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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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코로나19가 만든 골목 공동체

이향규

이향규

남편이 물었다(그는 영국인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공동체가 불가능하겠지?” 거기서 산 세월이 20년이니 그도 아파트 생활을 안다. “불가능하긴. 거긴 그곳에 맞는 공동체가 있는 거지. 이런 형태는 아니지만 거기도 있다고.” 이렇게 답했지만, 사실 한국의 이웃 공동체가 어떤 모습인지,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른다. 떠나온 시간이 꽤 되었다. 궁금하다. 나중에라도 듣고 싶지만 일단 지금은 이 골목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단체 채팅방

 

얼마 전, 올해 푸드뱅크 활동을 마무리했다. 남편은 지난여름부터 이웃들이 기증한 식료품을 취합해서 푸드뱅크에 전달하는 일을 했다. 이번에는 식료품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선물이 열두개나 들어왔다. 정성껏 포장한 선물에는 ‘6~10세 그림도구’ ‘8~12세 남자아이 양말’ ‘2~5세 그림책’ 같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푸딩, 파이, 초콜릿이 유달리 많은 것도 성탄절이 코앞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물건들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기증자는 이 사진에서 자신의 기증품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볼 테니 가급적 모든 물건이 다 보이도록 배열하는 게 중요하다. 사진을 단체 채팅방에 올리니 곧 알림음이 띵띵 울렸다. 어떤 이가 이렇게 썼다. “이렇게나 많이? 멋지군. 허스트 로더들(Hurst Road-ers)!”

 

20201223_이향규_공동체

 

허스트 로드는 우리 골목 이름이다. 길 양옆으로 집이 35채씩 총 70채 있다. 끝이 막다른 골목이라 통과차량이 없고 조용한 편이다. 단체 채팅방이 생긴 것은 지난 3월, 1차 록다운(봉쇄)이 시작되었을 때다. 100호에 사는 리즈가 집집마다 다니며 문틈으로 편지를 넣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있으면 장을 봐주겠다는 내용이었고, 이참에 왓츠앱 단체 채팅방을 만들면 어떻겠냐며 자기 전화번호를 남겼다. 7명으로 시작한 채팅방에 지금은 63명이 들어와 있다.

 

채팅방을 보면 이 골목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알 수 있다.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면 꼭 저절로 벌어지는 사건 같지만, 사실 채팅방이 생긴 덕분에 사람들이 ‘하게 된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거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사진과 함께) 주소 101호로 이런 소포가 왔는데 우리 집 것이 아니에요. 혹시 이 수취인을 아시나요?’ ‘아, 우리 거네요. 문밖에 놔두시면 제가 가져갈게요.’ / ‘아들과 케이크를 구우려는데 달걀이 하나밖에 없어요. 누가 하나만 빌려줄 수 있을까요? 88호예요.’ ‘저 86호인데 집 앞에 달걀 하나 가져다 놓았어요. 케이크 맛있게 드세요.’ / ‘(사진과 함께) 안 쓰는 의자인데 혹시 필요한 분이 계실까요?’ ‘저희가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문밖에 놔둘게요. 74호예요.’ 우리도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사진과 함께) 우리 집 고양이 못 보셨나요? 어젯밤에 안 들어왔어요.’ ‘아, 그 고양이요? 어젯밤 열시쯤에 우리 집 앞마당에 한참 앉아 있었어요.’ ‘걱정 마세요. 우리 집 고양이도 집 나간 지 한달 만에 돌아왔어요.’ 뭐 이런 소소한 메시지가 하루에 열개쯤 올라온다.

 

경계의 존중

 

대화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사람들은 잘못 배달된 편지나 교환할 물건 등을 주로 현관 밖에 놓아두고 가져간다.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는 않는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체부나 택배원만 해도 초인종을 눌러 주인을 부르는데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이는 서로의 ‘경계’(boundary)를 침범하는 것에 민감한 영국인의 특징인지도 모른다. 영국에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내성적인(reserved) 사람이 많다. 그러니 이렇게 ‘비대면’ 방식으로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타인의 사적 공간과 시간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일 수도 있고, 그편이 자신에게도 편해서일 수도 있다. 나도 이편이 더 좋다.

