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대장동 사태, 불행의 본질은 도시개발 방식
‘대장동’이 여전히 뜨겁다. 수천억원 개발이익을 벽에 못질 한번 하지 않은 몇몇이 나눠 가졌다는 소식에, 특히 코로나에 삶이 무너진 사람들, 내 집 마련 어려운 사람들의 분노와 원망이 크다. 주식이나 가상자산에 투자해도 천배에 달하는 대박은 하늘에서 별 따기이고 아파트 투기이익도 두세배가 ‘고작’이니, 그간 이러한 투자에 발을 담가온 사람들의 질투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성남시가 민관공동개발추진을 통해 사전 확보했다는 5천5백억원가량의 이익도 적지 않다. 이 액수는 2014년도 성남시 세출예산 약 2조4천억원의 20퍼센트를 훌쩍 넘는다. 대장동 개발면적이 성남시 전체 면적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약 90만㎡였으니, 알짜 수익인 것은 틀림없다.
수천억 개발이익을 누가 어떻게 챙겼는지, 불법적인 거래는 없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개발사업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이 다가올 대선의 여권 후보가 되면서 점점 뜨거워질 판이다. 이 열기 속에서, 여야 정당들은 지나친 개발이익을 국가가 환수하거나, 민간의 공공개발사업 수익 규모를 제한하겠다고 한다. 주택 공급량을 대거 늘릴 계획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모두 이 엄청난 개발이익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좀더 솔직히 말해서, 누가 챙길 것인가)에 관심이 높다.
그렇다면, 수천억 개발이익금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대장동 사업 당시, 성남시는 성남도시개발공사를 통해 25억원을 투자했고, 주식회사 화천대유자산관리의 투자금은 5천만원, SK증권 등 금융업체 투자금이 대략 24억원 정도이다. 이들은 모두 ‘성남의뜰’이라는 주식회사의 주주들이다. 성남의뜰은 총 50억원 정도 투자금으로 민간건설사와 함께 아파트를 만들어 팔아 수천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판교와 함께 강남권에 묶일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더 좋은 주거환경이나 빠른 자산증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미래가치를 꿈꾸며 통장 잔고와 은행 대출금을 끌어모아 대장동 분양 아파트를 샀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에 비례해서 오르는 것이 분양가이다. 높은 분양가는 입주자의 은행 빚을 늘게 한다. 반면, 분양가와 입주 경쟁률이 높을수록 시행사와 건설사가 챙길 수 있는 이익은 높아만 간다.
대장동, 아니 대한민국 도시개발사업을 둘러싼 우울함은 여기에 있다. 뭔가 발전한 것 같고 사회적 부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지만, 오히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해지고 개인의 부채는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개발이익환수법과 도시개발법을 개정하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개발이익 총량을 늘려 이익을 보전하는 꼼수가 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집값은 오히려 상승하고 집을 사기 위한 가계부채도 늘어나게 된다. 개인의 빚, 가계부채로 개발비용 돌려막기를 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도시개발사업의 현실이 아닐까?
개인의 빚으로 만들어진 집과 개발된 도시를 보면 그리스신화 속 악당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떠오른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침대에 눕힌 후, 침대를 맘대로 조정하여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 밖으로 나온 다리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작으면 뼈와 근육을 찢어 몸을 늘려버린다. 안식을 위해 침대에 누운 나그네를 기다리는 건 처참한 죽음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아져버렸다. 시행사와 건설사가 미리 집을 짓고 분양가를 정하면, 우리는 이에 맞춰 들어가야 한다. 돈이 부족해서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해도 힘들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도 원리금과 이자 갚기에 허덕이면서 누군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집값이 오르길 기도해야 한다. 내 삶을 위해 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투기를 위해 지은 집에 맞춰 내 삶을 바꿔야 한다.
가계부채는 인간의 존엄성에 노예의 족쇄를 채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래의 노동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부채도 능력이다’라는 말은 임금 대비 노동력을 극대화하려는 신자유주의 시대 인간형을 위한 구호이다. 부채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든 열악한 노동환경이든 참고 견디며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집을 구입해서 산다 하더라도, 매달 대출 원리금을 갚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해야 하고 머릿속은 온통 부동산과 주식 정보만 가득 차 있다면 내 집과 내 존엄성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집 밖을 나가서도 배움과 놀이와 돌봄과 안전과 생로병사에 얽힌 일들을 돈 없이는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서 더 일해야 하고 빚을 져야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돈이 더욱 필요해질수록 집값은 오르고 전월세 비용도 덩달아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누군가는 이 상승작용으로 부자가 되겠지만, 많은 사람은 주거환경이 점점 더 나빠지고, 가계부채가 늘고,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더 순응하게 된다. 이십여년 전, 신용카드 부채가 우리를 휘청이게 하더니 이젠 집이 만든 부채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가계부채를 늘리는 우울한 개발이익, 그리고 몇몇에 의한 투기적 개발이익의 불공정한 독식을 막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부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여야가 내세우는 정책을 넘어 도시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도시개발 정책 계획 수립 과정에 처음부터 정부와 시행사는 물론, 원주민과 입주민 그리고 지역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원하청이나 소비자가 아닌, 도시를 함께 만드는 수평적 관계에서 말이다.
대장동 사업을 추진한 ‘성남의뜰’에는 원주민이나 입주자가 없이 오로지 투기꾼과 투자자만 있었다. 이것이 잘못된 첫 단추였다. 주민의 삶이나 마을의 일상이 아닌 개발이익, 즉 돈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도시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여러 참여자가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시행 주체가 된다면 첫째, 빚과 개발이익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고 둘째, 분양가 원가는 자연스레 공개될 것이고 셋째,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주택, 공공임대주택, 사회주택, 일반분양주택 등 각자 필요한 주거모델을 설계하면서 다양성과 차이가 인정되는 포용도시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넷째, 도시개발이 무조건 이익을 키우는 것이 아닌 거주민의 안전과 돌봄을 포함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언론과 정치인들이 대장동 개발이익에 들썩이는 동안, 아파트단지를 주민들의 진짜 집, 진짜 마을로 함께 만들어낸 경기도 남양주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지면을 빌려, 행복한 주민과 마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다 얼마 전 소천하신 故 김정원 위원장의 명복을 기원한다). 대통령 후보들만 모르는 ‘비단주머니’가 여기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승원 /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부센터장
2021.11.10.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