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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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훼손되고 지워질 수 없는 존재들을 위해

박한희

박한희

지난 8월 2일과 3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바쁜 하루를 보냈다. 서울 지하철 신촌역에 게시된 한 광고 때문이었다. 7월 31일 신촌역에는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다양한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얼굴을 담은 대형 광고가 게시되었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 이하 아이다호)을 기념해 아이다호 공동행동에서 준비한 광고였다. 원래는 6월에 게시될 예정이었으나 서울교통공사가 한차례 심의를 반려함에 따라 다소 늦게 게시된 이 광고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지금 여기 지하철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성소수자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광고가 게시된 지 이틀 만인 8월 2일, 광고 현수막이 칼로 크게 찢겨나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계속 게시가 어려운 정도였기에 현수막은 임시로 철거되었다. 이에 활동가들은 철거된 자리에 포스트잇을 이용해 문구를 다시 완성했다. 시민들 역시 해당 장소를 방문해 많은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8월 3일 포스트잇마저 훼손이 되었다. 성소수자라는 글씨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떼어진 것이다.

 

다행히 광고 현수막을 훼손한 범인은 바로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그랬다”라고 진술했다. 성소수자가 싫다, 너무나도 투명한 가해 동기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그러한 동기가 직접적인 가해행위로 이어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가 일상 속에 있다는 광고를 보고 싫은 감정이 드는 것과 칼을 들고 와서 이를 훼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해당 광고가 실존인물의 얼굴 사진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즉 광고 훼손은 성소수자를 자신과 동등한 권리와 인격을 가진 존재로 볼 수 없다는, 성소수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단지 싫다는 개인의 감정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명백히 차별적 의도를 가진 증오범죄다.

 

이렇게 ‘싫다’는 감정을 넘어 공적 영역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배제하는 차별행위를 규율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담은 법이다. 그럼에도 지난 6월 29일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고 다음 날인 3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약칭 평등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보수개신교 등은 지속적으로 차별금지법이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조장되고 가정이 파괴되며 신앙·양심·학문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이 법이 자신들에 대한 역차별을 불러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왜곡, 허위의 사실과 좀더 들여다봐야 할 지점들이 섞여 있다. 우선 허위 정보부터 가려보자면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모든 행위가 규율되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재화용역, 교육, 행정서비스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직장에 다니고 물건을 사고 관공서를 이용하는 데 있어 성별, 장애, 인종,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거나 배제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길거리에서 혐오표현을 하는 행위, 종교 예배에서 연설하는 행위는 차별금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앞서의 광고 훼손도 성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냄으로써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보여준 것이긴 하나 행위 자체는 형법의 문제이지 차별금지법의 규율 영역은 아니다.

 

한편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법이 제정되면 학교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할 수 없게 되고 종교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성소수자 직원을 고용하게 되므로 자신들의 자유가 침해되는 역차별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차별로서 규율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다. 학교에 엄연히 성소수자 학생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면 해당 학생은 제대로 교육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종교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은 해당 종교의 신도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며 그렇기에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고용, 서비스 접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종교를 이유로 이러한 차별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차별할 자유를 달라는 궤변에 불과하다. 나아가 이를 규율하는 것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은 차별적 의도를 드러낼 수 있는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그대로 인정해달라는 허용되기 어려운 주장이다.

 

결국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사람들이 동등하고 존엄하게 대우받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 성소수자 문구와 얼굴을 내건 현수막이 보기 싫다고 훼손할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사회 속에 함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지울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고 공존의 조건을 만드는 법인 것이다.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법이며 이를 반대할 타당한 이유는 찾기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신촌역 아이다호 광고는 다시 게시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민들의 응원이 있었다. 포스트잇을 붙이는 활동가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는 분이 있었고 며칠간 오가며 전과정을 지켜봤다면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재게시된 광고에는 현재 다양한 응원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며 앞으로 전개될 차별금지법 제정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로는 조직적이고 극단적인 혐오와 차별행위가 발생하겠지만 이것이 결코 존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울 수 없으며 평등과 인권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나타날 것이다.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시민사회의 역량이 강화되고 동료 시민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만들어지며, 이는 곧 법제정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너들이 ‘우리’를 찢어놓아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된다.” 신촌역에 붙은 한 포스트잇의 문구이다. 이 말처럼 결코 훼손되고 지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조속히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박한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2020.8.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