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과연 전자담배는 덜 해로울까
금연은 나와 가족의 건강뿐만 아니라 타인,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과학적 연구결과에 근거해 수십년간 사회단체가 금연운동을 벌이면서 흡연은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규범이 형성된 결과이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은 정부의 금연정책 및 담배규제정책과 맞물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은 2017년 기준 22.3%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흡연은 해롭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와 여러 금연정책에도 불구하고 흡연율이 쉽게 낮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떠오르는 것이 담배회사인데, 이들은 흡연에 관한 사회적 규범을 무너뜨리고 정부의 금연 및 담배규제 정책을 막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담배규제에 대한 흡연자들의 오해다. 첫째, 흡연자들은 국가가 담배를 제조 및 판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1950년대 전매청 시절은 정부기관에서 그리고 1990년에는 한국담배인삼공사라는 국가 소유의 공기업에서 담배를 제조·판매했지만, 2002년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주식회사 KT&G로 민영화되면서 담배사업이 국가의 손을 떠난 지 무려 17년이 됐다. 둘째, 흡연자들은 정부가 세금을 걷기 위해서 담배 판매를 강하게 규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은 2017년 기준 38.1%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어서 담배를 당장 없애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그래서 흡연율을 점진적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담뱃세 인상, 담배광고규제, 금연구역 확대 등의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최근 어렵게 만들어놓은 금연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무너뜨리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전자담배이다.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상 ‘전자장치 혹은 기기를 이용해서 니코틴을 기체형태로 흡입하는 담배’를 의미하고, 액상형 전자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혹은 가열담배)로 구분된다. 이들은 각각 2008년, 2017년에 한국 시장에서 판매가 시작됐고, 최근 들어 사용자가 더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 담뱃세 인상 이후 ‘국가금연지원서비스’가 확대되면서 흡연자들이 금연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측됐고, 실제로 그런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담배제품이 시장에 진입한 이후 금연시도에 실패한 사람들, 혹은 덜 위험한 담배제품을 찾던 흡연자들은 전자담배로 갈아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액상형 전자담배, 그리고 궐련형 전자담배가 기존 궐련(일반 담배)에 비해 위해하지 않다는 담배회사들의 주장이 흡연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회사들은 전자담배가 궐련보다 독성물질이 덜 배출되고, 담뱃잎 자체를 불에 태우는 것이 아니라 담뱃잎에서 니코틴만 추출하기 때문에 건강에 덜 해롭다고 주장한다.
과연 담배회사의 주장처럼 전자담배가 건강에 덜 해로운가? 그렇지 않다. 2017년 5월부터 국내에 판매를 시작한 궐련형 전자담배는 ‘불에 타지 않는다’ ‘궐련보다 독성물질을 90%까지 줄였다’고 홍보했지만, 이는 모두 담배 제조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350℃의 열은 담뱃잎을 태우기에 충분한 온도이고, 90%까지 줄였다고 하는 독성 화학물질은 수백가지 담배 속 성분 중 몇십가지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일부 독성물질은 궐련에 비해 훨씬 높게 검출되기 때문에 결코 덜 해롭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2008년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고, 궐련처럼 담뱃잎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담뱃잎에서 니코틴을 추출해 사용한다고 해서 ‘금연보조제’ 혹은 ‘건강에 덜 해로운 담배’로 홍보됐다. 호주, 싱가포르 등 액상형 전자담배를 완전히 금지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영국같이 금연보조제로 사용하고 있는 국가도 있어서 흡연자들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정리된 과학적 근거들은 액상형 전자담배는 기존 궐련보다 독성물질은 적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사용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한 액상형 전자담배가 다양한 맛과 향을 내세워 청소년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미국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10대에서 30대 사이에서 급성 폐질환자들이 나왔고, 급기야 사망자가 발생했다. 9월 17일 기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으로 인한 급성 폐질환 환자 530여명을 관리하고 있고, 그중 8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캐나다에서도 10대 남학생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관련 폐질환자임이 최근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덧붙여 2017~18년 미국 고등학생 중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가 1년 만에 78% 급증하면서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에 한해 잠정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언제나 ‘건강에 덜 위해한 담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필자 역시 여러 종류의 담배제품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흡연상태를 유지하기보다는 금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담배제품을 변경하는 것보다 모든 종류의 담배제품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확한 답이다.
흡연자는 ‘개인의 선택을 국가가 왜 이렇게까지 규제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흡연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적 문제이다. 흡연이 초래하는 조기 사망, 직간접적인 의료비까지 고려하면 담배는 결코 우리 다음 세대에 물려줘서는 안 되는 제품이다. 영국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하며 작은 정부를 주장했다. 자유방임주의를 주창한 그도 ‘담배’와 함께 ‘술’과 ‘설탕’만큼은 정부가 규제해야 할 대상이라고 언급했다. 비흡연자 흡연자 모두 개인의 차원이 아닌 우리 사회, 미래세대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담배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이성규 /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장, 보건정책학 박사
2019.9.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