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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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애수의 소야곡

김현

김현

술이 한잔 생각나는 밤,에 관해선 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지난번 연이어 발표했던 두편의 글 「참새의 맛」과 「절망」이 모두 술이나 마시는 얘기다보니, 편집자 L선생이 딱 꼬집어 말하진 못하고, 안 하면 좋겠지만 해도 그만입니다,라고 예의 바르게 말을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박찬욱의 복수 2부작보다야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이 더 폼 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도 역시 술 얘길 쓸까… 하는 유혹이 찾아왔으나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인생은 늘 다음 기회에,이지요. 그런 이유로 이 글 어디에도 술 마시는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글을 읽다가 혹시 술이 한잔 생각나더라도 그건 글쓴이의 의도와는 무관합니다.

 

언젠가 천사가 그려진 엽서를 받았습니다. F에게서 온 것입니다. 추크슈피체라는 독일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F가 적어 보내온 엽서에는 “아래를 내려다보니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러한 독일 속담이 적혀 있었습니다.

‘좋은 날씨는 천사와 함께 온다’

 

어젯밤에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왜인지 모르게 그 오래된 엽서를 다시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한국에서의 고단한 삶을 잠시 뒤로하고 독일로 짧은 여행을 떠났던 F가 뮌헨 남부의 알프스에서 마주한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인간의 하찮음을 깨닫고자 여행을 떠나는 자도 있다지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인생의 가장 화창한 날에 거대한 폭포수와 아늑한 절벽 아래로 홀가분하게 투신하는 여행객은 아직 살아 있는 자에 의하면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 편에선 무언가 깨친 바가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자연 속에서 솔직해지는 경험을 누군들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요. 고백하자면, 저는 비를 피하고자 잠시 들어간 오두막에서 “이곳에서 천사의 형상을 만나게 되면… 당신의 시를 떠올렸습니다”라고 말하는 F를 잠시 사모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그런 제 마음을 알 리 없었고요. 인간은 늘 ‘멀리에서 오는 것’에 매달리기 마련이지요. 동이 틀 때까지 축복을 요구하며 천사와 씨름했던 인간을 떠올려봅니다.

불면 중에는 늘 오래오래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며칠 전 아침 ‘지옥철’에서는 “아, 씨발, 자빠지겠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언가 들킨 기분이 들어서 저는 앞사람을 힘껏 밀었습니다.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요. 그런 제 옆에 서 있던 한 사람은 그 와중에도 태연히 휴대전화로 ‘에코후레쉬세탁조클리너’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어디까지나 살아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밀고 미는 환난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과 노동을 통해 기쁨이나 행복이나 보람을 찾고자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 가진 놀라움이라면 놀라움이지요. 은행 돈도 내 돈이다,라는 신개념으로 빚을 지고 또 지며 원금을 갚아나가는 사람이 마냥 징그럽지 않고, 회사에선 받은 만큼 일하자는 개념을 탑재하고도 성취에 몰입하여 이 일 저 일을 도맡는 동료 아무개의 고군분투가 마냥 귀엽지만도 않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직무에는 귀천이 있어서 한 직장에서 십수년을 일했음에도 ‘합리적으로’ 승진과는 거리가 먼 이, 인생 2막은 자영업임을 진즉에 깨달은 후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주야장천 쉬지 못하는 이, 자식들을 앉혀두고 미래는 베트남에 있다고 말하는 이나 이리저리 휩쓸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는 법’을 수련하는 이도 모두 동시대인들입니다. 출퇴근하고 야근하고 때론 주말에도 일합니다.

 

저 역시 먹고사는 기력을 보전하기 위해 지난 몇년간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한의원을 통해 쌍화탕을 종종 복용하였고, 요즘엔 아침마다 홍삼농축액을 미온수에 타 먹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 쓸까, 하는 것이고 가장 크게 관심이 사라진 것은 사람입니다. 그런 이유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걸 시로 옮겨 적습니다. “숙자야, 너 오늘 계 탔다. 단풍놀이도 가고. 인생 뭐 있니, 놀다 가는 거지”라고 시작하는 메모 뒤에는 이러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호의로 가득하다’

 

지난 계절에 보았던 영화 「행복한 라짜로」(알리체 로르바커 연출, 2018)에서 ‘행복한’ 라짜로는 한밤 자신을 뒤따라온 예배당의 경건한 음악을 들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 ‘첫번째 죽음’을 맞은 후에 거룩한 성자로 부활하였다가 ‘두번째 죽음’에 이르는 그 인물의 이름을 자주 되뇌는 것만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느꼈습니다. 느끼고자 했습니다.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애원했습니다. 성자가 내게 다가왔을 때 알아볼 수 있게 하소서.

 

닭다리살과 대파를 꼬치에 끼워 감노랗게 구워낸 후에 바질이나 유자로 맛을 낸 양념장을 듬뿍 얹어 내어주는 ‘야끼토리집’에서 한 사람이 지옥으로 가는 길에는 호의가 가득하다는 말을 전해주던 밤, 또다른 한 사람은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마음을 주되 머물지는 마라.

 

F가 보내온 천사가 그려진 엽서를 상자에 다시 넣으며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글을 써야 한다, 결심을 거듭하였습니다. 이 기분, 이 느낌 그대로. 딱 한잔 기울이면 좋을, L선생 보시기에 그만그만한 풍속의 글을. 끝에 가서는 꼭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 천사란 어떤 존재일까요.

 

잠이 오지 않으면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 세마리를 세지 말고, 잔잔한 호수 위 작은 배 안에 누워 있는 너를 생각해봐,라고 말해주는 짝꿍에게 단 한번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당신에게 찾아오는 애수는 어떤 날씨의 형상인가요.

 

김현 / 시인

2019.1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