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검찰개혁, 촛불에 화답하라
검찰권과 민주주의
링컨은 1863년 11월 게티스버그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의미와 중요성을 역설했다. 비록 직접민주주의와 연결 지어 한 말은 아니지만 오늘날 진정한 민주정부는 바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믿어진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항으로 시작한다. 절대왕정에서는 ‘짐이 곧 국가고 법’이지만,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을 보고 천만명이 넘게 참가한 2016~17년 겨울의 촛불시위, 그리고 최근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벌어진 촛불시위는 권력의 근원이 깨어 있는 시민에게 있음을 웅변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국가정책을 현명하게 결정하는 방식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강조한 것은 중우정치의 오판으로 자신의 스승이 사형당하는 비극을 목도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수의 횡포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어원이 다수의 지배인데 현대 민주주의는 다수의 자의를 제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지니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한 셈이다.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 도입된 삼권분립과 기본권의 존중, 대의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권력분립에 기초하여 ‘연방’과 ‘주’를 분리하고, 행정부·입법부·사법부를 분립했다. 그리고 입법부를 다시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고, 행정권은 검찰과 경찰로 분리했으며, 사법부는 상소제도를 도입하고 판사와 배심원의 역할을 분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권의 검찰 집중이 문제인데 검찰권 행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민주적 통제를 견지하는 동시에 과도한 독점적 권한을 분산하기 위하여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하고, 독립적 수사 및 기소기관인 공수처를 설치하는 방안이 속히 실현되어야 한다.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과 잘못된 비판
우리 검찰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독점권을 행사해왔다.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공소제기권, 공소유지권을 모두 갖고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검찰은 이러한 막강한 권한을 만끽하면서 각종 법조비리와 권력형비리를 저질러왔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을 검찰과 정권의 유착이 조장했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과 영장청구권은 수사권 조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오직 검찰권의 분산과 견제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이러한 역할을 공수처가 맡아주어야 한다.
혹자는 공수처가 ‘슈퍼특수부’가 될 거라 우려하지만, 공수처는 25명 내외의 검사와 비슷한 수의 수사관으로 구성된다.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 검사는 비공식적 파견검사까지 합하면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되고, 특수부의 이름을 반부패부로 바꾸는 것도 본질의 변화가 없으면 ‘명칭사기’에 불과하다. 공수처가 슈퍼특수부가 된다는 비판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안에 따르면 공수처장은 공수처장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추천해야 하므로 야당 2명이 반대하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당연직 위원인 법원행정처장과 대한변협회장도 여당 편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실제로 청와대의 영향은 상대적일 뿐이다. 이에 반하여, 현재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9명의 위원 중 5명이 친검찰 위원으로 구성돼 사실상 법무부장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이에 비하면 공수처장이 제도적으로 훨씬 중립적이고 공정한 인사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대통령의 친위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명백히 국민을 호도하고, 종래 검찰과의 유착을 연장시켜보려는 정치적 술수나 다름없다.
권은희 의원의 안은 공수처가 기소결정을 할 때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는 공수처의 무리한 기소에 대한 직접민주적 통제로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이전에 검찰은 정연주 전 KBS사장이나 광우병사건 보도 등에 대해 정권의 입맛에 맞춰 무리한 기소를 한 적이 적지 않다. 부당한 불기소뿐 아니라 부당한 기소도 무죄판결 이전에 기소단계에서 적기에 통제할 필요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기소심사위원회가 도입된다면, 공수처가 대상의 제한 없이 모든 고위공직자에 대하여 기소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국민의 촛불에 화답하자
사실 검찰개혁이나 공수처 설치, 수사권조정은 일반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밀접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수십만 수백만의 촛불을 들었다. 검찰개혁과 공수처설치를 부르짖는 국민의 외침은 서초동 대검 앞에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그리고 광화문 앞에서 넘쳐난다. 더이상 왜곡된 가짜주장으로 대한민국이 당면한 국가적 개혁과제를 농단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수처의 핵심은 유지하면서도 타협과 합의의 정신이 지켜질 수 있도록 여야는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된 검찰개혁법안이 10월, 늦어도 11월 중으로는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상훈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10.2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