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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칼럼] 성공하는 2기 촛불정부를 만들려면

백낙청

현재 촛불혁명이 진행 중이라는 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어째서 대선국면에서 이를 호명하는 후보가 거의 전무한가? 아니, 한때 촛불대항쟁에 깊이 관여했던 시민단체들마저 촛불혁명을 인식하며 활동하는 경우가 어찌 이리 드문가?

 

이유 중 하나는 ‘촛불혁명’을 2016~17년의 ‘촛불대항쟁’과 동일시해서 5년 지난 과거지사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리라. 더 중요하게는 1기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팽배해 촛불혁명을 들먹이는 것이 ‘남는 장사’가 못 되기 때문일 것이다.

 

1기 촛불정부는 실화

 

그래도 문정부가 촛불정부인 건 엄연한 사실이다. 촛불 아니고는 집권이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통상적인 민주정부라면 아무리 정치력이 뛰어난 대통령이 나섰어도 해내지 못했을 엄청난 일들을 촛불의 기운을 타고 해냈기 때문이다(신간 졸저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서장: 촛불혁명과 개벽세상의 주인노릇을 위해’ 14~15면).

 

하지만 촛불정부라는 사실은 축복인 동시에 독배이기도 했다. 평화적으로 집권했기 때문에 혁명과업도 기존의 헌법과 제도를 존중하며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데다, 촛불시민들의 기대는 너무나 크고 다양하여 누구라도 감당하기 힘들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2020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벼르고 벼르던 야당응징을 드디어 해내고 집권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마련해주었지만, 정부·여당이 보인 자세는 촛불정신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그 후과로 오히려 정권교체의 여론이 한때 압도적이었고 여전히 만만치 않다. 이러다가 내년 대선에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1기, 2기를 따질 것 없이 촛불혁명은 5년 만에 끝장난 ‘미완의 혁명’으로 역사에 남을 판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자꾸 이상해지나

 

그렇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혁명의 과정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이른바 2030의 ‘반란’도 촛불을 들었던 세대의 이반이요 반촛불세력의 결사적 반격도 여기서 촛불혁명을 끝내지 않으면 자기네가 끝장이라는 절박감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 폐습들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똑똑하기로 이름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해지곤 하는 것도 요즘 세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냥 똑똑한 게 아니라 진취적이라는 명성마저 얻었던 이들도 많다. 특히 머리 좋고 학벌 좋은 사람들의 변화가 눈을 끄는데, 극우세력이나 할 법한 소리를 어느새 내뱉기 시작하는가 하면 교묘한 양비론으로 쟁점을 흐리고 민중의 기운을 빼곤 한다.

 

이런 현상을 나는 불가에서 말하는 ‘중근(中根)’의 고비 내지 ‘중근병’의 일부로 규정한 바 있지만(「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한겨레』 및 『창비주간논평』 2020.12.30., 같은 책 471~72면), 그것이 개인 차원의 문제라기보다 ‘능력주의’를 절대시하고 그런 ‘능력’을 넘어서는 지혜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교육과정과 사회의 운행원리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근대세계의 본질 문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똑똑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해지는 현실 하나만 봐도 혁명기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냥 정체하는 게 아니라 퇴행하게 마련이라는 진실을 실감케 되며, 설혹 2기 촛불정부가 탄생하더라도 그 앞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짐작할 수 있다.

 

2기 촛불정부의 전망과 성공 가능성

 

물론 2기 촛불정부를 탄생시키는 일이 선결과제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정권이 아닌 촛불정부를 상정하기 어려운 만큼 여당의 정권재창출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다수 유권자는 4기 민주당정부 수립에 냉담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이라는 난제가 가로놓여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당 후보 자신이 그런 난제를 아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촛불혁명이 아니고는 애당초 민주당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민주당 후보답게 정권재창출을 외치면서도 자신의 당선이 여야 간 교체 이상의 변화가 될 것임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다.

 

촛불혁명의 진로에서 또 하나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있다. 반촛불세력의 정권탈환 욕망이 워낙 간절한 나머지 눈에 헛것이 보이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는 것이다. 노련하고 비교적 흠결이 적지만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후보 대신에, 제1야당은 우리 국민이 바보가 아닌 이상 끝까지 지지할 가능성이 없는 인사를 굳이 택해버린 형국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성공한 2기 촛불정부’가 될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의 개혁성과 추진력이 상당정도 검증되었다고 하지만,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내렸을 뿐 아니라 선진국들에서의 민주주의 후퇴라는 대세마저 업은 적폐세력의 실체를 그가 얼마나 깊이 통찰하고 준비를 갖췄는지는 두고 볼 문제다. 예컨대 그는 자신이 성남시 공무원을 장악하는 데 2년이 걸렸는데 경기도에서는 1년이 소요됐으며 중앙정부의 공무원은 6개월이면 되리라고 자신한 걸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와 언론, 군부와 외국정부 등의 갖가지 압력에 더해 단임 제한마저 안고 가는 대통령에 비하면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 단체장이 갖는 권력은 실로 ‘제왕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도 화천대유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중앙의 정치권력과 금융·법조·언론 등 각계의 적폐세력이 지자체의 사업에 일단 작심하고 달려들면 장악력이 제법 강한 시장도 거의 속수무책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국내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Michael Johnston) 교수는 한국의 독특한 부패구조를 ‘엘리트 카르텔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관료, 정치인, 청와대, 군, 동일 지역 또는 동일 학교 출신 엘리트 들이 뭉쳐서 권력기반을 유지하고 부패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공무원들과 달리 중앙관료(적어도 간부직 이상의 관료)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몸통의 일부이다. 대통령의 관료장악 시도는 바로 정계와 법조·언론·군부·학계를 망라하는 다업종 카르텔과의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존스턴 교수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또다른 예로 이딸리아를 들었는데 우리는 한국과 이딸리아의 결정적 차이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곧 한국은 분단국이며 분단이 체제화한 사회라는 점이다. 그 결과 한국의 엘리트 카르텔은 분단체제에 힘입어 한결 악성적으로 작동하는가 하면, 분단체제 없이 엘리트층 부패가 뿌리내린 이딸리아에 비해 한층 불안정한 카르텔이고 가변적인 현실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발전과 분단체제의 완화 내지 해소에 따라 크게 흔들릴 소지가 없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딸리아와 달리 촛불혁명을 일으킨 국민 아닌가. 한국의 적폐세력이 남북의 화해 협력에 기를 쓰고 저항하며 촛불에 대한 전면적인 반격전에 나선 것도 무리가 아니다.

 

2기 촛불정부가 성공하려면 이런 현실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면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어차피 5년 임기의 대통령이 완수할 수 있는 과제에 한계가 있다는 냉정한 인식을 갖고, 스스로 임기 내에 끝낼 수 있는 일과 촛불혁명의 지속을 위해 일단 준비작업이라도 해놓을 일을 식별해서 진행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일을 정부에만 맡기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개인 또는 다양한 집단을 통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일이 관건이다. 당장에 내년 대선에서도, 마치 백화점에 쇼핑 나온 고객처럼 누구는 이래서 안 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 된다고 ‘높은 안목’을 과시하기보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이번 선거가 어떤 건곤일척의 대회전인지 직시할 일이며, 선거 이전부터도 ‘성공하는 2기 촛불정부’ 만들기에 자기 나름의 최선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2021.12.31. ⓒ창비주간논평

*이 글은 한겨레 2021년 12월 31일자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