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촛불정부, 어디로 가야 하나?
촛불항쟁은 국민적 참여로 진행되었고 문재인정부는 그 결과로 출범했다. 문재인정부 스스로도 촛불혁명의 완수를 주장해왔기에 이 정부를 촛불정부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 촛불정부가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두는지가 촛불혁명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텐데, 최근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기대에 값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구심도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주된 문제가 ‘적폐’와 그들의 저항에 있다고 본다면 지지율 하락 등을 이유로 촛불정부 및 촛불세력이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거부감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선거결과에 따라 그 이전의 정치행위들이 해석된다. 또 지지율의 변화는 그 자체로 문제의 징후이며 선거 국면에 진입하면 정치적 의미가 더욱 크게 증폭된다. 촛불정부의 성공과 촛불혁명의 진전을 바란다면 이러한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소위 ‘야당 복’에 기대를 걸며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려는 태도도 적지 않다. 현재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나 수구세력의 행태를 보건대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선거를 앞두고는 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일시적 미봉책이고 속임수에 가깝다 할지라도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속는 셈 치고 한번 밀어주자는 심리가 확산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길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변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촛불혁명은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한국과 한반도의 대전환을 추진하는 일이며 그 과정에 실수나 잘못이 없을 수 없다. 이를 계속 점검하고 성찰할 때 촛불혁명이 진전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외면하고 구두선으로만 촛불혁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할 일을 다하고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촛불혁명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시점에서 출현하는데, 이때 촛불혁명의 의의를 부정하는 청산주의가 고개를 들게 되며 촛불혁명의 진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는 앞의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즉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변화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태도가 더이상 변화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스스로 청산주의로 전락하거나 혹은 청산주의의 확산을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촛불항쟁 5주년을 맞이하고 1기 촛불정부의 임기가 1년 남짓하게 남은 시점에 청산주의가 아니라 촛불혁명의 진전이라는 각도에서 지나온 길을 성찰적으로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우리의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청산주의에 빠질 이유는 없다. 촛불혁명은 이미 우리 사회를 과거로 되돌리기 어려운 흐름을 만들었다. 불평등 해소,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성평등 등이 정치적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등장했다. 나아가 정부의 업적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방역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경제활동의 전면적인 중단 없이 감염 확산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큰 성과이다. 그 결과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도 결정적인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쟁 위기를 크게 감소시키고 평화적 환경을 유지한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진전을 부정한 채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고 일시적으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킬 수 있을지언정 그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성찰은 촛불혁명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무엇이 부족했는가를 따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이 결여될 경우 어설픈 ‘중도 마케팅’이 등장하기 쉽다. 두 전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이 중차대한 해를 시작하는 화두로 제기되었던 것이 그 징조 중 하나이다. 중도와 같이 가는 것은 중요하며 대부분의 중도는 위에서 제시한 의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촛불혁명의 진전도 중도와 함께한 결과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의 중도 마케팅은 정작 이처럼 촛불혁명의 대의에 동의하는 중도보다는 극복되어야 할 세력을 향해 발신되고는 한다. 이는 중도를 반대편으로 밀어내고 정치적으로 더 곤궁한 처지에 빠지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 촛불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촛불혁명의 초심이 무엇인가를 다시 따지고 이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가 우선 필요하며, 이것이 중도와 더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 길이다.
방법도 중요하다. 베버(M. Weber)의 책임윤리를 운운하지 않아도 현실정치에서 추상적 대의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정당성이 부여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상식에 해당한다. 다만 촛불혁명이라는 극적 사건이 이러한 상식을 잊게 만든 면이 있다. 압도적 정당성을 갖는 대의에 기대려는 태도가 은연중 확산되었다. 그에 따라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입각해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거나 추진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채 추상적 대의만을 앞세워 즉흥적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도리어 개혁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검찰개혁이 제도개혁에 초점이 맞추어 진행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특정인들 사이의 갈등 사안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제라도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불평등 해소, 그리고 새로운 의제로 강조되고 있는 그린뉴딜 등을 위해 개혁과제의 목표 및 수단을 정비해가야 한다. 이는 정부여당만이 아니라 촛불혁명을 지지하는 모든 시민들이, 촛불혁명의 더 중요한 주체인 시민들이 같이 성찰해야 할 문제이다. 촛불정부는 이 문제들과 관련한 열린 토론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현시점에서 1기 촛불정부는 무난한 마무리를 자신의 역할로 간주하는 자세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임기 말의 정부는 여러 이유로 정책적·정치적 주도력이 약화되는데 스스로도 이를 수용하는 모습인 경우가 많다. 촛불정부는 이러한 안이한 태도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더 심기일전해 임기 내에 촛불혁명을 진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며, 더욱 담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부동산 문제도 미시적 가격통제를 넘어 획기적 지역분권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인사 문제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평화도 더 능동적으로 그 필요성과 미래 비전을 국민과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는 홀로 하는 일이 아니다. 여전히 역사의 흐름을 전진시키려는 다수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의 참여를 북돋운다면 남은 짧은 기간에도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 5년 전에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과 힘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2021.1.1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