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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둘러싼 강대국의 책임을 생각한다

김재명

‘전쟁의 신(神)’이 있다면, 아프가니스탄은 바로 그에게 저주받은 땅이 아닐까 싶다. 무려 40년 넘게 그곳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올해 나이 마흔살인 아프간 사람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전란 속에서 지내온 셈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아프간은 세계 최빈국 상태이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하다. 안또니우 구떼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군 철수 직후인 8월 31일 “아프간에 인도주의적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며 경고음을 울렸다. 아프간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1800만명이 굶주리고 있기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국제사회의 지원과 관련해 생각해볼 부분은 아프간의 참상에 얽힌 책임론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약소국의 불행은 강대국들 탓이 크다. 흔히 국제정치는 ‘힘의 정치’(power politics)라 일컫는다. 국제정치사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약소국이 희생되어온 ‘냉혹한 역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도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희생양이 됐다. 1945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 삼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절반씩 차지한 끝에 남북 분단이 굳어진 것처럼 아프간 역시 미-소 냉전 대결구도에 휘말려 엄청난 재앙을 겪었다.


아프간 현지 취재 때 만났던 카불대 교수 아지즈 파니시리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지정학자인 그는 “아프간의 지정학적 특징이 오늘의 비극을 불렀다”라고 진단했다. “아프간은 오래전부터 옛 소련에 인도양으로 통하는 회랑(回廊)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진출을 막으려는 미국, 그리고 이웃 국가 파키스탄과 이란 사이에서 각축전의 대상이 돼왔다. 아프간을 지배하려는 주변 열강들의 야심이 이 땅을 전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희생시켰다.”


아프간의 불행에 가장 책임이 큰 강대국은 누가 뭐래도 미국이다. 아프간을 동서냉전의 각축장으로 여겼고, 무자헤딘(이슬람 반군)을 소련과의 ‘대리전쟁’(proxy war)의 도구로 썼다. 아프간에서 소련군에 맞서 싸우던 오사마 빈 라덴도 미제 군수물자를 받아 썼던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 무렵 빈 라덴은 미국의 동맹자였다. ‘국제관계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라는 말은 이 경우에 꼭 들어맞는다.


미국이 지원한 스팅어 미사일은 소련군 헬기를 잇달아 격추시켰다. 그러나 미국에게 아프간은 딱 거기까지였다. 소련군이 1989년 철수하자, 미국은 동서냉전 구도 아래에서 전략적 이용가치가 없어진 아프간을 버리고 전후 복구를 위한 재정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려고 아프간 군벌들끼리 살벌한 내전이 벌어졌다. 1990년대 전반기에 수도 카불이 철저히 파괴된 것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였다. 아프간을 대리전쟁터로만 여긴 미국은 아프간의 참극에 책임이 크다. 소련이 물러난 뒤 아프간 재건에 힘썼더라면 내전이 멈추었을지 모르고, 어쩌면 9.11테러조차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10년 동안(1979~89년) 아프간 내전에 무력 개입했던 옛 소련도 아프간에 큰 빚을 졌다. 당시 무자헤딘의 공세로 카불 사회주의 정권의 힘이 부치자 소련은 무력으로 개입했다. 이를 두고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이라 말하는 것은 반대편의 시각이다. 소련의 입장에선 친소 카불 정부의 요청에 따른 ‘평화유지군’ 성격의 파병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무자헤딘들에게 돈과 무기를 대주면서 전투력을 높이자, 소련은 ’아프간 수렁‘에 빠져들었다. 끝내는 1만 5천명의 전사자를 낸 채 1989년 불명예스럽게 철수해야만 했다. 2400명의 전사자를 낸 미군의 2021년 철수와 닮은꼴이다.


10년 전쟁을 벌이면서 소련은 아프간 사람들에게 많은 해악을 끼쳤다. 소련군은 마을 우물이나 샘터에 화약제를 뿌리고 마을들을 초토화시켰다. 아프간 취재 때 만난 노인들은 그런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러시아로선 감추고 싶은 과거사를 털어낼 기회가 다가왔다. 러시아는 지난 7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탈레반 대표단에게 아프간 전후 재건을 돕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아프간 재건을 적극 도울 것인가. 아니면 대리전쟁의 도구로서 이용가치가 떨어진 1989년의 아프간처럼 외면할 것인가. 미군 철수를 앞둔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프간에 국가를 건설하러 간 것은 아니다. 미래의 국가 운영방식에 대한 선택은 아프간 사람들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말이야 그렇게 했어도 미국이 아프간 재건 지원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여성 인권 보호 등 여러 조건을 달아서라도 아프간 전후 재건사업을 도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국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원을 거부하고 탈레반 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들에 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내주는 꼴이 된다. 아울러 가뜩이나 높은 이슬람권의 반미 정서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선 안 되겠지만 제2의 9·11테러처럼 폭력적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미국 안에서도 인도적 지원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이미 아프간 철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는 바이든이다. 이래저래 집권 초기의 바이든은 아프간이라는 정치적 시험대 위에 올라 고심하는 모습이다.


G2라는 틀 아래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중국은 아프간에서 미국이 물러난 상황을 하나의 기회로 여긴다.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에 아프간이라는 새 공간이 열릴 참이다. 벌써 일부 중국 기업들은 아프간 땅에 풍부하게 묻혀 있는 희토류 광물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따라서 아프간 재건 비용을 기꺼이 낼 것이다. 지난 8월 베이징을 방문한 탈레반 대표단에게도 지원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에 가까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 분리주의자들 때문에 신경을 쓰면서도, 중국은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고 지원을 빌미로 이런저런 실리를 챙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프간 재건을 기꺼이 도와야 한다. 지난 2007년 봉사활동을 갔던 샘물교회 교인들이 탈레반에게 희생당했던 일이 걸림돌이긴 하다. 희망사항이지만, 탈레반 정부가 그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 관계회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탈레반과의 직접 교류가 불편하거나 시기상조라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도 가능하다. 요점은 한국도 아프간의 전후 재건을 거들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아프간은 지정학적인 희생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둘 다 전쟁의 진한 아픔을 기억한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눈을 감으면 오랜 전쟁으로 저마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지닌 아프간 사람들의 어두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그들이 진정한 평화의 봄을 맞이하는 날이 다가오길 바랄 뿐이다.


김재명 /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2021.9.8.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