배해온 질서인 동맹의 원리가 국익의 논리로 바뀌는 순간,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더욱 미궁으로 빠진다.
북한과의 관계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노이회담 결렬의 원인 제공자로 한국을 지목하고 있는 북한정권은 문재인정부를 향한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거기에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반발로 수차례에 걸쳐 단거리탄도미사일 시험에 나서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하노이회담으로 생채기가 난 김정은 위원장의 절대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에 나서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 북한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하노이회담의 충격을 극복하고, 미국과의 유리한 협상을 통해서 경제를 개선하는 것일 텐데 이 과정에서 남한을 배려할 여유도 없을뿐더러 실익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해진 동북아 정세에서 북한은 결국 외부의 적을 공격함으로써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는 전통적 방식으로의 회귀를 선택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과거 ‘적’의 자리에 있었던 미국이 협상 대상자가 되었고, 이제 남한이 ‘적’으로 호명된다는 데 있다. 안보동맹이건 글로벌 밸류체인이건 한동안 공생하며 협력해온 미국과 일본이 국익을 앞세우며 한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북한도 체제안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고, 적도 될 수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와 아베, 김정은과 시 진핑은 사실상 비슷한 통치전략을 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시적인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혐오와 적대의 언설을 확산하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방식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의견이나 다중의 개인(들)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익’이라는 가치로 배제된다. 정치적 이념의 스펙트럼과는 상관없이 극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이 횡행하고, 극우적인 자국민우선주의를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확산한다. 비판적 지식인과 전문가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이 조장되고, 대중의 눈과 귀를 현혹한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권력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촛불시민 정신으로 탄생한 정권이라 하더라도, 쏟아지는 외부의 압박과 이에 정비례하는 내부의 갈등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금 한국의 선택지는 주변국처럼 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구축하여 주변국을 변화시키는 것 두가지밖에 없다. 단연 쉬운 길은 주변국처럼 되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을 강조하며 국민의 단결을 강조하는 것이다. 흔들리는 안보위기는 더 많은 무기 도입과 군사 훈련 등으로 대응하고, 격화되는 경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재벌개혁이나 경제 불균형 해소 등은 유보하는 것이다. 점점 격화되는 경제·안보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더욱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주변국과 정반대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시민의 힘으로 자국민중심주의의 폭력성을 제기하고, 국가가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평화의 한반도가 정상들의 합의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 시민들의 교류와 협력에 있다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곳곳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군사적 긴장이나 보호주의 경제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상황이 인류 모두의 파멸로 귀결될 수 있음을 자성하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를 둘러싸고 외교 난맥이나 정책 실패 등을 지적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지금 더 큰 문제는 세계사적 전환의 파고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피 흘려 쟁취한 시민의식이 국가의 이름으로 탈취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운운하며, 혐오와 갈등의 감정을 확산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두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를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시민이 깨어 있는 것이다. 위기의 근원을 꿰뚫어보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김성경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9.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