 

내가 경험했던 공동체는 대부분 너무 가깝거나 무거웠다. 처음에는 함께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다가도 곧 부담스럽고 피곤해지곤 했다. 다른 사람이 내 삶에 훅 들어오는 게 내심 불편했으나, 공동체의 이상이 하도 숭고해서 개인의 자유나 프라이버시 운운하는 것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 즐겁게 시작한 일이 나중엔 마지못해서 하는 과업이 되기도 했고, 좋은 마음이 원망으로 끝나기도 했다. 가깝지도 무겁지도 않은 이들의 소통방식이 편해 보였다.

 

가끔씩 놀이

 

이들은 가끔 이벤트를 하며 논다. 푸드뱅크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푸드뱅크 기부 상자는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서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식료품 기증은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우리 마을 슈퍼마켓에도 계산대 바로 앞에 상자가 놓여 있다. 그러니 이 기부는 누군가 조직해줘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부가 한차례 끝날 때마다 다음번은 언제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기부를 넘어, ‘좋은 일을 같이하는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경험은 놀이와 비슷하다.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규칙이 있고,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면 즐거운 일이다. 수북이 쌓여 있는 통조림과 쌀, 국수, 시리얼 사진에서 자신이 기부한 물품을 찾아보는 것, 채팅방에 서로를(그리고 이 일에 동참한 자신을) 칭찬하는 감탄사를 올리는 것, 나중에 푸드뱅크에서 보내주는 감사편지를 돌려 읽는 것. 이런 것들이 다 이 놀이의 즐거움이다. 재미있기 때문에 자꾸 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공동체 놀이의 시작은 5월 8일 ‘유럽 승전의 날’(Victory in Europe Day) 골목 파티였다. (전에 글로 쓴 바 있듯이 슬프게도 내게는 이게 잔치도 놀이도 아니었다. 「그들의 봄, 우리의 여름: 전쟁에 대한 다른 기억」, 창비주간논평 2020.6.10.) 그후에도 골목 음악회를 몇번 열었다. 지금 우리 골목에 크리스마스 불빛 장식이 빛나는 것도 일종의 놀이다. 어떤 사람이 골목 야경을 찍어 단체 채팅방에 올리자, 너도나도 장식을 더 보태서 불빛이 나날이 늘었다.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런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놀이를 하다보니 공동체가 된 것 같다.

 

이웃이라서 할 수 있는 일

 

이웃 공동체가 만들어지니 좋은 점이 있다. 취약한 이웃을 도울 수 있다. 처음 시작한 일이 혼자 사는 노인들과 그들을 돕는 이웃을 짝꿍(support bubble)으로 엮는 것이었다. 이 일은 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된다. 이를테면 우리 앞집 할머니 집 쇼핑은 그 옆집 청년이 해준다.

 

예전에는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반송하거나 버렸는데 이제 주인을 찾아줄 수 있다(주인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안 쓰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을 이웃에게서 받을 수 있다(채팅방에는 물물교환 메시지가 제일 많다). 골목 잔치처럼 이따금 밖에 나와 노는 것도 괜찮다. 어차피 이동제한 때문에 멀리 있는 친구를 만날 수도 없으니 가까이 있는 이웃과 놀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친구가 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채팅방의 적극적 참여자는 아니다. 참여관찰 연구자처럼 그저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도모하는지, 그 경험을 어떻게 재현하고 회상하면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지를 구경한다. 그런 내게도 이 골목 공동체가 주는 직접적인 혜택이 있으니, 그것은 ‘안전함’이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닥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연락할 곳이 있다는 것을 안다. 채팅방에 긴급지원을 요청하면 누구라도 달려올 것이다. 이웃은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건 안도이고 위안이다. 아마 채팅방에 있는 63명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 ‘눈팅’만 할지언정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

 

여기까지가 내 얘기다. 영국의 모든 곳이 이런 것은 물론 아니고, 이 골목이 유별난 편이다. 한국에도 실정에 맞는 공동체가 있을 거다. 그래도 혹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골목 이야기가 참조가 되면 좋겠다. 경계를 지키면서 느슨하게 연결된 안전망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이 모든 것의 출발은 100호에 사는 리즈였다. 그 젊은 엄마가 이 어려운 상황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나서는 편지를 집집마다 돌리지 않았다면 이 일은 시작되지 않았을 거다. 무엇이든지 시작은 늘 사람이 한다.

 

이향규 / 후아유』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저자

2020.12.2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