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정상가족시대의 종언’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
2022년 설 연휴가 지났다. ‘명절은 가족과 함께’라고 하지만, 점차 많은 시민들이 명절을 사회가 규정해온 단일한 모습의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지 않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30퍼센트를 넘고, 비혼이 대중화되고 있으며, 시민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가족’이 더이상 ‘이성애결혼/가족관계’에 국한되지 않는 시대, 내가 어떤 삶을 누구와 상호의존하면서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은 점차 다양해져 더이상 예측할 수 없지만 ‘정상가족시대’의 종언은 예감할 수 있다.
정상가족시대의 종언은 우리에게 어떻게 감각되고 있을까? 1인가구의 증가는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은 혼자 살아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며, 혼인율의 감소는 누구와 함께 살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시민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은 누구든 원가족이 아닌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는 그간의 ‘정상경로’대로 결혼하고 출산해서 가족 안에서 돌봄을 주고받다 생을 마감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내가 누구와 상호의존하면서 살아가는지, 어떤 가족을 이루는지와 무관하게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한 인권 의제로 등장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어떠한 생활공동체든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족구성권은 시민권의 중요한 토대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 법적 혼인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비혼 동거, 동성 파트너십 등에 대한 사회적 인정, 개인이 맺고 있는 다양한 생활공동체에 사회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등의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혈연이나 결혼 중심이 아니라 생활을 함께 공유하고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관계를 실질적인 상호보호자로 인정하는 것은 폐쇄적인 가족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유대와 친밀적 결속을 환대하는 사회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이때 가족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움직임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상가족의 종언은 곧 삶의 불안정성을 강화하는 조건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족의 지원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시민에게 훨씬 가혹하다. 당장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반복해서 ‘집에 머물라’는 방역지침을 듣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머물 수 있는 집’은 저항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쟁취의 장소이다.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일찍부터 가족을 떠나는 성소수자들에게 지금의 사회는 가족-없음과 사회-없음의 이중고 속에서 개인화된 빈곤과 고립을 강제한다. 또한 빈곤층 청년이 1인가구를 구성할 때, 그가 30세 미만 비혼자라면 부모의 부양을 받는 것으로 인정되어 주거급여를 받지 못한다. 이처럼 가족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독립적인 개인이 될 수 없는 ‘유예된 개인’들은 부양자의 존재로 인해 공공주택, 청약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가족 단위에 생존을 맡길수록 가족에게만이라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시민들이 증가하는 한편, 원가족 안에서 억압이나 성차별 등으로 인한 불화를 감내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시민들은 정상가족시대의 종언을 원하지만, 국가와 사회는 여전히 ‘정상가족’에 대한 회귀적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기반해 가족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을 지켜줄 사회가 최소화되면서 반대급부로 가족의 역할을 극대화한 생존적 가족주의는 변화되어야 한다. 삶의 뿌리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삶을 삶으로 가능하게 하는 관계는 사회가 인정한, 혈연·결혼·입양으로 만들어지는 ’제도적인 가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할 수도, 돌봄을 강제할 수도, 누군가를 더 연대하게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상호의존의 관계망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인 조건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가족의 형태나 환경으로 인해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건강한 가족’과 아닌 가족을 여전히 구분하는 건강가족기본법의 폐지가 필수적이다. 이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가족주의가 사라진다고 해서 가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재구성될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정상’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이상적인 시민’이 될 수 없는 이들을 ‘근본 없는 존재’로 낙인찍어왔다. ‘정상가족’ 외곽에 있는 시민들의 삶을 인정하고 보호하기보다 차별을 강화했다. 그러나 호주제가 폐지되어서, 이혼율이 급증해서, 동성애를 인정한다고 해서 가족과 사회가 해체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기존의 가족 개념과 사회 속에서 삶의 자리를 찾을 수 없던 존재들이 더이상 ‘문제’나 ‘갈등’의 대상이 되지 않는, 구성원 모두가 상호공존의 빛나는 환대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2022년이 되길 소망한다.
김순남 /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
2022.2.9. ⓒ창비주간논평