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바이든 미국 정부의 출범: 미국의 내분과 한반도 ‘대전환의 시간’
불안하게 출발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내일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오늘이고 미래는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세상이다. 2021년 새해 첫 달도 지금까지 우리가 맞았던 ‘오늘’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만 오늘은 분명히 어제와 다르다. 내일의 불확실성을 어제와는 다른 오늘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미국 정치의 내분과 사회의 양극화
미국에서는 117대 연방 상·하원 의회가 3일 공식 출범했다. 그 의회는 깊게 갈라져 있다. 우선 민주당이 우세한 하원과 공화당이 다수를 지킨 상원으로 갈라져 있다. 게다가 상·하원 모두 양당의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또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다른 이유로 내분과 내홍을 겪고 있다.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선거결과는 더욱 깊고 넓게 갈라진 미국사회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아직도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강고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미국사회 분열상을 드러낸다.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의석 과반수 218석을 넘긴 222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211석을 보유한 공화당을 경시할 수 없다. 당장 하원의장 선거에서 민주당 낸시 펠로시 후보가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를 216 대 209로 아슬아슬하게 눌렀다. 펠로시 후보가 과반수 미만의 득표로 아슬아슬하게 선출된 또다른 이유는 민주당 내분이다. 투표에 참여한 민주당 하원의원 중 2명은 후보로 출마하지 않은 다른 의원을 찍었고, 다른 3명은 사실상 기권했다. ‘반란표’를 던진 의원이 5명뿐이라고 무시하기도 어렵다. 펠로시 하원의장으로 대표되는 ‘당권파’에 대한 저변의 불만을 이들이 공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누르기 위해 단결했던 민주당의 여러 세력이 선거 이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민주당 주류 세력은 민주당의 전통적 정책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반면 개혁파들은 보다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거나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상원에서는 더 아슬아슬한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전체 100석을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이 50석과 48석씩 나누어 갖고 있다. 나머지 2석은 5일(미국 시각) 실시되는 조지아주 결선투표로 결정된다. 공화당은 1석만 이겨도 다수당 지위를 지킨다. 반면 민주당이 2석 모두 이기면 민주당이 상원을 탈환한다. ‘50 대 50’이지만 민주당 소속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상원의장을 겸하기 때문이다. 어느 당이 승리하든 상원도 양당이 분점하는 상태가 되는 것은 하원과 비슷하다. 민주당이 펠로시 하원의장 선출을 두고 갈라진 모습을 보였다면 공화당은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 인증을 두고 내홍을 겪고 있다. 상원에서는 미치 매코넬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선거결과 인증을 촉구하고 있지만,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비롯 공화당 상원의원의 거의 4분의 1이 인증을 거부하며 선거부정 여부를 조사할 긴급감사를 요구하고 있다. 하원에서는 공화당 의원의 과반수가 선거결과를 번복하려는 소송에 참가한 바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수가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 의회의 분열상은 미국사회의 분열을 반영한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고 충분한 선거인단을 확보하여 승리했지만, 트럼프 후보는 2016년 대선에서 얻었던 6300여만표를 훌쩍 뛰어넘는 7400여만표를 얻는 선전을 벌였다. 지난 4년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트럼프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자도 늘었지만 트럼프 지지자 또한 증가한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며 대선결과에 불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열성적이고도 강고한 트럼프 지지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서는 차기 당내 경선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지자들이 남아 있는 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물러나더라도 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퇴임해도 그가 표상한 ‘트럼프주의’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 주요한 이유는 ‘트럼프주의’를 발생시킨 사회경제적 구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든 민주당 개혁파 지지자든 미국인 상당수는 자신이 미국사회 주류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느끼거나 불평등하다는 피해의식 내지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주요 7개국(G7) 중 최악이며 미국인의 자산 격차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1989년부터 2016년 사이에 미국 빈곤층과 부유층의 격차는 두배 넘게 더 벌어졌고, 코로나19는 이러한 격차를 더욱 심화시켜 ‘역대급’으로 만들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50명의 자산이 미국 인구 절반인 하위 1억 6500만명의 자산을 모두 합한 것에 육박한 것으로 드러났을 정도다. 미국사회의 양극화는 정치의 양극화에 투영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불확실성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당선자는 1월 20일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으로서 마주해야 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사회와 정치의 깊은 분열은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을 극심히 제한할 것이며 그의 발언과 행동은 또다른 분란의 소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의 불’인 코로나19의 확산을 잡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지만 백신을 확보했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확진자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은 것은 초기 대응의 실패에도 기인하지만 미국 의료체계의 붕괴와 사회의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백신의 보급과 접종에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발목을 잡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정부보다는 더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펼친다고 해도 단기간에 코로나19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이다.
사회와 정치의 분열은 외교정책에서도 바이든 행정부 운신의 폭을 제한할 것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시 탈퇴한 빠리기후협약이나 이란핵협정 또는 미국이 탈퇴한 후 출범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에 복귀하는 것이 바이든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원하는 만큼 순조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관계 설정도 쉽지 않다. 지난 몇년 사이에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부쩍 상승했고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 중국과의 경제적 분리 등에 대한 지지도 광범위하다. 하지만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미국의 무역적자가 계속 증가했다는 사실은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조치가 현실적으로는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한반도 ‘대전환의 시간’?
미국이 처한 이런 현실은 한국에는 ‘대전환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발목이 잡혀 있고 손이 묶여 있는 바이든 정부에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며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쥘 수 있고 의제 집행에서 앞서 나갈 공간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시작전지휘권 반환의 ‘조건’ 자체에 대한 재협상을 제안한다. 현재 진행중인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어떤 특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전작권을 돌려받기 위해, 임의로 만들어놓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노력할 것이 아니다. 전작권은 무조건 돌려받고 그 조건하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확보하고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은 올해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유예 내지 취소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조치가 한미 양국이 북에 적대의사가 없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과 맞물린다면 한반도에서 ‘대전환의 시간’을 열 수도 있다. 이렇게 말과 행동으로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다져야 현재의 적대적 기조를 넘어서는 조치들을 이어갈 여지가 생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작은 교류’가 추진되어야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이 적대관계의 관리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개척하는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제안했던 것과 같이(졸고 「대북 원유 지원을 제안한다」, 창비주간논평 2018.12.19.) 한국이 북에 원유를 지원하거나 판매한다면 평화의 길은 훨씬 커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현재 유엔 결의에도 불구하고 대북 원유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미국 재무부다. 북이 해상환적을 통해서 유엔 결의를 위반하고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미 재무부 스스로도 이는 근거가 박약한 추정에 기반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 관료들은 이런 미국의 주장에 모두 머리 숙이고 있다. 관료정치가 정책결정자의 손을 묶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구두선으로 끝날 것이다.)
새해가 안고 오는 불확실성은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을 넘어 그 가능성에 가슴 부푼 새해를 맞는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2021.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