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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들’이 실현해낸 안희정의 정치

김혜정

김혜정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유죄가 최종 확정되었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을 인정하고 징역 3년 6개월,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선고한 2심에 대한 상고를 9월 9일 대법원이 기각했다.

 

7년간 충남도지사였고, 수년간 정치 분야 차세대 리더,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2위였던 안희정은 지난 대선을 마치고 발탁한 여성 수행비서가 출근한 지 3주 만인 2017년 7월부터 강제추행을 시작했다. 공소 내용 대부분이 초기 3개월 동안에 벌어졌다. 반복된 지시와 지침에 따라 ‘잊고’ ‘함구해오던’ 피해자는, 보직이 변경된 이후인 2018년 2월에 “너도 미투할 거니?”라고 묻는 안 전 지사에게 재차 성폭력을 당하자 폭로를 결심했다. 그리고 2018년 3월 5일 주변의 도움으로 세상에 성폭행 사실을 알리고 다음 날 고소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결과는 다윗의 승리였다. 이름 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권주자 사용자를 상대로, 게다가 적대적인 환경을 무릅쓰고 법과 정의에 기대어 싸워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거나, ‘꽃뱀’으로 몰아가는 등 기존의 강한 보수적 담론을 끌어와 구체적 사건의 여론지형을 바꾸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연구도 이루어졌다. 법학계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법리 해석에서 ‘자유의사’가 왜곡되거나 하자가 생기는 과정을 법적 판단에 어떻게 반영할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큰 충격과 긴장, 충돌이 연일 일어난, 말 그대로 전장(戰場)이었다. 이 결과의 의미를 일각에서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부정하고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진통과, 아직도 진행 중인 그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드러난 성폭력’ ‘신고된 사건’ ‘피해자의 목소리’를 의심하고 근거 없이 부정하며, 소문을 더 인용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번 판결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그리고 그 폭력을 만든 구조 속에서도 법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업무상 성폭력의 사실을 입증한 것은 ‘업무’를 하던 사람, 즉 피해자였다. 피해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포렌식했고, 사진자료 텔레그램 문자메세지 카카오톡 등 시시콜콜한 개인의 흔적을 모두 검찰에 제출했다. 피고 측 변호사는 피해자가 낸 자료를 주재료로 삼아, O월 O일 PM 11:23 A와 나눈 문자, O월 O일 AM 10:01 B와 나눈 카카오톡 등을 내밀고 피해자에게 정확한 기억을 요구하며 심문했다. ‘합의한 관계’를 주장했던 피고인은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사진이나 개인적인 연락 등에 대한 어떤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 지갑, 핸드폰, 담배, 안경닦이까지 들고 다니다가 피고인의 눈짓, 헛기침, “여기” 두 글자 문자에 즉시 대령해야 했던 피해자의 평소 업무처럼 재판과정 역시 그러했다. 피고인은 ‘주장’했으나 입증하지 않았다. 입증하는 노동, 즉 자료를 찾아 출력·저장·제출하고, 일관되며 상세하게 진술하고 수차례의 중복체크에 답하는 노동은 모두 피해자가 담당했다.

 

둘째, 피해자가 겪은 일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석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이것이 여전히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지 이번 사건은 드러냈다. 왜 그 자리에서 밀치고 소리치고 강하게 거부하고 저항하며 나올 수 없었는지가 피해 인정에 중요한 기준이라면 그것은 누가 판단해야 할까. “그래도 나왔어야지” “그만두었어야지” “머리가 하얘지고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었어야지”는 판단기준이라기보다 정조관념에 기대는 규범이나 강박, 책임추궁에 가깝다. 그같은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이 그 일상을 유지할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이유는 삭제된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피해가 아닌 합의관계라고, 피해가 아니라 불륜이라는 주장을 가해자 가족으로부터, 안희정의 측근으로부터, 20명이 넘는 유수한 피고인 측 변호사들로부터 1년 6개월간 강요받았다. ‘고유한 자신’이 틀렸고 타인의 힘과 주장이 옳다는 강요와 지배에서 벗어나기로 한 것이 미투운동이다. 피해자는 그 결심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지켜냈다.

 

안희정 전 지사는 성폭행 폭로 당일인 2018년 3월 5일 다음과 같이 연설한 바 있다. “우리가 오랜 시간 남성 중심의 사회와 권력질서에서 살아왔습니다. 이 남성 중심의 권력질서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제 표면으로 나타나는, 누구를 물리적으로 때리고 누구를 압박하는 구조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차별과 희롱과 폭력의 구조, 그것은 성불평등입니다. 사회문화적으로 각 개인의 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문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에 따라서 실질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폭력이 다 희롱이고 폭력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모두가 지난 3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성평등, 인권도정이라는 관점에서 일체의 희롱이나 폭력, 그리고 인권의 유린을 막아내는 새로운 문화들을 만들어냅시다.”

 

가치에 동의하고 지향을 주창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쉽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훼손되었을 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면서 대응하는지가 갈림길이다. 위 연설을 한 안희정 전 지사 자신과 그의 가족, 측근은 안희정 ‘개인’을 막아내느라 성폭력 범죄를 부인하고 피해자를 2차 가해하며 그들이 말한 가치와 정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성평등과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 것은 피해자와 그에 연대한 ‘김지은들’이었다.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안희정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

2019.9.1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