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젠더 없는 젠더정치와 대선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이제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공약을 발표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거대 양당 대선후보의 행보와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율 변화를 보도하는 기사가 언론에 범람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향한 기대보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분노, 그리고 냉소와 환멸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러하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치권을 달궜던 ‘이대남’ 논의와 ‘젠더 갈등’ 프레임이 사라지기는커녕 이번 대선에서 답습,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20대 여성과 남성의 선택이 극명하게 갈린 데에 주목해 선거결과를 해석한 정치인들에게서 시작된 ‘젠더 갈등’ 프레임은 언론과 함께 확산되었다. 언론은 GS25, 경찰청, 평택시 등의 홍보물에 포함된 집게손가락 모양이 남성혐오표현이라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장을 비롯해 숏컷이나 여대라는 특징, ‘웅앵웅’ ‘오조오억’과 같은 단어 사용 등이 페미니스트의 표지라며 행해진 여성에 대한 집단적 공격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일련의 일들이 정치권에 의해 20대 남성들이 반(反)페미니즘적 의식을 드러낸 사건으로 이해되는 가운데, 양당의 대선후보는 유권자를 자신을 지지해줄 집단과 지지율을 위협하는 문제 집단으로 자의적으로 나누고 특정 집단을 포섭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약을 제시하는 정치공학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변화를 위한 비전과 국정 철학을 제시해야 할 대선후보들이 특정 성별과 세대를 지지율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성별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성평등 관련 공약과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도 설명도 없이 그저 젠더 갈등 그 자체가 대선 전략의 기획에 활용되는 ‘젠더 없는 젠더정치’는 계속되는 중이다.
이는 특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서 두드러진다. 그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n번방 방지법’)의 재개정, 성폭력 무고죄 신설, 여성가족부 폐지 등 관련 공약을 SNS를 이용해 정책의 근거나 설명 없이 짧은 메시지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비판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해 12월 10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되자마자 해당 법률이 사적 대화를 검열해 사생활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며 법률 재개정을 주장했다. 텔레그램·디스코드 등에서의 대화가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다며 법률의 실효성을 따지는 목소리 역시 당 내부에서 잇달았다. 하지만 인터넷사업자가 콘텐츠 유통 시 불법촬영물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도록 규정한 이 개정안은 사생활 침해 우려 때문에 개인 간 채팅과 같은 사적 대화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일반의 접근이 가능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같은 일반공개 정보에만 법 적용이 이루어지며, 동영상의 특징을 추출해 정부가 보유한 불법촬영물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는 필터링 절차 역시 사전 검열로 보기 어렵다. 필터링은 저작권 침해, 혐오표현 게재 등을 막기 위해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비롯한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은 지난 20대 국회 임기 종료 하루를 앞두고 여야가 합의한 가운데 통과된 것으로, 국민의힘 역시 함께한 정치적 합의임에도 이제 와 법률의 실효성을 문제삼는 것은 모순적이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신설 공약 역시 마찬가지다. 윤석열 후보는 SNS를 통해 올해 1월 6일과 7일, 각각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기존 공약이 어떤 이유로 철회되었는지, 그간 여성가족부에서 해온 기능은 어떻게 재편되는지, 그리고 성폭력 무고의 실제와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윤석열 후보의 한줄 공약에 대한 반박으로 이후 2022년 여성가족부에 편성된 예산이 1조 465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하며, 이 예산이 한부모 가족·청소년·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과 아이돌봄서비스, 성차별 개선 등 다양한 정책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한 이미 지난 2019년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대검찰청 사건 처리 기록을 바탕으로 성폭력 무고 실태를 파악한 결과, 성폭력 무고 고소사건의 기소율이 낮고, 성폭력 무고로 유죄 판결이 선고되는 사례 역시 극히 드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윤덕경·김정혜·천재영·김영미, 『여성폭력 검찰통계 분석(Ⅱ): 디지털 성폭력범죄, 성폭력무고죄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 따라서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여성가족부 기능의 개편과 개혁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나 이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한마디 말로 대체되었고, ‘성폭력 피해를 거짓으로 주장하는 이가 많다는 우려는 부풀려진 것으로 오히려 성범죄 근절을 저해한다’는 지적은 응답받지 못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시 정도는 다를지언정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재명 후보는 여성과 남성을 가르고 이를 정치적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며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기능을 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는 기존에 여성가족부가 행해온 정책들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자 남성을 배제한 것이라고 전제하는 동시에, 여성과 남성 각각을 동질적인 이해를 지닌 집단으로 상정하고 성차별과 페미니즘, 공적 가치로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있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견을 회피하는 태도이다. 또한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12월 CBS의 유튜브 채널인 ‘씨리얼’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페미 성향’이라는 지적을 받자 해당 채널 출연을 무기한 연기하며 사실상의 출연 취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젠더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중첩된 영역이 아니라, 소음과 문제를 만들어내는 진원지이자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적당히 에둘러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지난 5일, SNS에서는 ‘#반페미니즘은_청년의 목소리가_아니다’ ‘#빼앗긴_여성의_목소리를_되찾자’ ‘#우리는_여성혐오에_투표하지_않겠다’와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샤우트 아웃’(SHOUT-OUT)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여성들이 여성을 의미있는 시민으로 존중하지 않는 대선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이 대선후보들의 발언과 행보를 설명하는 핵심에 있지만, 정작 성평등이라는 가치에 관한 각 후보자의 철학은 살펴볼 수 없는 젠더 없는 젠더정치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포섭해야 할 지지집단과 외면해야 할 문제집단을 나누고, 이들 중 일부만을 의미있는 유권자로 상정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대선후보들의 모습은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과 협의를 핵심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온라인을 통해 과대대표된 20대 남성의 목소리에 선택적으로 귀 기울이거나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 이견을 회피하기보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김소라 / 젠더 연구자, 제주대학교 강사
2022.1.2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