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로 시사저널과 결별한 일군의 기자들이 지난 9월 17일 창간한 시사주간지이다. 인터뷰어는 세교연구소 이병한 연구원이 맡았다. 오랜 기간 일선에서 활동해온 중견 언론인과 젊은 세대가 우리 언론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 창간호를 포함해서 벌써 4호까지 나왔습니다. 새 매체에 대한 반응이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것 같아요. 《시사저널》이 처음 나왔을 때도 반응이 상당했는데, 그때 못지않거든요. 가판대에서도 거의 매진되었죠. 창간호에 선물 하나 없었는데,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자평합니다. ■ 지난 1년간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를 겪고 《시사IN》 탄생을 맞이하면서 당사자로서 느낀 소회가 남' /> 계간 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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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시사IN》과 독립언론의 실험

문정우 / 《시사IN》 편집국장


* 편집자의 말 : 이번호 창비주간논평에는 《시사IN》 문정우 편집국장과의 인터뷰를 싣는다. 《시사IN》은 '시사저널 사태'(자세한 내용은 본지 <언론 없는 민주주의,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 참조)로 시사저널과 결별한 일군의 기자들이 지난 9월 17일 창간한 시사주간지이다. 인터뷰어는 세교연구소 이병한 연구원이 맡았다. 오랜 기간 일선에서 활동해온 중견 언론인과 젊은 세대가 우리 언론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 창간호를 포함해서 벌써 4호까지 나왔습니다. 새 매체에 대한 반응이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것 같아요. 《시사저널》이 처음 나왔을 때도 반응이 상당했는데, 그때 못지않거든요. 가판대에서도 거의 매진되었죠. 창간호에 선물 하나 없었는데,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자평합니다.


■ 지난 1년간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를 겪고 《시사IN》 탄생을 맞이하면서 당사자로서 느낀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처음 파업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렇게 결말이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회사와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까지 치닫는 것을 보면서 자본의 힘이 정말로 막강하구나 하는 걸 절감했어요. 《시사저널》이든 그 뒤의 삼성이든 기자들에게 철저한 굴복을 원하더군요. 반면에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버티니까, 거기에 동조하고 공감해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자본의 무소불위에 우려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전에는 우리가 '연대'라는 걸 잘 몰랐거든요. 기자협회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태가 커지고 노조를 결성하고 여러 단체들이 지원하고 함께 대응해가면서 연대와 나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처음 깨달았어요. 기자들만 사표내고 새 매체로 온 게 아니거든요. 계약직 운전기사 아저씨까지 포함해서 모두 《시사IN》으로 옮겨왔습니다. 저희의 뜻에 공감하고 동조해서 힘을 실어주신 거죠.


■ 시사모 활동도 활발했고 소액투자자들도 꽤 있었죠?


소액투자자는 6백여명이 참여했고요, 그것만으로도 20억이 모였죠.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활동은 저희들에게도 각별했는데, 처음으로 독자분들을 대면할 수 있었어요. 5년, 10년이 넘게 우리가 만든 잡지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신 분들을 직접 뵈니 감동도 있고 책임감도 느꼈죠. 정말 제대로 된 기사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어요.


■ 기자들이 한동안 현장에서 멀어져 있었는데, 《시사IN》을 창간하고 적응하는 데 문제가 있지는 않았나요? 지금처럼 오히려 인터뷰 대상이 되기도 했잖아요(웃음).


그럼요. 지금도 한창 적응하고 있죠. 저희끼리 서점 가서 '기사 쓰는 법' 같은 책을 사봐야 하지 않느냐고 농담도 합니다. 한동안 성명서만 쓰다 보니, 취재나 기사 쓰는 게 낯설고 감각도 많이 잃었죠. 반면에 쉬었기 때문에 충전이 되고 의욕이 생기는 면도 있어요. 예전에 기자노릇 하면서 지긋지긋했던 기억들 싹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거죠. 또 '시사저널 사태'로 우리 기자들 얼굴이 알려지고 나니까, 취재할 때 더 우호적이고 편해진 구석도 있더라고요. 신정아 인터뷰 특종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시사IN》 자체가 화제가 되어서거든요.


■ 《시사저널》 얘기를 조금 하죠. 찾아보니까 이미 오래전인 2005년 9월 추석 합병호 특집으로 '삼성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나'도 기획했던데요. 이번에는 3면짜리 기사로 직장폐쇄와 전원 사표라는 극단적인 사태가 전개된 거잖아요? 금창태씨 취임 이래로 갈등이 누적되어왔던 건가요?


금창태씨가 발행인으로 온 것이 2004년인데, 경영진과 기자들 사이에는 줄곧 갈등이 있었어요. 《시사저널》은 전통적으로 편집과 경영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런 씨스템을 경영진이 몹시 불편해하고 힘들어했죠.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금창태 사장이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분은 그전에도 사주의 뜻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돌쇠'라 불릴 정도로 정평이 나 있었어요. 사주가 그분을 사장으로 데리고 올 때부터 편집에 깊이 관여하려 한다고 직감했죠.


