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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우리 동네 책방엔 누가 와서 읽나요?

류수연

류수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동요, 「옹달샘」의 가사를 한번 떠올려보자.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깊은 산속에 접어들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옹달샘은 깨끗한 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아이의 궁금증이 생겨난 것은 아마도 시원하게 한모금 마신 후였으리라.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옹달샘은 마르지 않고 샘솟을까? 누가 와서 물을 마실까? 아이의 자문자답은 명쾌하다. 새벽에는 토끼가, 달밤에는 노루가 찾아와 자신처럼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갔을 것 같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더 특별한 “맑고 맑은 옹달샘”의 비밀은 거기에 있다.

 

동네책방은 바로 이 옹달샘 같은 곳이다. 옹달샘이 매일 누군가에게 맑은 한모금을 선물한다면, 동네책방은 일상에 찌든 우리의 정신을 청량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는 공기를 선물한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접어든 낯선 골목길에서 정겹게 자리 잡은 책방과 마주치는 날이면, 어쩐지 반가움을 느끼게 된다. 책방지기의 섬세한 고민 끝에 들여놓았을 한권 한권은 그 어떤 베스트셀러보다 묵직한 기쁨을 준다.

 

동네책방의 귀환. 그저 이렇게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공간인가? 도서정가제와 대형서점에 밀려 고사해버렸던 작은 서점들이 동네책방으로 호명되며 하나둘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처음에는 책을 그저 인테리어적인 요소로 활용한 북까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점차로 서점의 성격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위트 앤 시니컬’이나 ‘책방이듬’처럼 유명문인이 직접 연 책방까지 등장하면서 동네책방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은 대중적로도 확산되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동네책방들은 지역의 독서모임이나 북콘서트, 강연 등이 열리는 장소로 활용되면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무엇보다 한명 한명의 책방지기들이 엮어내는 지역공동체와의 소통과 시너지야말로 문화 옹달샘으로서 동네책방의 가치를 만들어낸 가장 큰 동력이리라 생각한다.

 

지난 주말 인천 계양에 있는 ‘동네책방 산책’에서 열리는 작은 출판모임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만난 시인 최정의 시는 왜 동네책방이 ‘존재’해야 하고 마을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흙 틈으로

노르스름한 얼굴

가까스로 내밀고 하는 말

 

간신히 살아간다

 

무거운 말씀

감히 받아 적었다

 

따가운 볕 아래

감자 싹은 한나절 만에 푸르뎅뎅해진다

 

진초록 잎으로 부풀어 오른다

―「감자 싹」 부분(『푸른 돌밭』, 한티재 2019)

 

시인의 언어는 농부로서 그의 삶이 더해지는 순간, 더 큰 울림으로 독자와 마주했다. 작가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과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온 사람들만큼 감동적인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눈과 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열고 가장 뜨거운 독서를 약속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작가가 이러한 만남의 순간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청송에서 1인 여성농부로 살아가는 최정 시인의 시가, 이 작은 책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감자줄기처럼 묵직하면서도 정겹게 다가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책방이라는 공간이 시인과 독자 모두에게, 시의 감성이 현재화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곧 책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문학이야말로 독서시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혹은 대중적이라고 여겨지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90년대를 휩쓸었던 책 대여점이 위기의 원흉으로 지적되기도 했고, 천차만별인 책값이 원인으로 논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책 대여점이 사라지고 도서정가제가 자리 잡았어도 이 위기는 오히려 악화일로로 나아갔다.

 

한편으로는 책보다 더 재미있고 유용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굳이 책을 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굳이 책일 필요는 없지만, 여전히 책에도 재미있고 유용한 내용들은 넘쳐나니까 말이다. 따라서 해결의 열쇠는 책이 아니라 독자에게 있다. 어쩌면 그동안 책이라는 매체가 독자와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동네책방의 등장은 거기에 대한 하나의 해답일지도 모른다. 동네책방은 화려하진 않아도 작고 소박한 공간에서 책을 읽고 사고,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필요’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곳은 심지어 도서관보다 낮은 문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진짜 부족했던 것은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고. ‘어쩌다 마주친’ 동네책방을, 자기만의 문화 옹달샘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류수연 / 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2019.12.1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