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바이러스와 함께 계속 이렇게 산다…면

이향규

이향규

어느날 사진 한장이 전송되었다. 영화 「백투더퓨처」의 박사님이 타임머신 앞에서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2020년으로는 가지 말게.” 코로나19는 2020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사는 곳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이 기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사는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33만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4만 2천여명이 사망했다(사망자 수로만 보면 한국보다 130배나 많다). 확산의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까지도 신규 감염자가 매일 천명 이상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던 영국 정부는, 유럽에서 감염이 심각해지자 3월에 강력한 봉쇄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그 제한을 완화하는 중이다.

 

200902_본문

 

3월 말 록다운(lockdown)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허락된 외출은 식료품이나 약을 사러 나가는 것, 하루 한번 짧게 운동하는 것, 병원에 가는 것, 핵심인력(의료진, 경찰, 식료품 유통업자, 배달기사 등)의 출근 등으로 제한되었다. 이유 없이 외출하면 경찰이 다가왔다. 식료품점과 약국 이외의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다. 그렇게 거의 한달을 살았다. 자유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허용되었다. 4월 말에는 이유 없이도 집 밖에 나갈 수 있게 되었으나 도시 경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5월 중순에는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일부 직종의 출근이 허용되었다. 출근은 자가용이나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해야 했고, 대중교통은 피하라고 했다. 6월부터 가게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6월 초에 일반 상점이, 7월에는 식당이 문을 열었다. 7월 4일, 거의 100일 만에 펍(술집)이 문을 열었을 때 영국 사람들은 명절처럼 기뻐했다(물론 펍에서도 물리적 거리는 유지해야 한다). 9월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간다(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여론이 있다).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늘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간격을 신경 써야 하는 이런 생활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학자들이 ‘뉴노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도 이게 내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놓을지 실감하지 못했다. 거리두기, 비대면 접촉, 온라인 산업, 원격 교육, 국경 장벽, 강력한 국가, 감염자에 대한 추적과 감시, 새로운 계급의 출현 같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세계는 여전히 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상태로 계속 살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게 뉴노멀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이 낯선 환경에서 그런대로 정신 건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에 대한 실용적인 모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이 무엇일지에 대한 작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여기에 지난 5개월 동안의 경험을 기억해내며, 내가 새로 학습한 ‘사는 법 목록’을 적어본다.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나올법한 내용이지만, 나름 경험의 산물이다.

 

1.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는다
3월 23일부터 록다운이 시작된다는 발표가 나자, 사재기가 벌어졌다. 나도 당장 마트에 달려가 생수와 휴지를 샀다. 비누도 사고 싶었는데 그건 벌써 다 팔렸다. 쇼핑카트에 가득 넣은 두루마리 휴지 다발은 숨길 수가 없었다. 맞은편에서 카트를 밀고 오던 아주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의 카트에도 휴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순간 멋쩍은 웃음을 주고받았는데, 그 찰나에 일어난 소리 없는 대화는 이런 거였다. “알아요, 사재기가 당당한 일은 아니죠. 그러나 불안한데 어쩌겠어요. 록다운 때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내 마음, 당신도 알죠?” ‘동병상련’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이의 눈에도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타인(특히 아시안)에 대한 경계심이나 적대감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가끔 그 찰나의 눈 맞춤이 생각난다.

 

2. 표정을 잃지 않는다
영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전문가들도 방송에 나와서 마스크가 바이러스를 남에게 옮기지 않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내가 옮지 않는 데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면서 굳이 안 써도 된다고 했다. 논리가 이상했지만, 문화적으로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그만큼 심리적인 저항이 따르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던 이곳에서도 이제는 마스크 없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상점·쇼핑몰·공공기관·교회 등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위반하면 1회 적발 시 100파운드(약 15만원), 반복해서 위반하면 누적될 때마다 두배가 되어서 최고 3200파운드(약 480만원)까지 벌금을 징수할 수 있다. 얼굴의 반을 가린 사람들의 표정은 읽기가 어렵다. 나는 요즘 눈으로 웃는 것을 연습한다. 표정을 잃지 않으려면 눈을 부드럽게 하는 수밖에 없다.

 

3. 멈추고 서서 길을 양보한다
좁은 길 맞은편에서 누가 걸어오면 일단 멈추고 비켜서서 그가 먼저 지나가게 한다. 이건 좁은 길에서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길에서, 마트에서 본의 아니게 2미터 공간을 침범하게 되었을 때 받은, 사람들의 짜증 섞인 눈초리를 몇번 경험하고 나서 내 편에서 먼저 양보하는 편을 택했다. 멈춰 서서 상대방에게 먼저 가라고 손을 내밀고 기다려주면 대부분은 목례를 하며 감사를 표시한다. 공간을 두고 싸우느니 몇초 기다려주고 친절을 교환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어차피 세상이 느리게 움직여서, 나는 바쁠 일도 없다.