■ 그럼 2005년 삼성 특집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나요?


아뇨, 많은 문제가 있었죠. 그때는 우리가 버틴 거예요. 계속 버티니까 이제는 아예 인쇄소에서 몰래 빼버린 거죠.


■ 결국 갈등의 핵심은 편집권이었는데요.


편집권이라는 게 어디에 귀속되는지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봐요. 제도란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거니까요. 《시사저널》의 역사와 문화는 편집과 경영의 철저한 분리였어요. 그런 씨스템을 줄곧 지켜왔고, 기자들도 그 원칙이 옳다고 믿으면서 일해왔던 거죠. 그런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뒤집으려고 하니까 갈등이 폭발한 거죠.


■ 《시사저널》만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강조하면 편집권 일반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저는 편집권이 딱히 어디에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아요. 동아투위나 조선투위의 투쟁도 일찍이 편집권에 관련한 것이었는데, 그쪽 사주들도 편집권은 경영진의 권리라며 기자들을 해고해버렸잖아요. 그후에 들어간 기자들은 그 논리를 수용한 것이고, 그것이 그 언론사들의 제도와 전통, 가치로 정착되어버린 거죠. 하지만 《시사저널》은 그렇지 않았어요.


■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편집권 논쟁의 핵심은 자본과 언론의 관계이고, 길게 보면 87년 이후의 변화잖아요. 일간지 《한겨레》, 주간지 《시사저널》, 월간지 《말》 등이 등장하고 성공한 것 자체가 시대정신의 힘이고 그 반영이었는데, 97년 이후로 분위기가 확 바뀐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간 언론환경의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하셨을 텐데요?


엄청나게 변했죠. 87년 6월항쟁 이후 언론계에 완전히 새 바람이 불었어요. 언론노조도 생기고 기자협회도 야성을 찾고, 언론의 과거청산 문제나 해직기자들의 복직 문제, 언론윤리, 기자윤리 같은 문제들이 정면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죠. 언론계가 정기를 되찾아가는 듯한 시기가 10여년 있었어요. 그런데 환란이 터지고 구조조정이라는 엄청난 파고 속에서 군부독재시대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떠나게 되죠.


■ 해직기자들보다 IMF 이후 구조조정된 기자 수가 더 많나요?


그럼요. 그렇게 되면서 언론계에서도 생존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 거예요. 기자들이 영업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말이죠. 기본적으로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쓰는 것이 금기시되고 맙니다.


■ 언론 내부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더 나빠졌다고 보시나요?


아주 나빠졌죠. 87년 이후 언론이 민주화되어가던 것이 순식간에 거꾸로 가버린 거니까요. 제가 이번 사태를 겪으며 느낀 건데, 방송 쪽은 비교적 노조가 강하니까 이 사태를 제법 취재해 갔는데, 조중동은 전혀 취재해 가지 않았어요. 조선투위 동아투위 때 한국일보나 중앙일보가 보도한 것보다 훨씬 적게 보도했다고 하거든요. 저도 메이저신문들이 동조해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 신문사의 기자들이 취재조차 하지 않는 것은 놀랍고 이채롭기까지 했어요. 예전에는 자기 영역에서 중요한 일이 터지면 취재하고 데스크에 넘겨주기는 했거든요. 데스크에서 편집되는 것은 나중 일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취재하는 기자조차 없었어요. 사주나 데스크가 기자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기자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다는 거죠.


■ 내부검열이 일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엄청나게 순치된 거죠. 환란 이후 10년이 지났으니까, 그때 들어온 기자들이 벌써 10년차가 된 것 아닙니까. 일간지 같은 경우는 이제 그 사람들이 하부중추를 이루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까지 순치되었다는 게 정말 무섭게 느껴지더라고요.


■ 언론의 기사라는 건 상품인 동시에 공공재적 성격도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편집활동도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적 기능을 갖는다고 하는데, 현장의 분위기가 그렇게 순치되었다고 한다면 이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확장해서 이해해도 될까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본이 언론사들을 많이 사들이고 있어요. 또 편집권에 깊이 관여하고요.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한 것처럼 알게 모르게 전세계의 권위지들이 다 넘어가고 있거든요. 자본에 편리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전세계 언론의 논조가 재편되고 있다는 거죠. 그 점에서 민주주의는 상당한 위기 상황입니다. 제국주의든 군부독재든 권력의 속성은 비슷하거든요. 언론을 말살하고 문화를 말살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거죠. 과거의 피비린내나는 폭력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자본이 지배하는 지금도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자본이 언론을 휘어잡고 문화를 후퇴시키는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대표적으로 출판시장의 위축이 있죠. 지금 한국의 출판시장에서 팔린다는 책들이 다 재테크니 처세술이니 그런 거잖아요. 사람들이 심각하고 깊이있는 것들을 외면하고…… 이 모든 게 문화의 후퇴와 지체라고 봅니다. 그래서 출판과 언론을 다시 살려야 한다, 그것들이 죽어가는 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자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 자각만 해서도 안될 테고, 그걸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있어야 하는데, 《시사IN》에서 편집권 독립을 위해 마련한 제도적 장치나 실험들이 있나요?

