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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미‧중 냉전의 포문을 열다?

이혜정

이혜정

지난 5월 20일 미국 백악관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중의 상이한 ‘체제 간의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을 선포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휴스턴 중국 영사관 폐쇄를 요구한 다음 날인 7월 23일,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닉슨 대통령 박물관에서 그는 지난 50년간 미국의 대(對)중정책은 지구적 패권을 노리는 중국 공산당의 위협을 간과하고 중국의 자유화를 기대한 ‘맹목적 관여’였다고 비판하며, 자유세계가 단합하여 중국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중국이 자유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냉전을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적어도 폼페이오나 백악관의 5월 대중 전략 보고서를 주도적으로 입안했다고 알려진 국가안보보장회의(NSC) 부국장 포틴저 등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파는 중국공산당(CCP, 이하 중공)을 상대로 냉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이고, 이들의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코로나19의 ‘대혼란’(the Great Disruption, 졸고 「코로나19가 불러온 '대혼란'의 시대」 참조)이 직접적인 배경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에서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초기대응에 실패했고, 4월 이후 성급하게 경제활동 재개를 독려한 탓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실패국가’가 되었다. 1월부터 포틴저와 백악관 무역·제조업국장 나바로 등 대중 강경파는 엄격한 방역과 대중 공세를 제안했지만,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 커들로와 재무장관 므누신 등 대중 온건파는 월가의 이해 등 방역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에 반대했고, 1월의 미중 무역 합의를 자신의 치적으로 선전하려던 트럼프도 대중 강경파의 제안인 중국여행 금지를 수용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비판은 삼갔다.

 

바이러스가 개인의 면역력을 시험하듯, 코로나19의 대혼란은 트럼프의 무능을 넘어 미국체제의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 구조의 문제를 증폭시켰다. 5월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흑인 플로이드가 사망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보건과 경제, 인종 문제라는 삼중위기에 봉착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발 중국책임론을 미군이 코로나19를 옮겨왔다는 음모론으로 반박한 데 이어 홍콩보안법 입법을 강행하자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에 일관되게 가세했고 백악관에서도 대중 강경파가 득세했다.

 

지난 5월의 보고서는 중공의 위협을 ‘만들어’냈다. 2017년 말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는 ‘중공’이라는 표현이 아예 없었다. 2017년에는 ‘수정주의 중국’이라는 용어만이 등장하는데, 이때 중국은 단지 지역적 수준에서 미국을 대체하고자 하는 강대국이었고, 냉전 이후 미국의 대중 관여 정책을 전략적 경쟁으로 바꾸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중공’이라는 용어는 “자유롭고 개방된 규칙 기반 질서를 착취하고 국제체제를 자신들에 유리하게 재구성하려” 하는 존재로 사용된다. 경제적 약탈을 일삼는 중공은 지정학적 경쟁과 외교의 상대가 아니다. 1979년 ‘대중공’ 수교 자체가 미국의 오류인 셈이다.

 

6~7월 대중 강경파 각료들은 사전에 조율된 네차례의 연설을 통해 중공의 위협을 극대화하는 냉전의 선전전에 나섰다. 6월 24일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맑스-레닌주의 정당인 중공의 목표는 자국 내 절대적인 전체주의를 확립하는 것을 넘어 세계를 자신에 맞게 재개편하는 것으로 지구적 수준의 사상 통제는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었다고 주장했다. 7월 7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과 경제 및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국의 다양한 간첩활동과 ‘악의적 영향력 행사’ 사례들을 고발했다. 7월 17일 바 법무장관은 “규칙 기반 국제체제를 전복하고 독재가 안전한 세계”를 목표로 하는 중공은 미국의 기술 패권을 넘어서기 위해 “경제적 전격전(Blitzkrieg)”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과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환상과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미국 대기업들이 중공에 굴복하고 있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폼페이오가 시 진핑은 스딸린식 전체주의의 숭배자이고 중국(중공)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니, 미국의 사법체계를 동원하고 모든 자유국가가 단합하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이 선전전으로 미국의 대중 정책은 강경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의도처럼, 트럼프가 낙선하더라도 역진 불가능할 정도로 냉전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소수가 된) 기존의 관여정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이들은 물론,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불가피하며 한층 강경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새로운 주류의 입장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파들이 선거전략 이상의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전략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가 많다.

 

우선 닉슨이 선택한 대중 화해가 소련 견제를 맥락으로 한 것임을 간과한 데다 ‘관여’가 항상 군사적 억지를 동반했음을 무시하는, 특히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스딸린체제로 규정하는 역사 왜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집권 이후 줄곧 국제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대통령이나 그의 충복으로서 미국 사법제도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법무장관, 그리고 자신의 기독교 복음주의에 맞춰 종교의 자유와 재산권을 다른 권리들과 차별적으로 다룬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무장관의 위선도 문제다. 중국에 대한 강압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복원과 거리가 멀고, 미국의 기업들과 동맹들을 유인할 긍정적인 대안도 없다. 폼페이오가 홍콩 문제에서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고 비판한 독일은 물론 최근 중국과 국경분쟁 중인 인도도 트럼프의 냉전에 적극 동참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경제성장을 재개했는데, 미국은 정치적 분열로 2차 코로나19 지원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재건이 급선무다.

 

이혜정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2020.8.12.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