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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돌아왔다, 하지만… :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과 미래

서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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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일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 명의로 된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을 발표하며 미국의 복귀를 선언했다. 같은 날 블링컨(A. J. Blinken) 국무장관도 ‘미국 국민을 위한 외교정책’이라는 연설에서 ‘미국 국민을 위한 가치외교’를 천명했다. 과연 바이든 정부의 세계전략은 무엇인가? 블링컨 국무장관이 제창한 ‘가치외교’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러한 외교안보전략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 없는 미국우선주의

 

제이크 썰리번(Jake Sullivan)은 작년 말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뒤 첫 발언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좌표를 선명하게 제시했다. 외교안보정책이 국민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며 이제부터는 국민들이 외교정책의 혜택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 외교정책의 기본이기는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외교노선도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반엘리트주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간의 세계화가 블루칼라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것은 여당인 미국 민주당의 2022년 선거전략과도 연결되어 있다. ‘미국 국민을 위한 외교정책’에 대해 미국우선주의를 트럼프와 공화당에서 빼앗아오기 위한 노선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는 이유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미국 국민을 위한 외교정책’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 연설에서 그는 전염병 대유행 억제, 경제위기 극복, 민주주의 회복, 이민 정책, 동맹 복원, 기후변화 대응, 기술 분야에서 리더십 확보, 중국 대응을 8대 외교 과제로 제시하면서도 이러한 과제가 국내 과제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교는 국내정치’라고 선언한 것이다. 외교의 성공을 가름하는 시금석도 외교정책이 미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라고 규정했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이 반드시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미국의 모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미국인의 권리와 보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의 이익을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바이든 정부도 트럼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국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 국민의 이익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또 정책 수단에 있어서도 ‘개인기’로 모든 국정 현안을 돌파하려고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달리 ‘팀플레이’를 중시하고 있다. 정책 검토와 작성에서 관계 부처와 전문가들의 협의를 통한 민주주의적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는 동맹관계 및 우호관계를 복원·확대하려는 다자외교로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민주주의적 절차를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밑에서 설명할 ‘가치외교’의 절차적 구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단 블링컨 국무장관은 바이든 정부가 선호하는 정책 수단은 외교적 해결이라고 하면서도 “미국인의 생명과 핵심이익이 위태로울 때 무력 사용을 절대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효과적 외교를 위해 최강의 군대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목표와 임무가 분명하고 달성 가능하며 우리 가치, 법과 일치할 때에만 군사적 조처를 할 것”이라는 전제를 붙이기는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선언한 미국의 복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외교노선의 근간이었던 현실주의적 국제주의의 복귀라고도 볼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외교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미국의 국익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은 “미국인의 삶의 핵심에 있는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고 지켜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미국인 모두의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사회에 가해지는 위협과 싸우기 위해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단합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해외에서도 미국의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며, 그 이유로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인권을 옹호할뿐더러 “미국 상품과 서비스의 안정적 시장”이 된다는 점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한편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은 권위주의가 도처에서 발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민주주의 동맹국들 및 동반자국들과 함께 전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인권을 지키고 부정부패와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신기술, 우주, 사이버 공간, 보건,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새로운 합의와 기준을 구축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지위를 더욱 강화하여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우위를 누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가치외교’의 지향점을 밝혔다. 즉 “미국의 이익을 진전시키고 미국의 가치를 반영하는 국제기준과 합의들”을 형성하여 세계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을 1 대 1로 상대하기보다는 다국적 네트워크로 대항하겠다는 것이고, 직접적 군사력보다는 국제 규범과 제도를 형성하는 능력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제도주의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은 일방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비된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든 행정부가 국력과 군사력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에서는 국제 권력분포가 미국에 유리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미국 국가안보의 뿌리라는 점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국력의 기초인 과학과 기술 기반을 강화하고 사이버 안보 등의 기간구조 및 국가안보 능력에 투자를 증대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 동맹국과 동반자국가들이 ‘승수효과’를 통해서 미국이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미국의 독특한 자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미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태평양 억제 구상’을 위해 내년 46.8억 달러를 요청했다. 2021 회계연도에 배정됐던 액수의 두배를 넘는다.

 

가치외교의 길고도 힘든 여정

 

미국 국민을 위한 가치외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바이든 정부가 가치외교의 근간으로 내세운 미국의 국내정치 자체가 큰 도전으로 남아 있다. 흑인에 대한 폭력 및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에서 나타나듯 인종갈등이 화약고로 존재하고 지난 대선이 보여주듯 미국사회가 깊게 분열되어 있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고 민주주의적 가치와 절차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한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미국의 생산성을 향상하고 신기술 주도권을 높여야 하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에 이뤄질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의 동맹국들도 과거의 동맹이 아니다. 유럽에서 떨어져 나간 영국과 아시아에서 고립되고 있는 일본 정도가 미국과 손발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했고, 독일은 미국의 제재위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가스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의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에 한 발을 담그면서도 ‘러시아판 사드’로 불리는 S400 구매계약을 체결했으며, 호주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부심하고 있다.

 

또한 바이든 정부가 최근 미얀마 군부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폭압에는 말을 아끼는 대신 중국에 대해서는 유독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서도 ‘가치외교’의 창끝이 겨누는 바가 드러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3월 20일 외교안보전문기자 데이비드 쌩어의 분석 기사에서 미·러 관계가 베를린장벽 철폐 이후 최악, 미·중 관계는 국교수립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David E. Sanger, “That Was Fast: Blowups With China and Russia in Biden’s First 60 Days”) 그리고 냉전시기에 겪었던 관계악화의 싸이클이 되풀이될 위험성을 지적했다. 미국민을 위한 가치외교는 길고도 힘든 여정을 앞에 두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주창한 미국민을 위한 가치외교는 한반도에 도전과 기회를 제공한다. 우선 미국은 북한을 ‘위협’과 ‘권위주의 정권’으로 규정, 미국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해가 되는 국가로 낙인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북이 전쟁상태라는 상황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데다가 “우리는 (북한)주민과 함께 서서 이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상대로 기본권과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라는 자세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물론 북과 대화를 시작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한반도가 원심력에 끌려 나가 동북아 냉전의 핵이 될 위험성이 있다. 반면 군사력 사용에는 신중을 기하며 다자주의적 외교를 통해 국제적 규범과 합의를 구성하려 한다는 점은 기회의 창이 될 수도 있다, 중국과도 전략적 경쟁을 추구하면서도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에서는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동북아시아 군비통제 다자회의,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동북아시아 환경회의 등 다양한 다자적 의제로 미국과 북한을 포함, 중국과 일본까지 견인하는 다자외교 구상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가 동북아시아 구심력의 핵이 되어야 한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2021.3.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