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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과 트럼프: 미국 여행기

한영인

한영인

채식의 천국, 환경의 지옥

 

얼마 전 처음으로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을 여행했다. 아내가 채식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함께하는 여행이었고 그레타 툰베리가 무동력 요트를 타고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리는 뉴욕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거 알아? 육식을 위해 기르는 가축들이 뿜어내는 가스가 인위적 온실가스의 51%를 차지한다는 거.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채식을 해야 해. 아내는 툰베리를 향해 조롱을 쏟아냈던 트럼프의 사진을 가리키곤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에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내심 조금 슬펐다.)

 

가히 뉴욕은 채식주의자의 천국이라고 할 만했다. 거의 모든 까페와 식당에 채식메뉴가 준비되어 있었고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던 다양한 채식 식재료가 즐비했다. 채식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는 여행 전부터 개성 있는 채식 레스토랑을 검색하며 들떠 있었지만 들뜸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양한 채식메뉴가 무색하게 모든 식당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일회용품을 제공했고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까페 안에서 먹을 거라 말했음에도 굳이 플라스틱 잔에 음료를 담아주는 직원을 향해 머그잔으로 바꿔달라 요청해야 했고 직원은 흔쾌히 음료를 머그잔에 옮겨 담아주었지만 플라스틱 빨대와 스푼을 함께 건네주는 일을 잊지 않았다. 여행을 위해 대나무로 만든 빨대와 칫솔, 젓가락과 포크까지 준비해 간 아내의 안색은 종종 급격히 어두워졌다.

 

우리는 자주 이 모순된 현상에 대해 토론했다. (아마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몇몇 정상들보다는 확실히 그 주제에 대해 더 오래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토록 채식(주의자)을 배려하는 사려 깊은 도시가, 이토록 일회용품 사용과 쓰레기 분리배출에 대한 의식이 낮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두서없는 대화 끝에 다음과 같은 물음이 남았다. 여기서의 채식은 어떤 총체적인 사회적 비전과 결부된 정치적 실천이 아니라 단지 개인의 국지적인 취향을 존중하기 위한 세련된 매너 같은 것이 아닐까. 진정한 채식이란 단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일진대 여기서는 그 정치성은 소거되고 채식‘주의자’의 개인적인 만족만이 부유하는 느낌이랄까.

 

‘채식의 천국’이 ‘환경의 지옥’과 사이좋게 손잡고 노니는 뉴욕의 광경은 우리에게 어떤 각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더 많은 채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채식은 더 넓은 세상의 모순과 마주하며 부대끼는 계기일 뿐 그 자체로 완결되고 고립된 목적은 아니다. (왜인지 뉴욕에서 돌아온 뒤로는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맛이 예전 같지 않다. 한편 아내는 항공기 운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고서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니?

 

뉴욕을 떠나 코네티컷에 사는 이모 내외를 방문했다. 이모는 두어번 뵌 적이 있지만 이모부는 처음이었다. 월남전 참전 군인인 이모부는 한국에 잠시 머무르던 시절 미군이 후원하는 보육원에서 일하던 이모와 결혼했다. 이후 이모부는 잠수함을 건조하는 선박회사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은퇴했고 이모는 아직도 학교 급식 노동자로 일하고 계신다. 화기애애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이모가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눈치만 살폈다. 정치적인 주제는 어느 나라에서건 인화성이 강할 터,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이모가 먼저 목소리를 높이셨다. 이모부랑 거의 싸운 적이 없었는데 지난 대선 때 싸웠어. 세상에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거 있지. 트럼프는 정말 문제가 많은 인종차별주의자잖니. 이모는 트럼프에 대한 이모부의 지지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인과 모욕으로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나는 미국 백인 노동자 계급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걸 뉴스에서 이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모부의 정치적 지향이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백인 육체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역시 이모부에겐 뿌리 깊고 거대한 것일 테니까. 어려운 건 한국의 진보파가 트럼프에 대해 걸고 있는 기대와 희망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에 대해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트럼프는 어쨌거나 북한 지도자와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고 그게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오바마는 팔년 동안 한번도 북한 지도자를 만나지 않았어요.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띄엄띄엄 말했다. 내 말에 이모는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난 건 다 정치적 쇼야. 그렇지 않니? 그래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잖아.

 

이모는 사십년 전에 한국을 떠났고 온통 백인들뿐인 미 동부에서 유색인종 노동자로 평생을 차별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무래도 이모가 느끼는 정치적 현실과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실감과 기대, 희망은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르게 느껴요.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고, 문재인이 김정은을 만난 것 자체로 아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느끼거든요. 이모는 끝내 수긍하지 못했고 우리는 재빨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쉬움 가득한 이별을 나누고 코네티컷을 떠나 유학하는 친구를 만나러 보스턴에 갔다. 나는 친구에게 전날 있었던 작은 정치토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모도 미국 사람 다 되셨나봐. 우리 한국 사람들한테는 그게 꼭 그렇지가 않은데 말야. 우리에겐 트럼프가 굉장히 소중한 기회잖아. 그러자 친구가 조금 냉소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거꾸로 생각하면 트럼프는 더 선하고 좋은 세계를 바라며 성실하게 일해온 미국 민중과 세계 인류에게 커다란 고통이자 모욕일 수 있지. 한국에 좋은 게 다른 세계에도 좋은 건 아닐 테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세게 가격당한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분단체제의 극복은 단지 한반도 사람들끼리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과업이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어느 순간 그 점을 몰각하고 트럼프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를 정치적 곤경에 빠뜨린 코언을 원망하며 트럼프가 보다 굳건하고 안정적인 정치적 위치에 서게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 편이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분단체제 극복의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지향을 망각하고 트럼프 같은 추악한 정치인에게 무구한 희망을 건 졸렬함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정리된 생각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여전히 남북관계는 한미관계에 복속되어 있고, 그래서 촛불혁명으로 수립된 정부조차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지 못했고, 여전히 우리는 트럼프의 트위터만 애닳게 바라보고 있는 형편이니까. 아마도 그 졸렬함은 나의 개인적 박약함 때문이라기보다 좀더 깊은 역사적 구조를 갖는 것일 테다. 그러니 이 역사적 구조를 비약하듯 날아올라 벗어나는 도리는 어쩐지 기만적이지 않나.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졸렬함이라면 차라리 그 안에서 못나질 만큼 못나지는 것도 제대로 된 반성의 계기를 얻는 일이 아닐까.

 

며칠 전 금강산을 시찰하고 거기 있는 남한 시설을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는 김정은의 말을 들으며 이모의 질문을 떠올렸다.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니? 글쎄요, 한국 사람들에게 트럼프 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무의미할지도 몰라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먼저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 그저 이기주의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노예근성일까요? 마침 TV에서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규탄하며 미 대사관 담을 넘었다는 이유로 네명의 대학생들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과 트럼프의 탄핵 추진이 재선가도에 미칠 영향을 셈하는 말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열세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건너왔는데 여전히 나는 트럼프가 통치하는 땅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한영인 / 문학평론가

2019.10.3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