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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가덕도 특별법과 생태적 전환

이일영

이일영

충격이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특별법을 발의한 지 석달 만이다. 지난 10여년 이상 지역균형발전의 방향에 관한 진지한 숙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초스피드로 진행된 법안 처리 뉴스를 접하고는 한동안 멍한 느낌이 들었다.

 

선거공학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전후 사정을 꿰어 맞추기 어렵다. 여권이 가덕도 신공항 의제를 던지고 나서 1월 중순경부터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역전되었다고 하니, 이 추세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싶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본다. 가덕도 신공항 의제가 장기적으로도 더불어민주당에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부울경 지역은 인구가 8백만에 가까워서 수도권 다음으로 큰 곳이고, 현 집권세력의 본거지라고도 할 수 있다. 또 현 정부에는 노무현정부의 기억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세종시 프로젝트가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서 스윙보터였던 충청권을 끌어들였던 바 있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이 간과한 점이 있다. 정책의제는 인간·물질의 여러 행위자들 간 네트워크에 의해 작동한다. 노무현정부의 수도 이전 의제는 단순한 선거공학 의제가 아니라, 국토균형발전, 동북아시대 전략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덕도 신공항 법안에는 정책 간의 네트워크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정책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정책은 인간·비인간의 여러 행위자들의 결집체인데, 어떤 상징물이 여러 정책들을 네트워크로 묶어내고 그 네트워크에서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문재인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책으로는 K-방역, 한국판 뉴딜, 신한반도체제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덕도 법안이 강력한 상징물로 떠오르면서, 문재인정부의 정책 네트워크는 크게 헝클어지고 말았다. 가덕도 특별법을 급히 통과시켰지만 토건주의, 개발지상주의의 색깔을 벗어날 방안은 모색되지 않았다. 가덕도 법안이 반(反)생태, 반지역균형 노선을 연상시키면서 이전에 내놓은 그린뉴딜, 지역뉴딜 비전은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가덕도 법안은 문재인정부를 반대하는 새로운 행위자-네트워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가덕도 신공항이 4대강사업과 유사한 것으로 상징화되는 과정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가덕 신공항은 전두환정권의 ‘평화의 댐’, 이명박정권의 ‘4대강사업’에 이어 최악의 토건사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심상정 의원도 “가덕도사업이 문재인정부의 4대강사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정의당이 비록 소수정당이긴 하지만, 이러한 말의 힘까지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개발주의 비판 담론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경실련은 “국토부가 추정한 가덕신공항 총 비용은 28.6조원에 이르나” 실제로는 그 이상이 들 것이라며 “MB정부 4대강 살리기사업의 23조원과는 비교되지 않는다”라고 규탄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예비타당성 조사와 같은 적법하고 필수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공항건설을 강행하려는 특별법 제정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라고 입장을 냈다. 환경운동연합과 사단법인 환경정의도 신공항 건설이 탄소중립 및 항공부문 온실가스 감축과 반대방향으로 간다는 점을 지적했다. 환경정의는 특히 가덕도 신공항이 “제2의 4대강사업”임을 언급했다.

 

가덕도 신공항 법안과 관련하여 생태주의 진영도 스스로 돌아볼 대목이 있다. 우선 여권에 합류한 운동가와 전문가들의 역할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제주 신공항의 경우 교통 수요와 도내 균형발전 차원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공사비용과 환경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다. 가덕도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사전타당성 검토와 환경영향평가 절차까지 빼지는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이 과정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법안에 명시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도 ‘필요시’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타당성 기준에 대한 논의까지 포함한 공론화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면서 생태주의 진영의 반응은 깊이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생태주의 세력이 존중해야 할 상대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세력도 미미하거니와 그저 현실을 모르는 집단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생태주의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상황이다. 생태적 전환에 대해서 우리 모두 뒤늦게 각성하는 중이지만, 지금까지의 운동이나 담론 상황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구의 ‘공정한 전환’(또는 ‘정의로운 전환’) 담론은 1990년대 노동계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역적‧계파적으로 끊임없이 확장되는 중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생태주의는 운동의 전통상 소농주의적 농촌파 경향이 강한 편이고, 부문·지역·산업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세력들이 생태적 전환의 의제를 정치적·정책적 판단에서 쉽게 무시하는 것 같다.

 

생태적 전환의 길이 쉽지 않다는 점을 226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그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2021.3.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