 

4. 가구원끼리 잘 지낸다
강력한 이동제한에 걸리자, 가구(家口)가 사회의 최소단위가 되었다. 가족이 같이 사는 경우,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 일터에 가지 않는 어른들이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자 집집마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를 경험했다. 가정폭력 긴급지원 전화가 폭증한 것을 보면, 지옥에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다행히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 영화가 큰 기여를 했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저녁에 영화를 한편씩 같이 본다. 식구 4명(우리 부부와 10대 후반 두 딸)이 돌아가면서 그날의 영화를 고른다. 지금까지 본 영화가 얼추 150편쯤 된다. 이건 특별히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집집마다 가구원(대부분 가족)끼리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다. 함께 사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집은, 거리두기의 시대에 물리적 친밀함이 허용되는 유일한 공간이므로.

 

5. 이웃과 느슨한 연결을 유지하면서 서로 돕는다
이동제한으로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날 수 없으니,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는 모양이다. 우리 골목 사람들은 록다운이 되자 왓츠앱(한국으로 치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이웃이 연결되니 좋은 점이 많다. 우리 집 고양이가 집을 나갔을 때도 이웃이 알려줘서 동선이 곧 파악되었다. 투병하던 이웃이 사망했을 때는, 그를 기억하는 나무 심기 기금 마련을 위해 골목 음악회도 열었다. 얼마 전에 남편이 채팅방에 제안을 하나 했다. “우리 가족은 푸드뱅크에 식료품을 기증할 건데, 혹시 동참하고 싶은 사람은 내일 아침까지 우리 집 앞에 놓아둔 박스에 기증품을 넣어두세요. 같이 전달할게요.” 다음날 아침에 보니 모인 통조림은 100개가 넘고, 국수·쌀·씨리얼·커피 심지어 고양이사료까지 있었다. 차에 실어서 푸드뱅크에 갖다 줬다. 며칠 후에 감사편지가 왔다. “68킬로그램 분량의 먹거리를 보내주신 허스트 로드 커뮤니티에 감사합니다.” 편지를 공유하니 사람들은 한달에 한번씩 이 일을 하자고 했다. 느슨하게 모여서 즐겁게 공동체의 일을 도모하는 것, 이왕에 이웃의 문이 열렸으니 이게 ‘뉴노멀’이 되면 좋겠다.

 

6. 경제적으로 취약해지면 국가에 지원을 요구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는 ‘수급자’가 되었다. 남편은 지금 ‘유니버설 크레딧’이라는 저소득자 지원금을 받는다. ‘개인 독립생활 연금’(PIP)이라고 불리는 장애연금도 받는다. 곧 다른 지원금도 신청할 거다. 나는 한동안 이런 처지가 되는 것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누구도 수급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하고 싶고, 자립하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게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건 개인 탓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은연중에, 개인보다 국가가 더 중요한 것처럼 교육받아왔다. 그동안은 내가 나라 걱정을 했지, 나라더러 내 걱정을 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틀렸다. 국가는 구성원을 위해 존재한다. 코로나19로 국가의 힘이 더 막강해졌다. 그 막강한 국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기만 할 게 아니라, 돌보라고 요구해야 한다. 남편이 자기 나라에 요구하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괜찮다. 당당히 요구해도 된다.

 

7. 채식을 한다
아이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래도 생선은, 계란은, 우유는 먹어야 할 것 같았는데, 어느덧 나도 아이들을 따라서 비건(Vegan)이 되었다. 채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윤리적인 선택이다. 그게 살아 있는 생명에게 좀더 친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게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하는 것을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면 우리는 그 편을 돕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이 몇달 사이에 대형마트들에는 비건 코너가 제법 크게 생겼다. 두부는 이제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우유를 대신하는 콩, 아몬드, 귀리 음료 등은 어디에나 있다. 먹거리를 바꾸니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우선 식료품비가 줄었다.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다. 아이들과 같이 재료, 양념, 조리법을 연구하고 만들어먹는 재미도 제법 괜찮다. 코로나19 이후 생겨난 뉴노멀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라면, 채식은 우리가 ‘선택한’ 새로운 정상이다.

 

*

한국도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되었다. 불편함을 짐작할 수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싸움인데, 뉴스를 통해 보는 한국 상황은 거기에 사회적 갈등까지 뒤범벅되어 훨씬 복잡하고 힘든 것 같다…… 멀리서 기원한다. 다들 지치지 마시길. 그리고 여력이 되면, 이 전례 없는 이상한 시대를 맞아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각자의 생존 노트를 만들어보시기를 제안한다.

 

이향규 / 『후아유』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저자

2020.9.2.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