금창태 사장이 자신의 행태를 비판한 언론인, 칼럼니스트 들을 고발하면서 법원과 검찰이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거죠. 그래서 그분이 5전 5패 했단 말입니다. 우리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이죠. 그런데 그래 봐야 뭐합니까? 쫓겨난 것은 결국 기자들이거든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아직도 《시사저널》에 버젓이 남아 있잖아요. 기자들이 아무리 정당한 주장을 한다 하더라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거죠. 이유가 뭐냐면, 회사의 지배구조가 엉터리이기 때문이에요. 회사의 지배구조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시사IN》 만들면서 더 좋은 종이를 쓰고 제작에도 더 많은 공을 들였는데, 제작비는 《시사저널》 때보다 훨씬 적게 들었어요. 그럼 그동안 그 차액이 다 어디로 갔겠습니까? 지금 언론사들의 지배구조를 보면 사주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어요. 사주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고자 할 때 견제할 수 있는 씨스템이 없거든요.


■ 《시사IN》은 제도적으로 얼마나 다르게 되어 있죠?

저희는 거의 최초로 정관을 통해서 아예 대못을 박았습니다. 소유 개념의 대주주는 받지 않는다. 대주주의 지분도 50% 이하여야 하고, 이사회의 과반을 점할 수도 없다. 편집과 경영은 철저히 분리한다. 또 편집국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편집국에서 온 이사가 한명만 있어도 '시사저널 사태' 같은 전횡이 일어나지는 않거든요. 저는 기자가 독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자와 경영진이 서로 견제하고 자극하면서 함께 가는 게 자본주의 원칙에도 맞고 주식회사를 창립한 취지에도 부합하는 거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도 이런 모델이고요. 예전에는 역사와 전통, 문화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자본의 힘이 강해지면서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게 된 거죠. 전 이 실험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 언론사 내부의 각성을 통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수익구조 창출이 핵심인데, 인터넷의 등장 등 미디어환경이 급변하면서 활자매체가 전반적으로 힘들어진 거 같습니다. 그러니 광고에 더 의존하게 되고, 자본의 통제도 그만큼 강화되는 거죠. 광고의 비중을 줄이고 판매수익을 늘리는 게 관건일 텐데 방안이 있으신지요?

활자매체의 위기를 독자가 초래한 것 같지는 않아요. 매체가 스스로 초래한 거죠. 언론사들이 전부 외형 경쟁에 치우치다 보니까 전반적으로 무가지처럼 되고 있거든요. 구독료로 얻는 수입은 자전거 뿌리고 경품 주는 데 다 소진하고, 본사의 인건비나 제작비 등은 거의 100%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니까 단순 정보지가 되고 마는 거죠. 그러면 전문기자라든가 숙련된 기자도 필요없거든요. 그러니까 신문에 읽을거리가 없죠. 무가지나 신문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이 더 상품성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 기사의 질을 높이는 게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인쇄매체 시장이 죽은 게 아니거든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어요. 깊이있는 기사를 만들어내고 편집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방향으로 가면, 충분한 수요가 있다고 봅니다.


■ 편집국을 뉴스팀과 탐사팀으로 분리한 것도 그런 측면에서인가요?

그렇죠. 뉴스팀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을 신속하게 다루고, 탐사팀은 돈과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서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의제를 긴 안목으로 발굴하고 기사화할 수 있게 역할을 분담한 겁니다.


■ 정면승부네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탄생 자체가 그렇잖아요. 또 그렇게 독자의 신뢰를 얻어서 정기구독 위주로 가야 정론을 펼 수 있어요. 예전 《시사저널》이 삼성에 대해서도 과감한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건 우리 기자들이 유달리 용감하고 정의감이 있어서가 아니거든요. 《시사저널》의 수익구조가 뒷받침되어서였어요. 판매수익이 광고 비중보다 더 높았거든요. 7:3 정도였죠. 그러니까 재벌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거죠. 《시사IN》도 판매와 광고 수익의 비율이 5:5 정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기구독자 2만명을 확보한다면 독립언론으로서 자립해 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 새로운 언론 실험을 해나가는 《시사IN》의 초대 편집국장으로서,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독자들도 언론과 출판이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책을 사는 데 지갑을 열어주셨으면 해요.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을 만든 것도 사실 도서관이잖아요. 저는 이미 상황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해요. 이번 사태를 겪는 동안 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에 대한 갈망을 느꼈어요. 그런 자각이 있고 그런 힘들이 모여서 《시사IN》도 탄생하게 된 거죠. 저희들도 열심히 만들 거니까 독자분들도 많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회사터도 좋은 것 같습니다. 마침 독립문 근처인데 《시사IN》도 명실상부한 독립언론으로 우뚝 서게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007.10.23 ⓒ 창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