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수능 후 일주일, 학교는 안녕한가
12월 3일 목요일 수능시험 날, 올해도 하늘에서는 전투기나 민간 항공기가 듣기평가 시간에 이착륙을 멈추었다. 땅에서는 코로나19와 함께 학부모와 교사, 교육당국자 모두 숨죽이고 마음 졸이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시험장이어서 40개 고사실에 850여명 수험생이 시험을 보았고, 의심 증상이 있는 수험생을 위한 특별 고사실도 네개나 마련되었다. 나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복도감독관을 맡았는데, 추운 복도에서 금속탐지기를 들고 화장실에 가는 수험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검사하고, 거리 유지를 부탁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수능이 끝나고는 집에 가서 곧바로 쓰러졌다.
올해 수험생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떠들썩하던 교문 앞 응원은 모두 사라졌고 그 대신 체온 측정, 증상 확인, 마스크 검사와 손소독제 사용으로 이어지는 코로나19 방역 관문부터 통과해야 했다. 이미 익숙한 일이지만 좁은 책상 앞에 놓인 가림막을 마주하고 마스크를 쓴 채 종일 시험을 봐야 했다. 점심시간에도 좁은 교실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화장실에 갈 때도 앞뒤 학생과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올해 고등학교 학사 일정은 예년과 전혀 다르게 짜여졌다. 초등·중학교도 마찬가지다. 3월 초여야 할 개학은 미루어졌다. 4월 둘째 주에야 고3부터 먼저 온라인 개학을 했고, 셋째 주에 1·2학년이 온라인 개학을 했다. 3학년들이 처음으로 등교한 날은 5월 20일이었다. 1학년들은 6월 3일에야 학교에 나올 수 있었다. 9월의 2학기 시작도 순탄하지 못했고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이 뒤섞인 채로 수능시험과 수시 모집 원서 접수 일정이 이어졌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11월 26일부터 학교 문을 닫고 수능시험 날까지 방역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다음 날도 모든 시험장 학교는 문을 닫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해서 다시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도 학교마다 학생들의 확진 소식이 들려오고 반 학생들에게 자가 격리를 하라, 보건소를 방문해서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야말로 코로나와 함께한 2020년의 학교다. 2월에 교직원들이 모여서 협의를 거쳐 마련한 학사 일정은 대개 한해 동안 서너번 수정하는 정도인데 이번에는 열다섯번도 넘게 고치고 바꾸었다. 앞으로 또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니 학사 일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 선생님들은 우스갯소리로 적어도 5년치 일을 한꺼번에 다 해냈으니까, 내년에는 쉬게 해달라고 한다.
수능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에 초점을 둔 학사 일정은 다른 학년은 물론 중학교, 초등학교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학생들 이야기를 해보자. 1학기 원격수업 때는 처음 한달 정도 수업마다 다른 운영 방식(구글 클래스룸, 네이버 밴드, 이비에스 클래스 등 여러 플랫폼이 있다) 때문에 우왕좌왕했고 교과 담당 선생님들은 제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아이들 깨우고 학부모들에게 연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불편한 점이 많다. 집마다 인터넷 환경이 다른 데다 원격수업은 집중도 잘되지 않는다, 학교 급식도 먹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매점에 갈 수도 없어서 재미가 없다고 한다. 어쩌다가 등교수업을 해도 방역수칙에 따라 30분 수업에 5분 쉬는 시간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보통 때의 소통을 이어갈 수가 없다. 동아리 활동도 온라인으로 하니까 즐거운 추억 따위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
지난 9월 초 교육부는 전국의 초·중·고 교사들에게 원격수업 때도 조회와 종례를 실시간으로 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초등학교 아래 학년 학생의 학부모들이 늦게 일어나고,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한 학기 넘도록 아예 방치되다시피 하는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 울분에 가까운 표현을 온라인 공간에 쏟아내면서 급히 교육 당국이 마련한 대책이다. 아침마다 실시간으로 학생들을 불러 모아서, 일어났는지, 건강은 어떠한지 챙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활의 돌봄 문제까지 학교에 다 전가되고 있다는 자괴감이 담긴 교사들의 고충도 함께 고려해야 할 일이다.
다시 수능 문제로 돌아와본다. 수능시험은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해 1994학년도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시행되어 올해로 스물일곱살이 되었다. 그렇지만 오지선다형 평가여서 문제 유형에 맞추어 반복 학습을 하게 만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이 들린다. 2021학년도 대입 전형별 모집 인원은 수시 76.7%, 정시 23.3%다(2020.4.30. 대교협). 수능시험 성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정시의 비중보다 수시의 비중이 압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수능에 집중하는 현상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더 중요한 고민은 수시나 수능은 ‘선발 시험’이 될 수밖에 없기에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그 ‘아름답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시험점수 또는 대학 서열에 따라 줄 세워지며 ‘말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입시제도보다 대학서열과 특권교육이 문제라는 건 이제 상식이다.
그런데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단지 교육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의제로 확장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왜일까? 교육을 개혁한다는 말만 있을 뿐 어디에서 비롯하고 어디로 나아가는지 분명하지도 않고 흐릿하기만 하다. 걱정스럽고 답답하지만 이럴수록 의견을 주고받고 토론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가라 수능시험따위,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언제쯤이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까?
박종호 / 서울고등학교 교사
2020.12.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