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태광 판결에 삼성이 초조해진 이유
‘황제보석’으로 유명한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에게 지난 6월 21일 대법원은 두차례의 파기 환송심 끝에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징역 3년,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 벌금 6억원을 선고한 재파기환송심을 확정했다. 2011년 1월 22일 기소된 이후 8년 5개월 만에 유죄가 확정된 것이다.
이 재판은 대법원을 세차례나 오갔다. 제일 처음에는 하급심의 횡령 판단이 잘못이라며 파기환송되었고, 그다음에는 이 전 회장이 흥국생명 등을 보유한 금융회사의 대주주이므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지배구조법) 제32조에 따라 ‘탈세 혐의’와 ‘횡령·배임 혐의’를 분리해서 선고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파기환송되었다. 지난 6월 세번째 대법원 선고에서 두 혐의를 분리해 선고한 재파기환송심이 마침내 확정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국사회에서 왜 4개월도 더 지난 일에 주목해야 하는가. 이 일이 여전히 시의성 있는 이유는 바로 삼성 때문이다. 그때의 대법원 판결이 삼성생명 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주주 적격성 여부와 연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법원 선고의 취지를 은밀하게 뒤집으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그 내막을 알아보자.
보험회사나 증권회사의 대주주는 지배구조법상의 대주주 적격성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은 흥국생명을 보유한 이호진 전 회장이나 삼성생명을 보유한 이재용 부회장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지배구조법 제32조 및 동법 시행령 제27조는 최근 5년간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기타 금융관련법령을 위반하여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함을 중요한 적격성 유지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지배구조법 제32조 제6항은 이들 법령 위반 시 그 “형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이를 위반한 범죄행위와 다른 범죄행위가 겹치는 경우 각각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분리”하여 선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배구조법 부칙 제7조는 제32조의 적용시기를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발생한 사유로 적격성 유지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되어 있다. 이 개정 법률은 2016년 8월에 시행되었으므로 그 이후 발생한 사유에는 이 규정이 적용된다.
이 전 회장의 범죄행위는 이 법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인 2011년 이전에 발생했다. 따라서 행위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이 전 회장에게 지배구조법 제32조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호진 전 회장은 두번째 상고심에서 자진해 지배구조법 제32조에 따라 자신의 범법행위 중 지배구조법과 연관된 조세포탈 부분과 이와 무관한 횡령·배임 부분을 분리하여 형을 선고해야 하는데 파기환송심(고등법원)이 이를 분리하지 않았으므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를 수용하여 파기환송심을 다시 파기했다.
이런 과정을 보면 대법원 역시 비록 이 전 회장의 탈세 행위는 지배구조법 제정 이전에 발생했으나 법원 판결에 의해 그 법률적 효과가 확정되는 “사유”는 지배구조법 이후에 발생했고 따라서 지배구조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두번째 환송심에서 “피고인을 지배구조법상 대주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원심에는 그에 대하여 심리하여 위 피고인이 적격성 심사대상인지 여부를 확정한 후 적격성 심사 대상인 경우” 조세포탈은 다른 죄와 분리하여 심리·선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파기환송심을 담당한 고등법원의 판결문은 이 점을 더욱 명확히 했다. 우선 “피고인은 이 조항에서 정하고 있는 적격성 심사 대상에 해당한다”고 명시한 후, 이 경우 만일 조세포탈 관련하여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이 확정될 경우 보유 지분 중 10%를 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조세포탈 관련 죄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과중한 행정제재도 아울러 감안”하여 대주주 적격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그렇다면 이 판결이 왜 이재용 부회장에게 중요해지는 것일까? 국정농단 사건 때문은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다섯가지 범죄혐의인 뇌물공여, 특가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2018년 2월 무죄 확정), 범죄수익 은닉, 국회 위증은 모두 지배구조법 제32조에 규정된 법률 위반 행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삼성이 들썩이는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때문이다. 이는 허위공시, 고의 분식회계처럼 자본시장법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 등에 관한 법률 등 ‘금융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건이기 때문에 비록 그 행위가 지배구조법 제정 이전에 발생했더라도, 만일 이 부회장이 삼바 사건에 연루되어 향후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병석에 누워 있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보유한 최다출자자로서 형식상의 대주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삼성생명의 실질적 지배자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따라서 이 회장이 사망하거나, 생존해 있더라도 지배구조법이 개정되어 이재용 부회장을 대주주로 간주하게 될 경우, 태광 사건의 대법원 판례는 이 부회장의 결격 판정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금융위는 지난 8월 하순 대주주 적격성의 적용례를 규정한 부칙 제7조의 해석과 관련하여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했다. 금융위가 법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한 배경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주무부처의 유권해석이나 법제처의 법령해석은 모두 법원의 판단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법제처와 금융위 사이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법제처의 법령해석이 머지않아 나올 것이다. 태광의 탈을 쓴 삼성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지금부터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2019.1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