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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분단을 넘는 학교

이향규

런던한겨레학교는 영국에 사는 북한 부모들이 설립했다. 나는 얼마 전에 이 학교의 세번째 교장이자, 첫번째 남한 출신 교장이 되었다.

 

코리아타운

 

북한 사람들이 영국에 오기 시작한 것은 20년이 채 안 된다. 2004년 즈음 난민 신청을 하는 탈북민들이 처음 생겨났다. 영국은 약 10년 동안 제법 많은 북한 난민을 받아들였다. UNHCR(유엔난민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영국에 거주하는 북한 난민은 630명, 보호신청자는 56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난민 지위에서 벗어나 영주권자, 시민권자 자격으로 영국 사회에 정착했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모여 산다. 런던 외곽의 뉴몰든 지역은 영국 최대의 한인 밀집거주지역이다. ‘리틀 코리아’라고 불리는 이 일대에는 이미 사우스 코리안이 2만명 가까이 모여 살고 있었다. 여기에 노스 코리안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 500명이 이 일대에 정착해서 산다고 한다. 우리 학교는 이 뉴몰든 중심에 있다.

 

3년 전에 이 학교에서 자원 교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 안에서 경험하는 것도 다 새로웠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이 학교에서 참여관찰연구를 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남북한 주민이 ‘어울려’ (혹은 ‘어울리지 않고’) 사는 ‘접촉지역’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이 안에서는 새로운 세대를 노스와 사우스를 뗀 그냥 코리안으로 키우는 것이 가능할지가 궁금했다. 그때는 한걸음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학교 편에서 실천하는 ‘교육자’로 이 세계 안에 훅 들어왔다. 이편이 훨씬 좋다.

 

서로에 대한 소문

 

소문이라는 것은 본래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전해 들은 이야기가 돌아다니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문의 내용이 내 생각이나 신념과 맞아떨어지면 그걸 그냥 사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하는 소문을 듣고 있으면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도 얼핏 보인다.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뉴몰든에 사는 남한 사람들이 해준 얘기다. “우리 딸은 중심가에 있는 맥도날드에는 아예 안 가요. 거기에 북한 사람들이 많이 가거든요. 창피해서 못 가겠대요. 시끄럽고 무례해요. 북한 사람들이 오면서 영국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대요. 그전까지 코리안은 이미지가 좋았는데, 물을 흐린 거죠. 속상해요.” “북한 사람들끼리 싸우면 장난이 아니에요. 식당에서 접시를 던지고 싸운 적도 있대요.” “북한 사람들이 온 다음에 뉴몰든이 예전 같지 않아서 외곽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대요. 지금 뉴몰든은 물이 별로 안 좋아요.” “탈북자들 중에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대요.”

 

이번에는 북한 사람들이 해준 얘기다. “남한 사람 집에서 일을 하면 물 한잔을 안 줘요. 목마르면 사 먹으라고 해요.” “남한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해요. 학교에서 우리 애들하고는 놀지 말라고 말한 부모도 있었어요.” “북한 사람들이 서로 싸운다고 욕하지만, 남한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도 장난이 아니에요. 거기는 소송비로만 몇천만원씩 쓴대요.” “우리가 학교를 만들었을 때, 남한 사람들은 이 학교 문 닫고 우리 아이들을 근처에 있는 다른 한글학교로 보내라고 했어요. 이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 보고 한국 쪽에 맞추라고 해요.”

 

불편한 지점: 존재와 태도

 

양쪽 이야기를 듣다보면, 서로 불편한 지점이 다르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아도, 그냥 ‘존재 자체’가 불편한 것 같다. 세련되지 않은 스타일이 싫고, ‘그들’의 미숙함으로 ‘우리’가 그동안 영국에서 쌓아놓은 좋은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남북한 사람은 엄연히 다른데 행여 영국 사람들이 우리와 그들을 다 같이 ‘코리안’이라고 뭉뚱그려서 볼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 지음으로써, 영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싶어한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불편하다. 영국에 사는 북한 사람 중에는 한국에서 살아본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한국에서 받은 은근한 멸시를 이곳에서 다시 경험할 때 민감해진다. 당해본 사람만 아는 그 무시하는 시선과 말투가 싫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규정하는 방식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차 고향을 떠나 영국 땅에 사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남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탈남자’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북한 사람들을 ‘탈북자’라고 부른다. 남한 사람들은 자신도 이주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우리 학교 학부모와 학생들 편에 서면서, 내게는 남북한 주민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이 더 분명하게 보였다. 나의 존재 자체를 타인이 평가하는 것, 내가 누구인지 타인이 규정하는 것, 타인의 기준에 맞추라고 권유(혹은 압박)를 받는 것, 내가 그 무리에 속할지 말지를 타인이 정하는 것, 이건 다 약자들이 겪는 일이다. 런던 코리아타운에서 북한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약자이다.

 

미래의 어린 모습

 

한국에서 북한이탈주민 지원활동을 하는 내 친구는 그들을 “먼저 온 미래”라고 불렀다.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게 되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살 사람들이, 한국 땅에 조금 먼저 온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내게는 이 말이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요즘은 지금 이곳에서 보는 것이 정말 ‘먼저 온 미래’의 한 장면인 것 같다. 구체적이다. 겉에서 보면 평화롭지만, 한 겹만 걷어내면 불편하고 어색하다. 남북한이 함께 살게 되는 어느 한 시점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낙관한다. 이 또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시간도 흐른다. 이렇게 같이 사는 시간이 길어져서 서로의 삶이 겹쳐지는 면이 넓어지고, 전해들은 소문 대신 직접 나눈 대화가 더 많아지면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조짐이 보인다. 뉴몰든에 있는 한인노인회는 벌써 남북한 구분 없이 모인다. 노인들이 같이 뭘 배우고, 식사를 하고, 나들이를 간다. 세상 떠나는 이가 있으면 함께 장례를 치른다. 노인이 되면 남북한 어디 출신이냐보다 타향살이의 외로움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더 커지는 모양이다. 어린이들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에게 분단이 얼마나 실감 나는 문제일까 싶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 속에 가두지만 않는다면 이들은 애초에 경계 없이 살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학교가 중요하다.

 

나는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내가 할 일을 성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분단이 애초에 없었던 것인 양 시치미를 떼고 아이들을 가르칠 거다. 한글을 배우고, 추석 명절을 쇠고, 고향의 봄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여기 어디 분단이 들어올 자리가 있을까 싶다. 더욱이 이제 남한 부모들도 우리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이 앞으로 올 미래의 어린 모습이라면, 잘하면, 괜찮은 미래가 올 수도 있겠다.

 

 

이향규 / 런던한겨레학교 교장, 『후아유』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저자

2021.9.2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